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학사의 '친일' 논란, 이유는 여기 있었다

[서평] 전계완의 <일본, 다시 침략을 준비한다>

등록 2014.06.11 10:29수정 2014.06.11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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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책 표지.

책 표지. ⓒ 지혜나무


오노다 히로(小野田寬郞)라는 일본 육군소위가 있었다. 1944년 12월, 22살의 그는 필리핀 루뱅 섬으로 파병됐다. 적 후방을 교란하고 선제공격을 차단하라는 명령이 주어졌다. 그는 최선을 다해 임무를 수행했다. 자그마치 29년간이었다.

파병 당시 그는 250여 명의 부하를 거느렸다. 출병 시점에 필리핀은 미군 함락 직전이었다. 생존해 귀환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미군 공격으로 부하 207명이 죽었다. 그는 살아남은 43명을 이끌고 정글에 들어갔다. 위험한 게릴라전이 그들을 기다렸다.


그들은 1945년 10월에 패전 전단을 봤다. 전단은 12월에도 확인되었다. 이때 43명 중 39명이 패전을 인정하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오노다 소위와 부하 3명은 투항을 거부했다. 먼저 투항한 또 다른 부하들과 가족들의 귀환 호소도 듣지 않았다. 이유는 하나였다. 천황의 명령에 충실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받은 마지막 명령은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는 것이었다. 1974년 투항 당시 오노다의 나이는 51세였다.

2005년 5월, 태평양전쟁 참전 옛 일본군 장교 나카우치 스즈키와 사병 한 명이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 섬 정글에서 발견되었다. 각각 87세, 83세의 노인들이었다. 종전 60년 만에 발견된 이들은 각각 일본 육군 제30사단 소속 중대장과 일본군 상병이었다.

그들은 필리핀 제너럴 산토스 시 산악지대에 일본군 40여 명이 더 살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그들이 전선을 이탈하지 않은 이유는 군법회의에 회부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이 책 5장 '일본, 일본인의 의식'에 나오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천황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 '기리(義理; 싫더라도 타인의 눈을 의식해 억지로 참고 하는 일)' 때문에 개인보다 집단(국가)을 우선시하는 일본인의 독특한 의식세계를 잘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일본, 다시 침략을 준비한다>는, '한반도 침략의 야욕'을 키워가고 있는 일본을 비판적으로 조망하는 책이다. 저자는 일본과 일본인의 '침략 야욕'이 의식 속에 유전자처럼 각인되어 있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오노다 소위와 나카우치 중대장 이야기가 구체적인 근거가 아닐까. 천황을 정점으로 똘똘 뭉치며, 목표를 정하면 끝까지 돌진하는 일본인의 정신 속에 '오노다'와 '나카우치'가 있지 않을까.


"한국은 그냥 어리석은 국가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말이다. 일본 3대 잡지이자 대표적인 우익 잡지인 <주간문춘(週刊文春)>이 2013년 11월 '한국의 급소를 찌른다'라는 특집기사에서 폭로한 아베의 한국 폄하 발언이다. 아베는 스스로를 '군국주의자로 불러도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극우 정치인의 '튀는' 발언쯤으로 치부해도 되지 않을까.

하지만 문제가 그리 간단치 않아 보인다. 역사적으로 한국을 '어리석은 국가'로 본 건 아베가 처음이 아니라고 한다. 저자는 19세기 말 정한론을 주장한 후쿠자와 유키치와 16세기 말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을 꼽는다.


후쿠자와에게 한국은 일본을 배워야 하고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정벌해야 하는 나라였다. 도요토미는 자신을 '태양의 아들'로 지칭하면서 조공을 바치지 않으면 침공해 어리석은 조선을 쑥대밭으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베와 후쿠자와, 도요토미 유의 망언은 식민지 조선의 마지막 총독이었던 아베 노부유키의 '저주'에서 정점을 찍는다. 1944년 10대 조선 총독으로 부임한 그는 '여자정신대 근로령'을 공포해 우리나라 미혼여성을 군수공장과 종군 위안부로 끌고 간 인물이다. 그는 일본 패망 후 조선을 떠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마지막으로 남겼다.

우리는 패배했지만 한국이 승리한 것은 아니다. 장담하건대 한국이 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이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한국인에게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놓았다.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보라. 실로 조선을 위대했고 찬란했으며 찬연했지만 한국은 결국 식민교육의 노예로 전락한 것이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온다. (21쪽)

작년 내내 친일·독재 미화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역사전쟁'을 촉발한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사태를 상기시키는 발언이다.

'다시 돌아온다'고 호언장담한 아베 노부유키유

이 책은,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을 근거로 '다시 돌아온다'고 호언장담한 아베 노부유키 유의 '침략 본성'을 정색하고 살핀다. 저자의 핵심 논점은 이른바 '세 번째 정한론'이라는 말에 담겨 있다. 경제와 외교력을 통해 "한나절이면 한국 정복은 가능하다"고 말하는 일본 언론과 우익의 망언에서 드러나는 '경제 정한론'이 그것.

저자는 역사 속의 일본 침략기와 오늘이 닮아 있다는 점에서 구체적인 논거를 찾는다. 첫 번째 정한론은 임진왜란을 불러왔다. 당시 조선은 동인과 서인으로 당파가 갈려 사사건건 분열했다. 두 번째 정한론의 결과물인 한일병탄 직전에 조선은 개화 세력과 쇄국 세력의 다툼으로 온 나라가 갈기갈기 찢겨 있었다. 세 번째 정한론을 맞이하고 있는 지금 대한민국은 남북 분단, 호남과 영남의 갈등, 진보와 보수 및 세대·계층간 갈등으로 극심하게 분열해 있다.

저자는 앞선 두 차례의 정한론 때처럼 현재 일본 상황도 심각하다고 분석한다. 20여년이 넘는 장기 불황의 후유증, 3·11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불안과 불만, 독도·센카쿠·쿠릴 열도 등을 중심으로 심화하고 있는 주변국과의 영토분쟁 등 풀어야 하는 숙제를 가득 안고 있다.

저자는 아베가 '강한 일본' 전략을 내세우는 이유를 바로 이런 내·외적인 상황에서 찾는다. '강한 일본' 전략은 별게 아니다. 복잡한 내부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을 때 외부에 적을 만들어 폭발 직전의 에너지를 공격의 화살로 전환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술수일 뿐이다.

저자는 '강한 일본' 전략의 핵심을 일본 헌법 제9조로 상징되는 전후 체제 탈피로 분석하다. 일본 헌법 제9조는 전쟁을 포기하고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으며 군대를 보유하지 않는다는 조항이다. 일본 평화헌법의 근간이기도 하다.

아베는 바로 그 평화헌법의 뿌리를 흔들어 개헌하는 것을 자신의 가장 큰 정치적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이다. 이는 2013년 12월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부인 아베 아키에 여사가 직접 밝힌 내용이기도 하다. 아키에 여사는 개헌이 아베가 국회 진출 때부터 가장 원했던 일이라는 사실도 언급했다고 한다.

'강한 일본' 전략을 야심차게 추진하는 아베정권의 행태는 섬뜩하다. '병 속에 든 괴물'이라는 표현이 비유적인 수사로만 다가오지 않는다. 이 말은 일부 학자들이 일본을 비유해 쓰는 말이라고 한다. 주변국을 상대로 끊임없이 침략전쟁을 일삼는 전쟁 괴물 일본을 가리킨다.

태평양전쟁에서 패망한 일본은 강제로 병 속에 갇혔다. 평화헌법이라는 단단한 마개로 덮어 두었지만 안심할 수 없다. 병 속에 갇힌 신세지만 호전적인 괴물의 본색은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 들어 괴물이 병 밖으로 나올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아베 정권으로 대표되는 극우 세력이 괴물로 변신하고 병 속에서 몸부림을 치고 있다. (30쪽)

'괴물' 일본의 몸부림은 역사교과서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저자가 정리해 전하는 일본 역사교과서 도발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2014년 3월 하순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 회담 직후, 아베정권은 전격적으로 일본 초등교과서 검정 결과를 발표한다. 독도가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 일본 고유 영토라는 내용이 들어갔으며, 5학년과 6학년 사회 교과서 8종 모두에도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기술이나 지도가 들어갔다고 한다.

2010년에는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쓴 일본 교과서가 단 한 종에 불과했다. 그 나머지는 지도에 독도를 다케시마로 표현하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4년이 흐른 뒤 독도를 일본 땅으로 표기한 교과서는 모두 6종으로 늘어났다. "일본해에 있는 다케시마는 일본 고유의 영토이나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식의 내용이었다.

일부 사회 교과서에서는 독도를 일본 땅으로 표기하는 대신 2002년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 사실을 삭제했다고 한다. 1923년 간토 대지진에서 일본인에게 학살당한 조선인 수를 '수천 명의 조선인'에서 '다수의 조선인'으로 바꾸기도 했다. 침략 전쟁인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두고 "서양 지배를 받고 있는 아시아 국가에 용기를 줬다"며 미화한 교과서도 있다고 한다.

'괴물' 일본이 '숨은 발톱'을 드러내는 지금, 대한민국을 돌아본다. 시끄럽고 어지럽다. 정부는 일본 극우 잡지가 '아줌마 외교'라는 말로 대통령을 조롱해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 외교 문제가 국내 정치의 이해관계와 연결되어 내수용으로 전락하는 것을 우려하는 저자의 시선이 지나쳐 보이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호시우보(虎視牛步)의 자세로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오늘과 같은 '자신감 과잉상태'는 결코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을 역사는 말한다. 대한민국은 유사 이래 가장 잘 살고 있지만 가장 큰 위기 앞에 놓여 있다. ('머리말'에서)
덧붙이는 글 <일본, 다시 침략을 준비한다>(전계완 지음 / 지혜나무 / 2014. 4. 28. / 327쪽 / 16,000원)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일본, 다시 침략을 준비한다

전계완 지음,
지혜나무, 2014


#<일본, 다시 침략을 준비한다> #전계완 #지혜나무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병 속에 든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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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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