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곤 테무르(드라마 속의 타환, 지창욱 분).
MBC
기황후는 토곤 테무르 황제 시대에 궁녀에서 제2황후·제1황후에 올랐다. 이에 비해 김황후는 몽골이 원나라라는 중국식 국호를 병용한 1271년을 기준으로 세 번째 황제인 카이산(재위 1308~1311년), 네 번째 황제인 아유르바르와다(재위 1312~1313년, 1314~1320년), 여섯 번째 황제인 예순 테무르(재위 1324~1328년)의 후궁 혹은 황후 역할을 했다.
세 명의 황제를 거쳤다는 점도 경이롭지만, 황제가 자주 바뀌던 정치적 혼란기에 궁녀에서 후궁·황후로 승진했다는 것도 경이롭다. 제3대·제4대 황제를 거친 뒤, 제5대를 건너뛰어 제6대 황제의 시대에도 살아남았으니, 생존력으로 치면 기황후 못지않았다.
궁녀 자격으로 몽골 궁궐에 들어간 김황후는 처음에는 카이산 황제의 후궁이 되고, 다음 황제인 아유르바르와드 때는 더 높은 후궁이 되고, 예순 테무르 황제 때는 황후의 반열에 올랐다. 이때 그는 제1황후가 아니라 여러 황후 중 하나였다. 어쩌면 김황후가 닦아놓은 이런 발판이 있었기에 훗날 기황후가 제1황후가 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기황후'처럼 출세한 공녀들... 그 뒤에는 이런 정치적 목적이 김황후와 기황후를 비롯한 고려 여인들이 몽골 궁궐에서 두각을 보인 데는 정치적 이유도 있었다. 고대의 군주들이 궁녀와 환관을 충원한 근본 동기 중 하나는 귀족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서였다. 수적으로 열세인 군주가 다수의 귀족에 맞서는 길은 수족처럼 부릴 수 있는 궁녀와 환관을 많이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귀족과 연이 닿는 사람들을 궁녀·환관으로 충원하면, 이들이 귀족과 결탁할 가능성이 없지 않았다. 그래서 통치자들은 가급적 하층민 출신의 궁녀·환관을 선호했다. 권력과 거리가 멀어야만 사심 없이 군주를 보좌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조선시대에 공노비 중에서 궁녀를 선발한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이것이다.
몽골이 고려 궁녀를 선호한 것도 동일한 이유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몽골처럼 수많은 민족을 지배하는 대제국에서 몽골족은 제국 전체의 지배층이다. 그래서 몽골족 궁녀·환관은 몽골족 내부에서는 하층민일지라도 제국 전체적으로는 지배층에 속한다. 그래서 이들은 경우에 따라서는 몽골 황제보다는 귀족들의 편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이런 문제점을 보완하는 방법은, 제국 내의 소수민족이나 이웃나라에서도 궁녀·환관을 데려오는 것이었다. 소수민족이나 이웃나라 출신은 몽골 지배층과의 연줄이 없기 때문에,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몽골 황제에게 절대 충성을 바칠 확률이 높았다. 몽골 황궁에서 고려인 궁녀·환관을 선호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동일한 현상은 몽골뿐만 아니라 아바스(혹은 압바스, 750~1258년)나 오스만(혹은 오스만투르크, 1299~1922년) 같은 대제국에서도 나타났다. 지금의 이라크를 중심으로 이슬람세계를 지배한 아바스나 지금의 터키·발칸반도를 중심으로 이슬람세계를 지배한 오스만은 몽골처럼 여러 민족을 거느린 대제국이었다.
<아라비안나이트>로도 불리는 <천일야화>에는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이슬람세계의 최고 지도자)가 사는 궁궐에서 아프리카인 궁녀나 환관들이 근무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참고로, <천일야화> 같은 소설은 등장인물이나 사건 자체는 허구이지만, 아바스 왕조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역사학에서 사료로 이용되고 있다. 또 오스만의 술탄(황제)이 사는 궁궐에도 아프리카인 혹은 유럽인 환관들이 많았다.
칼리프나 술탄이 이민족을 궁녀·환관으로 삼은 것은 자기 나라에서 아무 연고도 없는 사람을 수족으로 이용해야만 권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 경우, 아프리카인 궁녀들도 자국에서 공녀로 징발되거나 사적으로 매매된 뒤 아바스나 오스만의 궁녀가 됐으니, 고려 공녀들과 같은 처지였다고 할 수 있다.
김황후나 기황후 같은 고려 공녀들이 몽골에서 출세한 것도 위와 같은 정치적 속성 때문이었다. 몽골 황제들이 몽골 귀족들을 견제할 목적으로 외국인 궁녀·환관을 선호하는 분위기 속에서 고려인 공녀의 일부가 후궁·황후의 자리에까지 올랐던 것이다. 대부분의 고려 공녀들은 몽골에서 힘겨운 나날을 보냈지만, 일부 고려 공녀들은 이 같은 정치적 속성 때문에 입지전적 출세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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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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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에서 출세한 고려 공녀들... 황제의 속뜻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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