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욕정'에 누우니 신선이 따로 없네

[마을 숲 이야기] 전북 진안 윤기 마을 숲과 주변 마을의 모정

등록 2014.06.30 16:27수정 2014.06.30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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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운면 오정 마을
백운면 오정 마을이상훈

개교기념일을 알차게 보낼 궁리를 하다가 찾아간 곳은 진안 내동산 자락에 있는 마을입니다.

진안터미널에서 백운행 군내버스를 기다리면서 장날도 아닌데 많은 어른들로 붐볐습니다. 버스에 좌석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군내버스를 타고 가는 도중 어른들의 대화 속에서 이유를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월요일이라 주말에 가지 못한 병원에 다녀가는 중이었던 것입니다. 요사이 군 단위 지자체는 노인 인구가 30%에 달합니다. 그러다보니 진안군 같은 경우 이번 지방선거에서 전체 인구대비 유권자가 80%에 달한다고 합니다. 농촌의 상황을 보여주는 일면입니다.

백운면 오정(五井) 마을에 닿았습니다. 내동산 자락에 자리한 마을입니다. 이제 막 모내기를 끝마친 상태로 마을은 한가로운 모습입니다. 오정(五井) 마을은 마을 앞에 5개의 샘이 있어 붙여진 이름입니다.

풍수상으로 마을의 좌·우 맥이 감싸 앉은 모습으로 소쿠리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마을 입구에는 수령 300년 정도 됨직한 느티나무 오른편에 좌청룡 맥에 모정(茅亭)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요사이 마을 답사를 하다 보면 지자체에서 새롭게 건축해 준 모정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 모습이 천편일률적이 뿐더러 정이 묻어나지 않고 낯설 뿐입니다. 마을사람들이 함께 지었다는 오정마을 모정은 1949년에 지어졌으니 이미 환갑을 지낸 셈입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백중 때 술멕이를 하는데 전혀 불편이 없습니다. 마을에서 목수 일을 했던 강영수 어른이 매년 보수를 해주기 때문입니다. 오정마을에서 바라본 풍경은 초여름 풍경화 그 자체였습니다.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이 답사를 상쾌하게 해주었습니다. 역시 내동산 자락에 자리한 서촌마을과 동산마을 모정을 들러 보았습니다. 하나같이 마을사람들에 의해서 지어진 모정은 50~60년 지난 지금에도 마을사람에게 소중한 쉼터로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동산모정 상량에는 '서근래산(西近萊山) 동회선각(東回仙閣) 은폭세유(銀暴細流) 함외무진(檻外無盡)' (서쪽에는 내동산이 가깝고 동쪽으로는 선각산이 돌아온다. 은빛폭포가 가늘게 내려와 마루난간 바깥으로 끊임없이 흐른다.)란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마지막 답사지 윤기마을에 닿았습니다. 윤기마을은 윤장자가 살았다고 하여 '윤터골'이라 불린데서 유래합니다.

마을 어귀에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자리합니다. 예전에 이 느티나무는 풍흉을 점치는 나무로, 마을 공동체를 위한 당산제를 지내던 곳이었습니다. 마을 수구(守口)에 위치한 느티나무, 조금 안쪽으로 천을 따라 들어서면 느티나무(4주)와 개서어나무(4주)로 형성된 조그만 마을 숲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200여 평 정도 되는 마을 숲 터가 지금은 농기계 등 마을사람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공간으로 변했습니다. 본래 윤기 마을 숲은 제법 울창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새마을운동 무렵에 마을 앞 다리를 놓기 위하여 비용을 마련하기 위하여 베어졌다고 합니다. 이후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하였다고 합니다. 오히려 마을에서 좌청룡 맥에 자리한 새로 조성된 숲을 수구막이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마을입지를 살펴보았더니 좌청룡 맥이 북향입니다. 아마도 북풍을 막기 위하여 조성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마을숲에 자리한 '바람을 쐬다' 다라는 이름을 가진 풍욕정(風浴亭)이란 모정이 자리합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풍욕정은 1926년에 건축된 것으로 상량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100년 가까이 윤기마을 사람과 함께한 풍욕정 역시 마을사람들에 의하여 지어졌습니다. 예전에는 마을마다 목수가 있었고 마을사람 부역에 의해서 지어졌으니 얼마나 애정이 담겨있겠습니까? 지금 살고 있는 마을 사람들의 할아버지가 정성들여 지은 '풍욕정' 기둥 하나하나를 보듬어 봅니다.

누워서 상량과 '풍욕정' 현판을 보면서 지긋이 눈감아 봅니다. 그 옛적 시끌벅적하게 마을사람들이 모여 모정을 짓고 상량을 올리며 응천상지삼광(應天上之三光) 비인간지오복(備人間之五福)이라 하여 하늘에서는 삼광 즉 해·달·별이 조화롭게 잘 호응하고, 이 집에 오가는 사람에게는 오복을 누리게 해달라는 마을사람들의 소망을 담았습니다. 그리고 모정이 완성되던 날 '바람을 쐬다'란 시적인 '風浴亭' 현판을 걸고 한바탕 놀았을 그 자리에서 지금 나는 신선이 됩니다.
덧붙이는 글 새전북신문(2014.6.24일자)에 연재하는 이상훈 마을숲이야기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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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전북 전주고에서 한국사를 담당하는 교사입니다. 저는 대학때 부터 지금까지 민속과 풍수에 관심을 갖고 전북지역 마을 곳 곳을 답사하고 틈틈히 내용을 정히라여 97년에는<우리얼굴>이란 책을 낸 바 있습니다. 90년대 초반에는 전북지역의문화지인 <전북 문화저널> 편집위원을 몇년간 활동한 바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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