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실련 등 시민단체는 송현동 부지에 호텔이 들어서는 걸 반대하고 있다.
경실련
서울시 지하철 3호선 안국역에서 내려 대로를 따라 경복궁으로 가다보면 우측에 길고 높은 돌담이 있다. 이 돌담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늘 궁금했다. 그런데 최근 그 돌담 너머에 넓은 벌판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대한항공은 이곳에 7성급 호텔 건립을 시도중이다.
서울 중심에 이 넓은 부지가 왜 여태껏 벌판으로 있었을까?
역사를 살펴보니 이 부지에는 조선왕조의 외척, 일제, 미국, 재벌로 이어지는 한반도 권력자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과거 대표적인 친일파이자 순종의 장인이었던 윤덕영의 형이 이 땅을 소유했다가 일본 식산은행에 팔아넘겼다. 해방 후에는 미군이 들어와 부지를 점령해 미국 대사관 직원숙소가 이곳에 있었다. 이후 국방부 소유로 넘어갔다가 삼성생명으로 다시 주인이 바뀐다. 대한항공은 2008년 삼성생명에게 이 부지를 사들였다.
삼성생명과 대한항공이 지금까지 이 송현동 부지를 그냥 둔 건 역사·문화적 가치 때문이었다. 이 부지는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 바로 옆이자 서울 시내 최대 문화벨트 한가운데에 있다. 경복궁, 북촌마을, 창덕궁과 종묘로 이어지고 인사동과 삼청동을 잇는 역사·문화의 중심지다.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규제완화사실 과거에 삼성생명은 이곳에 복합문화시설을, 대한항공은 2010년에 호텔 건립을 시도했다. 하지만 역사·문화적 가치가 큰 곳에 사익을 추구하는 시설이나 건축물이 들어서서는 안 된다는 여러 시민단체의 반말로 저지됐다.
뿐만 아니라 송현동 부지 근처에는 풍문여고, 덕성 여중·고 등의 학교가 있다. 호텔이 들어서면 풍문여고 정문과는 불과 약 200m 거리다. 교육권 침해 논란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서울중부교육지원청은 호텔 불허 결정을 내렸고, 대한항공은 2010년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1, 2심에서 모두 패소했다. 2012년 6월 대법원 또한 대한항공의 학교 근처 호텔 건립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관광 진흥과 고용창출을 이유로 대한항공의 호텔 건립을 지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유해시설이 없는 호텔'은 학교 근처에도 건립할 수 있게끔 관광진흥법을 개정하고 교육부 훈령을 제정하는 등 규제개선안을 마련했다.
이에 대해 "재벌에게 특혜를 주는 규제완화가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하지만 정부와 재계는 "관광객 증가에 비해 호텔 객실이 부족하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객실 부족하다더니... 공급과잉 우려되는 상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