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 힘내라'세월호침몰사고 단원고 희생자 유가족들이 25일 오전 경기 안산 단원고에서 치료 뒤 첫 등굣길에 오른 2학년 학생들을 안아 주고 있다.
이희훈
아직 시신으로도 돌아오지 못한 사람이 11명. 이마저도 확실하지 않은 숫자. 살아난 아이들은 우리가 단원고 학생이라는 게 알려지더라도 이상하게 보지 말아 달라고, 길에서 웃더라도,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더라도 이상한 시선으로 보지 말아 달라고 애원한다.
71일이라는 긴 수학여행을 끝내고 친구들이 사라진 학교로 돌아가는 아이들과 그들을 안아주는 자식 잃은 부모의 모습에 온종일 가슴이 아린다.
많은 사람들에게 큰 상처를 남긴 세월호얼마 전,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앉자마자 허겁지겁 세월호 얘기부터 했다. 고등학교 2학년인 딸내미가 세월호를 타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그 날짜가 단원고 아이들이 사고를 당한 다음날이었단다. 딱 하루의 시차였다.
세월호가 4월 16일이 아닌 하루 뒤에 사고가 났다면 자기 딸내미가 당했을 거 아니냐며, 평소 느긋하던 성격의 친구는 충혈된 눈으로 같은 얘기를 목청 높여 몇 번이고 반복했다. 자식과 관련된 일 앞에서 느긋하고 나긋한 부모는 없다. 더군다나 그 일이 불행과 관련된 일임에야.
자다 말고 깨서 울기도 하고 악몽에 시달리는 딸내미 앞에서는 뉴스를 보는 것도 조심스럽고 세월호 얘기는 꺼내지도 못한단다. 사춘기도 없이 지나간 무던한 아이였는데 이제 사춘기를 호되게 겪는다며 친구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세월호에 탑승했던 피해자들뿐만 아니라 가족들, 노동자 밀집 도시인 안산이라는 도시 전체가 겪는 깊은 슬픔을 넘어, 세월호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부산역 신축공사장 벽에 빼곡하게 글을 쓰며 울던 여고생을 잊을 수가 없다. 대부분의 어른들이 미안하다고 말할 때, 그 학생은 왜 안 구해줬냐고, 왜 죽어가는 친구들을 지켜 보기만 했냐고 벽에 쓰며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주말마다 부산역에서 열리는 세월호 추모집회에는 낯선 얼굴들이 많다. 뭐라도 해야 할 거 같은데 혼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아이들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나왔다는 아주머니. 아이들을 마주보는 일이 이토록 죄스럽고 미안한 적이 없었다는 20년차 경력의 교사. 집안에서도 차안에서도 틈만 나면 눈물이 흐른다는 아이엄마.
그런 이들이 모여 주말마다 촛불을 든다. 지지난 주말엔 단원고 2학년 8반 아이들의 부모님들이 멀리 부산까지 오셨다. 해경이 세월호에서 선원들을 구해낼 때 기울어가는 배 유리창에 비쳤던 아이들이 2학년 8반 아이들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 부모님들의 얼굴을 보는 일이 참 힘겨웠다.
자신들에게 닥친 위험을 가장 먼저 느꼈을 아이들. 해경이 오고 헬기가 뜬 걸 보며 가장 먼지 희망을 품었을 아이들. 누구든 다가가 창문을 깨주기만 했어도 살았을 아이들을 수장한 부모들의 마음이 어땠을까를 헤아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오그라들고 입에서 신음소리가 새어나온다.
비극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우리가 국민소득에 걸맞은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면 참사 이후의 과정들은 온 사회가 나서서 희생자들을 위로하며 상처를 보듬고 아물게 하는 시간들이어야 했다. 그러나 우리는 참사 이후 더 많은, 그리고 더 깊은 상처를 입어야 했다.
5월 8일 그날, 대통령은 유가족을 만나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