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보호 나선 대규모 경찰들김시곤 KBS보도국장이 세월호 참사와 교통사고 희생자를 비교하는 발언을 해서 물의를 일으킨 가운데 지난 8일 오후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여의도 KBS본사를 항의방문하자 경찰들이 KBS건물을 에워싸고 있다.
권우성
그날 밤, 나는 종로에 있었다. 여기자 둘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 언론사 시험을 같이 준비한 친구들이다. KBS, YTN, 연합뉴스. 나름 주류 언론인 세 명이 모여 세월호 보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회사는 다르지만 이야기의 내용은 비슷했다. 각자 자기 회사의 보도 태도를 욕하기 바빴다.
밤 10시쯤부터 교양PD 카톡방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기어이 사달이 났네요. 회사 앞에 5개 경찰중대 온다고.' '신관 앞에 전경버스 두 대가 가로막았습니다.' 상황을 전하던 목소리는 금세 분노와 절망으로 바뀌었다.
'아! 8.8 때보다 더 가슴 아파.''아... 증말 미치겠다.''힘들어서 (생중계) 못 보겠네요...' 현장에 있던 한 3년차 피디는 이런 카톡을 올렸다. '이것이 KBS입니까!' 더 이상 술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
금방 울 것 같은 눈으로 날 보던 후배 피디들 본관 앞에 도착했을 때, 회사는 침몰하고 있었다. 경찰 버스가 회사를 둘러쳐 유가족들의 진입을 막고 있었지만 그것은 물리적 상황일 뿐이었다. 유가족들의 분노는 이미 회사를 집어 삼키고 있었다. 어떤 아빠는 버스 위로 올라갔고 어떤 엄마는 경찰을 붙잡고 오열했다. "김시곤 나와! 사장 나와! 우린 사과 못 받으면 안 가!" 그들의 목소리에, 눈에, 가슴 앞 영정사진에 결기가 서려 있었다. 설득도 진압도 통하지 않을 상황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었다.
현장에는 피디, 기자들이 몇 명 나와 있었다. 몇은 울고, 몇은 넋이 나가 있었고, 몇은 담배를 피웠다. 후배 피디들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아무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지만 '선배, 어떻게 해야 해요?'라고 묻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시선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후배들에게 차마 '나도 모르겠어요, 나도 울고 싶어요'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참담한 표정으로 본관을 바라보고 있는데 한 유가족이 물었다. "어디서 오셨어요?" 나도 모르게 허리가 숙여졌다. "죄송합니다. 여기 직원이에요."
김시곤도 사장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유족들은 떠나지 않을 것 같았다. 어차피 더 잃을 게 없는 사람들이었다. 밤 12시가 다 될 무렵 경찰 버스가 조금 움직이고 길이 생겼다. 국회의원들의 중재로 유가족 대표 10명이 회사 안에 들어가기로 한 것이다. "OO이 아빠, 힘내세요!", "사과 받아서 돌아오겠습니다." 유가족들이 서로에게 소리쳤다.
취재진이 대표단을 찍기 위해 몰려들었다. 유가족들이 일부 취재진을 막아섰다.
"개××야, 벼룩도 낯짝이 있어, 여기가 어디라고 와!" TV조선 취재차량이 욕을 먹고 본관 앞에서 쫓겨났다. 사다리 위에 올라가 있던 YTN 촬영기자는 멱살을 잡혔다. 대표단을 호위하던 한 유가족이 소리쳤다. 'KBS, MBC, YTN, 연합뉴스, TV조선은 찍지 마!' 한 시간 전까지 나와 같이 술을 마시던 친구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날 밤, KBS만 침몰하는 게 아니었다. 대한민국 언론이 무너지고 있었다.
KBS는 유가족만 적으로 돌린 게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