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을 밀고 약을 바른 가을이의 목자세히 살펴보니 겨드랑이 부분에도 발적이 있었다.
박혜림
약을 바르고 덜 긁는가 싶었는데 오늘 깜짝 놀랐다. 가을이의 목덜미 주변에 부스럼 딱지 같은 것이 만져지는 것이다. 털이 하도 촘촘해서 가위로 잘라낸 후에야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이게 대체 뭘까. 딱지는 노르스름하고 털에 엉기어 잘 떨어지지 않으며 피부는 거칠다. 다시 병원에 갔다. 가을이의 목 주변 털을 클리퍼로 완전히 민 후에야 세균성 피부염이라는 판정이 나왔다. 원인은 지난번에 발견한 벌레일 수도 있고 면역력이 약해진 틈을 타 세균에 감염된 것일 수도 있단다. 겨드랑이 주변에도 발적이 있다. 바르는 소독약과 먹는 약 모두를 지었다. 시골에서 놀긴 잘 놀고 돌아와 고생이구나.
2014년 5월 28일 수요일 미루고 미루던 스케일링을 받기로 했다. 가을이는 나이가 많아(11살 추정) 전신마취가 부담이 되어 피하고 있었지만, 오른쪽 어금니에 까만 구멍이 보인다. 요즘은 유독 딱딱한 건 안 씹으려하고 밥도 왼쪽으로만 먹는 모습에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심장사상충 치료의 영향으로 혹시 심장에 이상은 없는지 면밀히 검사를 해야 했다. 심전도, 청진, 흉부 엑스레이, 피검사 등. 만약 조금이라도 이상이 보이면 스케일링 보다 치료를 먼저 해야 한단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두 시간에 목이 타들어갔다. 가을이가 얼마나 겁에 질려 있을지 생각하면 더욱 그랬다.
다행히 건강 상태는 양호하다고 한다. 이제 약 6시간 후에 수액을 충분히 맞은 가을이와 만나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나는 또 무서워 죽을 지경이다. 사상충 치료를 받을 때는 48시간이나 떨어져 있었는데 고작 6시간이 두려워 눈물이 앞선다. 보호자 서약서에 '1%의 사고사(死)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합니다' 대목에서 손이 벌벌 떨려 싸인을 겨우 했다. 휴. 의사선생님을 믿어야지. 집에 가 청소나 하자.
드디어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가을이가 잘 회복하고 수액을 맞고 있다고. 한달음에 병원에 도착했다. 가을이가 나를 보고 종종 걸음으로 오다가 잠시 기우뚱 한다. 아직 어지러운 모양이다. 치료 과정을 사진을 통해 설명해주신다. 우려하던 오른쪽 어금니는 발치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고 뽑아보니 뿌리가 거의 녹아있더란다. 그래도 다른 이빨들은 흔들리지 않아 그저 깨끗해졌다. 아유 하얗고 예뻐라. 입냄새도 안 난다. 단, 잇몸이 많이 부었고 출혈도 있어 먹는 약과 치료용 치약을 사와야 했다. 가을이는 그 많은 수액을 맞고도 꾹 꾹 참다가 병원 밖을 나서야 볼 일을 봤다. 이그, 딱한 것.
2014년 5월 31일 토요일또 병원이다. 사고다. 너무 황당해서 울음은커녕 화만 난다. 밤에 산책가려 집 계단을 나서는 찰나, 어두운 곳에 있던 행인1(성인 남자)이 가을에게 갑자기 손을 뻗었다. 가을은 기절 직전으로 도망을 쳤다. 골목이 좁아 뱅그르르 돌면서 어디가 잘못됐는지 왼쪽 다리를 심하게 전다. 가을이가 워낙에 조금씩 절던 습관이 있어 근육에 경련이 났나 싶어 다리를 주물러줬다. 그런데도 발을 전혀 딛지 못하고 완전히 배 쪽으로 올려붙이고 있었다.
슬픈 눈으로 나를 보며 자꾸만 집 쪽으로 몸을 틀었다. 우선 집에 들어가 불을 환하게 켜고 다리부터 발까지 찬찬히 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