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지일은 상곤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상반된 연기를 보여준다. 서안으로 가는 기차에서는 담담하고 차분하게, 찬승으로부터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기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위협하는 장면에서는 통제의 끈을 놓아버린 채 광기에 휩싸인 상곤의 불안과 슬픔에 몸을 던진다.
극단 물리
배우 박지일은 상곤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상반된 연기를 보여준다. 서안으로 가는 기차에서는 담담하고 차분하게 고백 형식의 내레이션을 이어가는 한편, 찬승으로부터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위협하는 장면에서는 통제의 끈을 놓아버린 채 광기에 휩싸인 상곤의 불안과 슬픔에 몸을 던진다. 혜화동 L씨는 드라마에서 본 배우의 연기를 무대에서 직접 보는 게 신기하다며 마냥 들뜸도 잠시, 시간이 흐르면서 극에 심취한 듯 몸을 의자 등받이에서 분리했다.
물론 "그게 뭐 어때서?" 의아해할 수 있으나 이 상황은 그리 단순하게 치부해버리고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오랜 임상 경험상(?) 관객의 몸이 등받이에서 떨어져 무대 앞쪽으로 기울어진다는 것은 극에 그만큼 집중하고 있다는 증거이자 보다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관객의 심리가 반영된 행동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시 한태숙 연출의 작품은 혜화동 L씨도 움직이게 한다!
혜화동 L씨는 객석을 빠져나오며 "이거 참 이상하게 재밌다. 드라마 보는 거랑은 또 다르구나. 근데 이거 보니까 나도 기차타고 싶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이상하면 이상한 거고, 재밌으면 재밌는 거지 이상하게 재밌는 건 대체 어떤 재미인가. '이상한 재미'라는 더 이상한 표현을 통해 그가 이 작품을 어떻게 봤는지는 더 이상 물을 필요도 없어 보였다. 나는 이 이상한 재미를 좀 안다.
잠깐 설명하면, 모름지기 '이상한 재미'란 드라마처럼 노골적이거나 예능처럼 친절한 매력(자막 혹은 포인트를 짚어주는 과잉 친절한 화살표 등으로 보는 동안 웃는 거 말곤 달리 할 게 없어 그저 웃고마는)은 부족해도 그 나름의 적당한 '불친절함'으로 상상의 문을 열어주고, 나아가서는 마음 속 깊은 곳에 숨어있는 물음표들까지 톡톡 건드려 안부를 전한다는 점에서 연극이 갖는 매력 중 하나다. 이 매력에 눈뜨기 전까지는 개인에 따라 시간이 좀 걸릴 수 있으나 일단 뜨고 나면 치명적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