▲꽁꽁 언 울란우데블라디보스토크보다 추운 울란우데. 길이 죄다 꽁꽁 얼어 잠시라도 긴장을 풀면 넘어지기 일쑤다.
정대희
한낮에 도착한 울란우데의 하늘은 흐렸다.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듯한 날씨다. 희뿌연 하늘을 닮은 거리는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다. 겨울 나라다운 풍경이다. 하얀 도화지 같은 세상에 색깔 옷을 입은 기차역이 도드라져 보인다. 역 앞에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니 마치 봄이 오는 풍경을 담은 듯하다. 스케치북 대신 휴대전화를 꺼내 들고 "찰칵"하고 사진을 찍는다.
빙판길서 호랑나비 춤, 거북이 걸음이 되다 숨 가쁜 기차역서 홀로 가방을 짊어지고 우두커니 서서 주변을 둘러본다.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영락없는 여행객이다. 그때 등 뒤에서 걸어온 러시아 남성이 길을 가로막으며, 묻는다.
"차이나(China)? 재팬(Japan)?" 매번 듣는 똑같은 질문이다. 지금껏 한 번도 '코리아(Korea)'라고 묻는 이가 없었다. 아무래도 서양인의 머릿속엔 동양인은 중국→일본→한국 순으로 이어지는 듯하다. 그렇다고 그들을 탓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내 머릿속 서양인 순서도 미국이 가장 먼저다. 마주한 서양인에게 소리치듯 "코리아"라고 대답했다. 그가 더듬거리며 이번에는 한국어로 응한다.
"오~한국사람. 택시 싸요" 낯선 땅에서 또다시 듣게 된 한국어. 반가운 마음에 귀가 쫑긋해진다. 하지만 가난한 여행객에게 택시는 언감생심. 끈질기게 따라붙는 그를 손사래 치며 어렵사리 뿌리치고 숙소를 향해 걷기 시작한다.
빙판길에 넘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써본다. 조심스레 종종걸음을 내딛는다. 긴장하고 걷는데도 몇 차례 중심을 잃고 몸을 휘청거렸다. 우습게도 그럴 때마다 김흥국의 '호랑나비 춤'을 추듯 흐느적거린다. 아무래도 자꾸 혼자 키득대는 게 아드레날린 분비가 과도한 듯하다.
들뜬 기분과 달리 걸음은 거북이 속도다. 인터넷에 소개된 "20분 거리" 숙소까지 40분 가까이 시간을 소요했다. 다행히 길은 헤매지 않았지만 긴장한 탓에 숙소에 도착하니 기진맥진한 상태가 됐다.
숙소는 주택가에 위치한 일반 가정집이다. 초인종을 누르자 인상 좋은 러시아 아낙이 제법 몸집이 큰 개를 동반하고 현관문으로 뛰쳐나왔다. 반갑게 맞아주는 집주인이 고맙다. 집 안에 들어서자 이번엔 집주인 아들이 반긴다. 숙소에 머물고 있던 유일한 여행객 '청(Cheong)'도 다가와 인사를 건넨다. 작은 것에 감사함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