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퇴 발표 앞 둔 문창극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24일 오전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후보사퇴 입장 발표를 위해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희훈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는 24일에 사퇴했지만, 그가 일으킨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친일 망언 등으로 국민적 지탄을 받은 그는 "독립투사 문남규 선생이 나의 할아버지다"라는 말을 남긴 채 사퇴했다.
친일 망언을 한 사람도 독립투사 할아버지를 둘 수 있다. 하지만 문 전 후보자의 말이 과연 진실인지를 조사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문 전 후보자의 주장에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런 석연치 않은 주장에 국가보훈처가 사실상의 공신력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23일자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지난 20일 문 후보자 측은 문남규 선생이 문 후보자의 할아버지가 아닌지 확인해달라고 보훈처에 문의했다. 문남규 선생은 2010년 11월 15일 순국선열의 날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은 분이다. 그런데 문남규 선생의 유족이 확인되지 않아서, 그동안 보훈처가 선생의 훈장을 보관해왔다.
문 후보자 측의 문의에 대해 보훈처 관계자는 "문남규 선생이 문창극의 할아버지일 가능성이 높다"는 추정적 판단을 내놓았다. 이 판단을 근거로 문 전 후보자는 "나는 독립운동가의 후예다"라며 자신의 친일 망언을 씻어내려 했다.
그런데 보훈처가 추정의 근거로 제시한 사항들을 살펴보면, 이런 근거들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보훈처가 제시한 근거는 크게 세 가지다.
① 문남규 선생의 한자 이름과 '문창극 후보자의 할아버지'(이하 '할아버지')의 한자 이름이 같다. ② 문남규 선생과 할아버지의 원적지(본적지)가 똑같이 평안북도 삭주군이다. ③ 문남규 선생이 사망한 1921년에 문 후보자의 할아버지도 사망했다. 이 점은 문 후보자의 아버지인 고 문기석(1914년 생)이 "내 아버지는 일곱 살 때 돌아가셨다"고 말한 데서 입증된다. 보훈처가 제시한 근거 세 가지... 모두 사실일까 여기서 ③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관지인 1921년 4월 9일자 <독립신문> 보도에서 확인된다. 문남규 선생의 순국에 관한 유일한 자료인 이 날짜의 <독립신문> 기사에 따르면, 선생이 순국한 시점은 1921년이 아니라 1920년 2월께 혹은 그 직후다.
이 점은 <독립신문> 기사의 앞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문남규 선생이 소속한 부대가 평북 삭주에 출동한 계기를 설명하는 문단의 앞부분에서, <독립신문>은 "2년 2월에 이르러" 러시아에 주재한 최영호 부대가 적의 기습을 받은 데 대한 보복의 차원에서 여러 방면의 부대가 출동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