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6월 24일 노무현 대통령이 NSC 위기관리센터 개소식에 참석해 이종석 사무차장(맨 왼쪽) 등 참석자들과 환담하고 있다.
청와대
자주 국가 건설은 대통령과 그가 '100% 일치'한 꿈이었다. 이를 위한 현실의 당면과제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와 자주국방이었고, 이를 위한 기초 작업의 하나가 '남북한 군사력 비교'였다.
그는 자신의 의뢰로 한국국방연구원이 이에 대한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국방부가 불만을 나타낸 과정을 전하면서 "국방부가 북한군에 대한 남한군의 열세"라는 강박증에 빠져있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국방부는 2004년에 미 국방정보기관(DIA)이 '남한의 재래식 군사력은 현재 북한보다 우월하다'는 자체작성보고서를 보내오자 이에 대해서도 반대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노무현 정부 시절 최대 이슈 중 하나였던 이라크 파병 문제와 관련해서 보수 세력은 물론 노무현 정부 핵심 인사의 미국 중심 사고도 소개했다.
윤영관 외교부 장관이 외교안보참모회의에서, 주한 미 대사관이 한반도 관계 과장급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본부에 보고한 외교전문을 그대로 읽었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추가파병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부시 정부의 북핵 정책에 협조하기보다는 정책전환을 요구하고 있는 데 대해 미국정부가 크게 실망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분노한 노 대통령은 대통령직을 걸고서라도 이 불평등한 (한미) 관계를 고쳐가겠다면서 "내 시대에 내가 노력하다가 한미 관계가 깨지면 다음 대통령은 보다 균형된 한미 관계를 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를 포함해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비화들도 다수 소개했다. 우선 정권 초기 NSC 위기관리센터가 재난재해 업무의 컨트롤 타워를 맡느냐에 대한 논란이 눈에 띈다. 청와대에 컨트롤 타워가 있으면 대통령에게 직접 부담이 전가되므로 국무총리실이니 관련 부처에 컨트롤 타워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으나 노 대통령이 "국민은 궁극적으로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며 NSC위기관리센터가 컨트롤 타워를 맡도록 했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국가 위기관리의 컨트롤 타워 논란과 관련해 큰 시사점을 주는 대목이다.
진보진영으로부터 큰 비판을 받았던 '전략적 유연성' 문제와 관련해서는, 애초 미국은 대만 유사시 한국을 발진기지로 삼는 군사계획을 세웠으나 한미 간 '전략적 유연성' 합의에 따라 포기했다는 사실을 처음 공개했다.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 요구에 대해 노무현 정부는 처음부터 유연성 자체는 인정하되 한국이 동북아시아의 분쟁에 휘말려서는 안 된다는 기조를 정했고, 결국 2005년 6월 워싱턴 한미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이 노 대통령의 요구를 수용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한 달여 뒤 리처드 롤리스 미 국방성 아태담당 부차관보가 "지금까지 대만사태 관련 유사시 대비계획은 가정은 한국으로부터의 작전을 상정한 것이었다"며 "이제 한국 정부의 입장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으로 밝혀졌고, 미국 정부가 이를 이해하므로 대만 유사시 대비계획의 가정 자체를 바꾸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는 것이다.
그는 이와 관련해 "지난 9년 동안 한미 관계를 고려해 이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으나 그때의 일이 역사가 됐고 한편으로 전략적 유연성 문제로 부당하게 비난을 받은 참여정부의 명예회복을 위해 밝히기로 결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략적 유연성 비화 9년 만에 공개... 홍석현 주미대사 후임 백낙청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