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교동의 한 주택가 골목. 오른쪽에 밤꽃이 흐드러지게 핀 밤나무가 보인다. 뒤에 보이는 산이 춘천의 진산이라 불리는 봉의산.
성낙선
지금은 낡고 퇴락한 기운이 역력하다. 그래서 처음 그곳에 발을 들여 놓았을 때는 빛 바란 풍경들이 어딘가 어둡고 외진 곳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좀 더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런 풍경들에서 꽤 편안하고 친숙한 분위기를 찾을 수 있게 된다. 그때가 돼서야 비로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오랫동안 유지해온 삶의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교동은 유난히 '밭'이 많은 동네다. 대문 안은 물론이고 대문 밖에서까지 밭을 가꾸는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손바닥만 한 땅덩이도 그대로 놔두는 법이 없다. 때로는 그 밭이 텃밭의 규모를 넘어서는 경우도 있어 밭주인이 직업 삼아 농사를 짓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무슨 큰 욕심이 있어, 그런 밭을 일구고 있는 건 아니다.
교동 사람들은 빈 땅을 보면, 그곳에 뭔가를 꼭 심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그런 종류의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요즘 도심의 빈 땅에 꽃이나 나무를 심는 사회운동이 눈길을 끌고 있다. 하지만 춘천의 교동에서는 굳이 그런 운동을 펼칠 필요가 없다. 이곳에선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게, 빈 땅이라 빈 땅은 모두 이미 무언가가 가득 심어져 있기 때문이다. 빈 땅이 드물다.
공터라고 모두 텃밭만 있는 건 아니다. 어느 곳에서는 아예 작은 정원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잘 가꿔진 꽃밭을 발견할 때도 있다. 때로 그런 밭들 중에서 절반은 텃밭이고, 또 남은 절반은 꽃밭인 경우를 보게 될 때도 있다. 그런 밭을 발견하게 될 때는 정말이지 그 밭을 일구는 사람이 누군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춘천은 상당히 큰 도시다. 다른 도시들처럼 삶의 여유를 느끼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교동 사람들은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치고는 어딘가 모르게 다른 데가 있다. 그러니까 이곳 사람들은 서울 사람들처럼 주변에 남아도는 땅이라도 있으면 무조건 주차장을 만들거나 작은 건물이라도 하나 더 지어 올려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는 영 차원이 다른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