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원주민의 기원과 관련해서 오랜 기간 동안 베링해협(Bering Strait) 이주설이 대세를 이루어왔다. 하지만 1997년 칠레 남부의 몬떼 베르데(Monte Verde) 유적이 고고학계로부터 공식 인정을 받으면서, 배를 이용한 일군의 무리들이 알래스카(Alaska) 연안을 거쳐 아메리카 대륙의 태평양 연안을 따라 남진했거나 폴리네시아(Polynesia)쪽 남방의 섬들에서 이주해 왔다는 또 다른 학설이 대두되고 있다.
물론 언제 또다시 새로운 학설이 튀어나와 기존의 학설을 뒤엎을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최근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루트를 통해 오랜 시간에 걸쳐 이주해 왔다는 이론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기도 하다.
이 중 오랜 기간 동안 학계의 정설로 자리 잡아왔던 베링해협 이주설을 근거로 아메리카 원주민의 기원을 간단히 언급하자면, 시베리아와 알래스카 사이에 있는 베링해협의 해수면이 낮아져 다리 구실을 해 주던 위스콘신 빙하기(Wisconsin glacial stage) 시절, 최초의 인류가 대략 3만 년 이전에 아메리카대륙에 발을 디뎠고 약 1만3천 년 전에도 수많은 몽골리안(Mongolian) 계통의 인류가 아메리카대륙으로 건너간 것으로 추정된다.
시베리아의 동쪽 끝 데즈뇨프곶(Cape Dezhnyov)과 알래스카의 서쪽 끝 웨일즈왕자곶(Cape Prince of Wales) 간의 거리가 85㎞ 정도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빙하기 시절에는 그리 어렵지 않게 왕래가 있었던 듯하다.
하지만 빙하기가 끝나면서 베링해협의 수위가 다시 상승하자 아메리카에 정착한 사람들은 따뜻한 남쪽으로 서서히 이동하기 시작하였고, 약 1만 년 전을 전후하여 남미지역에도 원주민들이 정착하여 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이들은 남미에서 안데스 문명을 중심으로, 중미에서는 메소아메리카(Mesoamérica) 문명을 중심으로 찬란한 꽃을 피우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1492년 끄리스또발 꼴론이 아메리카대륙을 처음 발견했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주장이다.
그런데 갑자기 의구심이 생긴다. 일찍이 학교에서 추호의 의심도 없이 달달 외웠던 이른바 인류 4대 문명의 발상지에 관한 기억 때문이다. 분명 우리는 중국의 황하 문명(황하강 유역)과 인도의 인더스 문명(인더스강 유역), 그리고 메소포타미아 문명(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유역)과 이집트 문명(나일강 유역)을 인류의 4대 문명이라고 배워왔다. 그렇다면 메소아메리카 문명과 안데스 문명은 무엇일까?
안타깝지만 역사는 언제나 승자의 입장에서 기술되어 왔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중남미 수탈의 결과, 18세기 이후 유럽이 세계의 절대강자로 군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안드레 군더 프랑크(Ander Gunder Frank, 1929~2005)는 <리오리엔트>(ReORIENT : Global Economy in the Asian Age, 1998)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유럽이 아메리카에서의 착취를 통해 얻은 은으로 아시아 경제라고 하는 열차의 3등 칸에 달랑 표 한 장을 끊어 올라탔다가 얼마 뒤 객차를 통째로 빌리더니 19세기에 들어서는 아시아인을 열차에서 몰아내고 주인 행세를 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 그들이 절대강자로 등극하자마자 이내 세계를 유럽과 비유럽으로 이분화한 후, 진리와 자유를 갈망하는 유럽은 언제나 합리적이고 이성적일 뿐만 아니라 순수한 도덕성을 추구하는 존재로 미화시킨 반면, 비유럽지역은 역사적 사실과 무관하게 이와는 반대로 폄하시키는 작업에 치중하게 된다.(중남미여행 따라잡기 네번째 글, "문명과 야만이라는 잣대" 참조)
그러나 그런 그들도 중국과 인도, 그리고 이집트만큼은 외면하기 힘들었던 것 같다. '고전경제학의 창시자'라고 일컬어지는 아담 스미스(Adam smith, 1723~1790) 조차도 "중국과 이집트, 인도는 세계의 어떤 나라들보다 부유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중국은 유럽의 어느 곳보다도 훨씬 부강한 나라다"라고 고백할 정도니 말이다.
결국 문명의 발상지를 '구상'함에 있어 그들은 자신들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메소포타미아에다가 당시 결코 무시할 수 없었던 중국과 인도, 그리고 이집트 문명을 덧붙인 후, 자신들의 모든 지식을 총동원하여 '4대 문명'의 정당성을 부여한 것으로 봐야 한다. 메소포타미아가 자신들의 뿌리가 된 것도 기독교사회였던 유럽이 자신들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며, 아브라함의 고향이 바로 메소포타미아지역이었기 때문이다.
2014.05.08 17:18 | ⓒ 2014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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