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게이트> 표지
오마이북
사건의 발단은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첫해, 광우병 우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 확산됐다. 이른바 '촛불 정국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당황한 이명박 정부의 대처는 엉뚱했다. 사회 전반을 다잡겠다며 전방위적인 사찰과 응징으로 화답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빚어진 사건이 바로 청와대와 지원관실이 주도한 '민간인 불법 사찰'이다.
생각해보면 이 사건의 발단은 황당한 수준이었다. 사기업 금융업체 대표로 일하던 김종익씨가 자신의 인터넷 개인 블로그에 올린 한편의 동영상이 계기가 됐다. 그 동영상은 2008년 당시 미국 의료민영화를 비판해 화제가 된 영화 <식코>를 패러디한 <쥐코>였다. 그런데 이 사실을 지원관실이 포착하면서 이후 엉뚱한 파문으로 이어진 것이다.
지원관실은 민간인 신분인 김종익 대표가 운영하던 회사를 권한도 없이 불법 수색했다. 그러더니 이후 원청 업체에 압력을 넣어 김종익씨를 대표직에서 물러나게 했고 이어 그가 보유하고 있던 회사 지분도 포기하게 만들었다. 더 나아가 서울 동작경찰서에 수사를 의뢰하기도 했다. 그들의 이 모든 행위는 불법이었다.
김종익씨는 순수 민간인 신분이었다. 따라서 그가 무엇을 하든 국무총리실 소속 공직윤리지원관실이 개입할 권리도, 이유도 없었다. 지원관실의 권한은 공무원의 비위 등 공직자들에 한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영역을 뛰어 넘어 정권에 반대하는 행동을 한다는 이유로 민간인 신분인 김종익씨를 파멸로 몰아넣은 것이다. 있을 수 없는 '권력형 범죄'인 것이다.
세상 사람들에게 이 사실이 폭로된 것은 그로부터 2년이 지난 2010년 6월 29일이었다. 고발 프로그램의 대명사인 MBC <PD수첩>이 국가권력형 범죄를 폭로한 것이다. 방송 후 두려움에 떨기 시작한 건 지원관실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어찌했을까. 그때라도 거기서 멈춰야 했으나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지원관실의 판단은 달랐다. 그들은 제 2라운드를 시작했다. 이른바 '국가 권력 기관의 총체적 범죄 은폐'에 나선 것이다.
'컴퓨터를 한강에 통째로 던져라' 청와대 행정관의 지시
가장 먼저 한 일은 범죄 증거가 담긴 모든 문서를 파쇄 하는 것이었다. 공문서 수만장이 지원관실의 문서 파쇄기 안에서 갈가리 찢겼다. 이어 지원관실의 모든 컴퓨터를 파괴하기 시작했다. 무서운 음모였다.
2014년 6월 나온 장진수의 <블루게이트>(오마이북)에는 이 같은 무서운 비밀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는 2008년 이 사건 시작에서부터 2013년 11월 양심선언 후 대법원 선고가 있을 때까지 전 과정을 마치 드라마 대본처럼 상세하게 썼다. 지금까지 있었던 그 어떤 양심선언보다 구체적이며 적나라하다. 특히 내 눈을 끄는 대목은 당시 이명박 청와대에서 행정관으로 일하던 최종석과 관련한 부분이었다.
민간인 불법 사찰은 지원관실만의 단독 범죄가 아니었다. 이명박 청와대가 깊숙이 관여했다. 추후 스스로를 '민간인 불법 사찰 사건의 몸통'이라고 주장하며 괴상한 기자회견을 연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을 비롯하여 권력의 핵심 세력이 결합한 '총체적인 권력형 범죄'였다. 그렇기에 이 은폐 과정에서도 청와대 관계자들이 적극적인 역할을 했는데 그 중 한명이 청와대 최종석 전 행정관이었다.
2010년 7월 5일 지원관실의 과 서무였던 장진수를 최종석 행정관이 급히 찾았다고 한다. 장진수를 만난 최종석은 놀라운 말들을 쏟아냈다. 그는 "내일 검찰이 압수수색을 하러 국무총리실로 갈 것"이라며 범죄 증거의 완벽한 은폐를 지시했다고 한다. 이에 장진수는 상관이었던 진경락 과장의 지시에 따라 "이미 필요한 조치를 했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최종석의 다음 지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발언이었다고 한다. 마치 조직폭력배를 주제로 다루는 영화에서나 볼만한 대사였다.
"어떻게 해도 검찰은 자료를 다 복구한다고 합디다. 반드시 물리적인 조치를 해야 검찰이 복구를 못 해요. 망치로 깨 부숴 쓰레기통에 버리든지... 아니면 한강에 던져 버리면 더 좋은데. 하드 디스크를 분리하기 어려우면 아예 컴퓨터를 통째로 강물에 갖다 던져 버려도 괜찮고. 검찰에서 문제 삼지 않기로 (청와대) 민정 수석실과 얘기가 다 돼 있어요."국가 권력이 '범죄의 주체'로 나서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확인할 수 있는 끔찍한 발언이었다. 2012년 4월, 결국 최종석 전 청와대 행정관은 이 엄청난 증거 인멸 행위로 구속된다. 장진수의 양심선언이 아니었다면 영원히 파묻힐 뻔한 범죄였다.
내가 왜 그들과 공범인가? 장진수의 분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