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1 외손자 할아버지를 생각하나?할아버지손에 4천원을 쥐어준 고1 외 손자
이월성
어린이날 남양주에 사는 외손자 권혁이가 엄마 승용차를 타고 할아버지를 찾아왔다. 일년 전 쯤 권혁이는 내가 쓴 단편소설 <메아리 없는 산울림>을 읽고 "이 소설이 할아버지께서 어렸을 때 일이에요?"라고 물어 왔다. "그래 맞다"고 대답했더니 권혁 얼굴이 어두워 졌다.
이 소설은 자서전 같은 것이었다. 내가 2살 때 어머니가 5살 때 아버지가 8살에 할머니가 18살 때 유일한 혈육인 할아버지마저 돌아가셨다. 오갈 데가 없어진 나는 오촌 집에서 철 침대를 만드는 쇠 일을 해주고 일년 동안 밥을 얻어먹었다. 다음 해에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난 다음에 눈칫밥을 먹던 오촌 집을 나왔다.
신문 배달을 하면서 나 혼자 납작 보리쌀로 밥을 지어 소금을 반찬으로 먹고 고학을 했던 일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제일 먼저 칼슘부족으로 이들이 문정거리고 조식으로 소화가 되지 않아 위산과다증에 시달린 이야기, 교복을 싸게 살려고 시장에 가서 잘못 만들어 스탠드칼라가 축 늘어져 와이셔츠 같이 된 교복을 싸게 사서 입고, 허수아비가 옷을 걸친 것 같이 된 옷을 입었다. 운동화를 사 신을 돈이 없어서 겨울에 버려진 흰색 단화를 쓰레기통에서 주어신고 학교를 다닌 이야기를 나열하였다.
고학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고아원을 찾아가서 그곳에서 살고 싶어서 고아원에 들어가려고 하다가 말 한마디 못하고 되돌아 나온 이야기들을 기술해 나갔다.
권혁이의 일그러진 얼굴을 뒤로 하고 나도 소설 이외에 더 보탤 이야기가 없어 뒤돌아선 일이 있었다. 권혁 엄마가 내게 "아빠 머리를 깍지..."라고 말 했다. 내 머리는 백발인 데다 일년은 깎지 않아 고술 머리가 숫 사자 모양으로 옆으로 퍼져서 내 얼굴의 두 배는 되게 옆머리털이 자라 뻗쳐 있었다.
"돈 없어서 머리를 못 깎아" 라고 내가 말했다. 딸아이가 웃도록 농담조로 말했는데, 외손자가 이 말을 진담으로 들었었나 보다. 외손자가 주머니를 뒤지더니 천원자리 지폐 4장을 꺼내 (주머니에든 돈 전부였을 것이다) 내 손에 넣고 꼭 쥐도록 내 손가락을 감아쥐면서. "할아버지 쓰세요!" 라 말한다.
나는 이 소리를 듣는 순간 천금을 얻은 것 같이 기뻤고 외손자의 눈빛이 맑고 밝아 보였다. 이 녀석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데스크톱 컴퓨터를 사 달라고 엄마를 졸라 대던 아이였다. 아직까지 자기가 쓸 데스크톱 컴퓨터를 사지 못했는데, 할아버지 머리 깎는 돈을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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