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세 할머니, 그녀는 지금 전쟁 중입니다

[서평] '밀양으로 초대합니다' <밀양을 살다>

등록 2014.04.25 10:35수정 2014.04.26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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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양을 살다> 책표지.
<밀양을 살다> 책표지.오월의봄
세월호 침몰 사고 여드레째다. 대한민국은 짙은 슬픔과 분노를 머금은 무거운 침묵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많은 이가 묻는가. 이게 과연 국가인가. 이 나라는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나.

대한민국은 세월호 침몰 사고 직후 174명을 구한 후 단 한 사람의 생명도 구하지 못했다. 오늘 수업 시간에 한 아이가 말했다. 174명은 이 나라가 구한 게 아니다. 그들 스스로 배에서 필사적으로 탈출한 덕분에 살아남은 게 아니냐. 그들은 구조되지 않았다. 그들은 생환자다. 고작(!) 중2인 그의 말에 시뻘건 분노가 펄떡이고 있었다.


여기 국가를 향해 똑같은 질문을 던지는 열다섯 명의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그들을 밀양구술프로젝트가 지은 책 <밀양을 살다>에서 만난다.

경상남도 동북부의, 부드러운 울림소리가 듣기 좋은 '밀양'이라는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거의 한평생을 그곳에서 살았다. 산에는 조상들 묘가 있다. 조그마한 집과 몇 뙈기 땅이 그들이 가진 전부다. 말하자면 그곳은 그들의 터전이다. 그 터전을 국가가 송두리째 뺏고 짓밟고 있다. 그들은 묻는다. 이게 과연 국가인가. 이 나라는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나.

<밀양을 살다>는 일종의 구술 기록집

<밀양을 살다>는 일종의 구술 기록집이다. 2013년 12월쯤이었다고 한다. 기록노동자와 작가, 인권활동가 등 여러 사람이 모였다. 밀양 송전탑 공사를 막아내는 싸움이 힘겨워지고, 밀양에서 전해오는 소식 너머에 들어야 할 이야기가 더 있으니 그것을 전해야겠다는 이야기들이 오갔다. 밀양구술프로젝트가 이렇게 꾸려졌다.

밀양을 사는 그/녀들의 울음과 웃음이 궁금했다. 그/녀들이 투사로만 우리에게 등장할 때의 거리감이 그/녀들에게는 고립감이 되기도 한다는 조심스러운 마음과, 그/녀들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전해질 때 연대의 힘도 그만큼 살아 움직이게 될 것이라는 절박한 기대를 품었을 뿐이다. (8쪽)


기록자들은 고된 하루하루를 보내며 그/녀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새기듯 기록했다. 밀양구술프로젝트 참여자 대표인 미류의 말처럼, "우리의 시선, 우리의 일상, 우리의 생각과 행동들이 그/녀들이 만들어내는 한 세계에 힘을 미"친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우리들의 삶으로 밀양을 맞이하는 문이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이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밀양 문제는 2000년대 중반부터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밀양에 송전탑 설비 계획이 확정된 것은 2000년이었다. 송전선이 지나갈 경과지 확정은 2003년에 이루어졌다. 2005년에는 한전이 연 요식적인 주민설명회가 있었다. 그후 2007년에 사업 승인이 떨어졌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공사가 시작되고 멈추고 다시 시작되기를 반복하고 있다. 밀양에서 열린 최초의 송전탑 반대 집회는 2005년이다. 그/녀들의 전쟁은 올해로 10년째다!


그 전쟁의 한복판에 세계 최대 규모라는 765킬로볼트 송전탑이 있다. 높이가 94미터에 이르는 탑이다. 52미터에 불과한 20층 아파트의 거의 두 배다. 그 아래서는 강력한 전자파 때문에 소가 불임되고 사람 몸에도 암이 생기기 쉽다.

내 땅, 내가 사는 마을에 그런 탑이 들어선다. 땅값이 형편없이 떨어져 팔고 나갈 수도 없다. 평생 일군 땅이 강제로 수용되고, 조상들 묘가 있는 산이 벌겋게 파헤쳐진다. 두고만 볼 것인가, 싸울 것인가.

밀양의 많은 그/녀들은 싸움을 택했다. 대다수가 한평생을 한곳에서만 살아온 노인네들이었다. 한국전력공사(한전)와 경찰은 그/녀들에게 온갖 폭력과 모욕과 폭언을 일삼았다. 사람들은 10원 한 푼 필요 없다고 말하는 그/녀들이 보상금 때문에 그런다며 조롱했다. 당신들은 전기 쓰지 않느냐며 부르대는 이들도 있었다. '기레기' 언론은 그/녀들을 지역이기주의니 보상금 투쟁이니 하는 말로 진실을 왜곡하기에 바빴다.

그/녀들은 필패의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정부가 밀어주는 법과 제도 때문이었다. 그/녀들은 한전이 평생 살던 집과 논밭, 선산을 빼앗아 가도 그저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평생 일궈온 땅을 합법적으로 빼앗아가는, 박정희 정권 시절이던 1979년에 만들어진 <전원(電源)개발촉진법> 때문이었다. 그 법의 위력은 막강했다.

전력산업의 전반을 관장하는 일반법은 전기사업법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1978년 전원개발촉진법이라는 특별법으로 발전과 송변전 시설 건설 절차를 관장하고 있다. 전원개발촉진법에 의하면, 발전소와 송변전 시설 부지는 토지 소유자의 동의가 없어도 강제로 수용할 수 있다. 그리고 전원개발사업 승인을 얻게 되면 10여 개 법률에서 규정하고 있는 각종 인허가 절차를 생략하게 된다.

지방자치단체의 이의제기와 감시 감독의 권한도 사실상 없다.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개발 고속도로에 올라타게 되는 것이다. ··· 송전탑 건설 현장에서 충돌이 발생할 때 경찰은 '이미 법적으로 모든 절차가 완결되었다'는 논리를 가장 즐겨 사용한다. 따라서 이를 막아서는 주민들의 모든 노력은 '불법'인 것이다. 일생 일구어온 재산이 강탈당하고, 100미터가 넘는 송전탑과 거기 주렁주렁 매달린 송전선으로 주민의 생존권이 나락으로 떨어지는데 여기에 저항하는 천부의 자연권은 '불법'으로 매도당하는 것이다. (374~375쪽)

그런데도 그/녀들은 그 '불법'의 싸움을 지치지 않고 계속해 왔다. 그것도 막강한 공권력을 상대로. 밀양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 이계삼 사무국장에 따르면, 2013년 10월 공사 재개 당시 3,000명의 경찰 병력이 24시간 경비를 서면서 공사 현장으로 가는 모든 길을 봉쇄한 채 주민들의 현장 진입을 통제했다. 그뒤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주민 112명이 경찰과의 충돌 과정에서 응급 후송되었다. 73명의 주민과 연대 시민들은 경찰 조사를 받거나 연행되었다. 많은 사람이 밀양 싸움을 '전쟁'에 빗대는 이유다.

그렇다. 그것은 전쟁이다. 공사 중단 직후인 2013년 5월, 인도주의실천협의회가 주민들을 대상으로 정신건강 실태를 조사했다고 한다. 이때 주민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고위험군 비율은 9·11사고를 겪은 미국 시민의 네 배 수준에 이르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헬기를 이용한 전방위적인 공사가 진행 중이던 2013년 12월 조사에서는 전체 주민의 87%가 높은 수준의 우울감을 호소했다. 10.7% 주민은 '기회만 있으면 자살하겠다'고까지 답했다고 한다. 

이 골짜기 커갖고 이 골짜기서 늙었는데 6·25 전쟁 봤지, 오만 전쟁 다 봐도 이렇지는 안 했다. 이건 전쟁이다. 이 전쟁이 제일 큰 전쟁이다. 내가 대가리 털 나고 처음 봤어. 일본시대 양식 없고 여기 와가 다 쪼아가고, 녹으로 다 쪼아가고 옷 없고 빨개벗고 댕기고 해도 이거 카믄. 대동아전쟁 때도 전쟁 나가 행여 포탄 떨어질까 그것만 걱정했지 이러케는 안 이랬다. 빨갱이 시대도 빨갱이들 밤에 와가 양식 달라 카고 밥 해달라 카고 그기고. 근데 이거는 밤낮도 없고, 시간도 없고. 이건 마 사람을 조지는 거지. 순사들이 지랄병하는 거 보래이. 간이 바짝바짝 마른다. 못 본다 카이, 못 봐. (37쪽)

이 책 첫 장의 주인공으로 나오는 밀양 상동면 도곡마을 김말해(86) 할머니 말이다. 전쟁통에 남편 생사도 모른 채 아들 둘을 키우신 분이다. 큰아들은 베트남전에서 허리를 크게 다쳐 제대로 된 일자리 한 번 갖지 못했다. 세 살 무렵 홍역으로 사지 바로 앞까지 갔다가 간신히 살아난 둘째아들은 평생 고생 끝에 4년 전 예순둘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죽었다.

그 기구한 생을 견뎌온 김 할머니가 '일본시대'와 '대동아전쟁', '빨갱이 시대'보다 더한 전쟁터에서 살고 있다고 말한다. 송전탑 몇 개 들어서는 일을, 한국 근대사를 헤쳐나오며 온갖 풍상을 다 겪은 김 할머니가 "제일 큰 전쟁"으로 받아들이는 이유가 뭘까. "지 애미 지 애비 그래 죽었다고 불쌍타코 한 번 돼야 될 낀데" 하는 심정에서 틀림없이 한 표를 던졌을(전라남도 순천의 어느 골짜기에서 한평생을 살아온 우리 어머니께서도 그러셨다.) 김 할머니가 "박근혜 가시나, 더러분 놈의 가시나" 하며 마음을 싹 돌려버린 까닭이 뭘까.

중2 아이들조차 '쓰레기', '후진국'이라고 부르는 나라

중2 아이들조차 '쓰레기', '후진국'이라고 부르는 나라가 지금 대한민국이다. 수업 시간에 세월호 사고 이야기가 나오자 봇물 터지듯 아이들 입에서 쏟아져 나온 날선 언어들이다. 별다른 대꾸도 못했다. 그 많은 첨단 장비와 기술을 자랑하면서 기울어져 가는 여객선 하나 제대로 세우지 못하는 나라를 어찌 제대로 된 나라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아이들의 말은 별로 틀린 게 없었다.

김 할머니도 아이들과 비슷한 마음을 갖고 있지 않았을까. 김 할머니의 소원은 "다시 태어나면 예쁨 받는 여자"로 태어나 "아들 하나 딸 하나 놓고 그래" 사는 것이다. 소박하고 평범한 바람이다. 이 나라는 김 할머니의 그 작은 꿈조차 키워주지 못했다. 오죽하면 "하루라도 내 나라 싶은 날이 없었다"고 말씀하셨을까. 이 나라는 할머니의 꿈을 키워주기는커녕 90이 머지 않은 나이에 '제일 큰 전쟁'을 가져다주었다.

일생토록 국가가 시키는 대로 협조하였고, 수십 년 이래 일관되었던 폐농, 살농 정책에도 묵묵히 농토를 일구며 삶의 자리를 지켜온 주민들이 노년에 맞이한 이 폭력은 너무나 모멸적이고 또한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 밀양 주민들은 급진적이거나 공상적인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있는 그대로 살게 해달라', '잘못된 법제도를 정의롭게 고쳐달라'는 요구가 그렇게 급진적이고 공상적인가. (382쪽)

86세의 평범한 할머니에게 '제일 큰 전쟁'을 선사한 국가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8일간 단 한 명의 목숨도 구하지 못한 채 사망자 수만 늘려온 정부를 그 누가 믿고 따를까. '밀양이 전하는 열다섯 편의 아리랑'(부제)을 읽으면서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은 의문이었다. 절망스러웠다.

하지만 거기에서 멈출 수는 없다. 2013년 7월, 나눔문화에서 펴낸 소책자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는 밀양을 대도시의 전기 식민지에 비유했다. 대도시의 한겨울 난방과 한여름 냉방에 밀양과 같은 전기 식민지에 사는 약자들의 피울음이 담겨 있음을 빗댄 표현이다.

전기는 결국 밀양의 거대한 765킬로볼트 송전탑을 타고 흐를 것이다. 우리는 그 전기가 밀양 노인들의 피눈물을 타고 흐른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전기로 누리는 안락과 풍요가 이 나라 곳곳의 힘 없는 이들에게 빚진 것임도 깊게 깨달아야 한다. 성찰과 연대가 시작될 수 있는 지점이다. '불법' 소리를 들으면서도 공권력을 상대로 '필패'의 싸움을 벌인 그/녀들이 이 절망스러운 국가의 희망으로 다가온 이유다.
덧붙이는 글 <밀양을 살다>(밀양구술프로젝트 지음 / 오월의봄 / 2014. 4. 21 / 389쪽 / 16,000원)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밀양을 살다 - 밀양이 전하는 열다섯 편의 아리랑

밀양구술프로젝트 지음,
오월의봄, 2014


#<밀양을 살다> #밀양구술프로젝트 #오월의봄 #밀양 송전탑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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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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