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의 공간, 송당리 본향당소박하고 조촐한 기원의 공간. 제주의 가장 제주다운 모습 중 하나였다.
장윤선
그러나 나는 결국 토산리 여드렛당을 가지 못했다. 내비게이션에도 나오지 않았고 지도에도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표산'을 검색해보면 당집과는 하등 상관없는 바닷가의 멋들어진 호텔들만 소개될 뿐이었다. 안 그래도 눈총을 쏘는 신랑과 뱀이라면 기절할 듯 싫어하는 아들 녀석 때문에, 나는 찾기 힘든 여드렛당 대신 바닷가에 널리고 널린 방사탑과 우도의 작은 당집에 만족하기로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랑을 채근하여 그 유명한 송당리 본향당을 찾았다. 아직도 제의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제주의 대표적인 당집이고, 금백주 할망이라는 센 신이 좌정하고 있는 곳이었다.
꽝오를 꽃, 살오를 꽃 (뼈 오를 꽃, 살 오를 꽃)오장육부가 기릴 꽃 (오장육부 만들 꽃)불붙을 꽃, 맬망꽃 부제될 꽃 (불붙을 꽃, 멸망 꽃, 부자 될 꽃)제주에서 널리 불려지는 <이공본풀이>의 한 대목이다. 무속신화에서 꽃은 아주 중요한 상징이다. 제주 신화의 주인공들은 사람을 살려내는 신비한 꽃을 가지고 있다. <이공본풀이>의 주인공 할락궁이는 서천에서 가지고 온 꽝오를 꽃, 살오를 꽃으로 권력자에 의해 온몸이 난도질당해 죽은 가련한 어머니를 살려낸다.
우연인지 어쩐지, 송당 본향당으로 가는 길에는 너른 꽃밭이 있었고, 붉은 진달래가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화사한 햇살 아래 피어난 꽃들은 정말 신화 속의 생명화라도 되는 듯했다.
다른 모든 당집들처럼, 송당리 본향당도 소박하고 조촐했다. 제를 올리는 한옥 한 채가 덩그러니 있을 뿐, 빛나는 제단도, 엄숙한 옷차림의 사제도 없었다. 신랑은 적잖이 실망하는 눈치였다.
"에이 이거 뭐야. 난 뭔가 기가 팍 느껴지는 무당이라도 한 명 있을 줄 알았는데. 이게 다야?"그게 다였다. 본시 무속이란 그런 것이다. 먼 고대사회에서는 무속이 모든 것을 지배했다고도 하지만, 조선시대 무당들이 성문 밖으로 쫓겨난 이래, 샤먼들은 영화롭던 옛 시절을 회복한 적이 없다. 그리고 무속은 자연의 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믿음이다. 바다를 바라보고 살 수밖에 없었던 이 섬의 사람들은 거친 풍랑과 예측불가능한 날씨 속에서 자신들을 지켜내고자 하는 소박한 바람을 가졌을 것이다.
나는 꽤나 감격스러웠다. 무속신들을 믿어서가 아니다. 그저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이 살아왔던 삶의 흔적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 좋았다. 그리고 신령스러운 그 무엇인가를 찾아 삶을 위로받고 살아왔던 사람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본향당 주변은 사람 하나 없이 적막했고, 당 뒤편의 오름은 아름드리 나무로 꽉 채워져 무척이나 성스럽게 느껴졌다. 그야말로 가장 제주다운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