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 박 대통령 믿고 싸우는 거 절대 아닙니다"

[인터뷰] 김율옥 서울성심여자중·고교 교장

등록 2014.07.01 21:42수정 2014.07.01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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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보다 아이들 안전이 우선입니다" 김율옥 서울성심여자중고교 교장
"돈 보다 아이들 안전이 우선입니다"김율옥 서울성심여자중고교 교장 이창열

"대통령이 졸업한 모교라서가 아닙니다. 서울에 있는 한 학교가 거대 국가 공기업과 1년 넘게 싸우고 있는 겁니다."

지난달 30일 오후 4시 용산구 원효로에 있는 성심여자 중·고교 교장실에서 만난 김율옥(안젤라 수녀) 교장의 모습은 초췌했다. 당초 인터뷰를 위해 만나기로 했던 시간보다 1시간 늦게 만났다.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뜸을 뜨고 왔단다.

김 교장은 지난 28일과 29일, 한국마사회 직원과 마사회가 고용한 용역들로 보이는 건장한 청년들과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다. 마사회가 28일 화상경마장을 시범 개장했기 때문이다. 사실 몸싸움이랄 것도 없었다. 이 학교 교사와 학교 인근 지역주민들 50여명이 김 교장과 함께 저항했지만, '덩치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김 교장은 "이 자리에서 평생 들을 수 있는 욕을 다 먹었다"라고 말했다.

"내동댕이쳐진 학부모 대표는 실신해 병원에 실려가 급하게 시티(CT)를 찍었어요. 선생님들은 정강이를 차였고, 팔이 뒤로 꺾이기도 했지요. 저들은 미리 카메라를 동원해 채증을 했는데 우린 그런 준비도 못 해 오히려 마사회는 우리가 가해자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경마도박장과 학교와의 거리는 235m

김 교장을 비롯해 성심여중·고교 학생, 학부모, 지역주민들과 마사회의 싸움은 2013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5월 대책위가 구성됐고 마사회와의 싸움이 본격화됐다. 현재 대책위 투쟁만 450여일에 이른다.

마사회가 용산구 청파로에 있는 건물을 사들여 화상경마장(마권장외발매소)을 연다는 소식이 알려지고 나서부터다. 이 건물은 지하 7층, 지상 18층 규모로 초고층 빌딩이다.

"대책위를 꾸리고 안 사실이지만, 마사회는 2009년부터 화상경매장 개장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단 한 차례의 주민의견 수렴도 없이 말입니다. 사행성시설을 설치하기 위해선 반드시 사전에 주민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마사회는 불법을 저질렀습니다. 더구나 주거 밀집지역과 학교 인근에 도박장을 개설하면서 말입니다."


마사회 용산 화상경마장과 성심여중·고교는 왕복 12차선(청파로, 원효로) 도로를 사이에 두고 있다. 직선거리로 재면 235m다. 인근에는 또 원효초등학교가 있고, 학교 인근지역은 주거 밀집지역이다.

"학교보건법에 있는 학교환경위생 정화구역에서는 35m 벗어나 있습니다. 하지만 사행성 도박장은 정상적인 사람들을 밖으로 몰아내고, 도박중독자들만이 몰려들어 학교환경과 주거환경이 악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도박장의 '기차효과'

도박장이 개설되면 인근에는 유흥주점과 안마시술소, 모텔 등 온갖 유해업소들이 따라온단다. 도박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도박장의 '기차효과'라고 부른다.

대전 월평동에 있는 마사회의 화상경마장이 도박장 기차효과의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힌다. 대전 월평동에는 지난 1999년 화상경마장이 생긴 이후, 불법주차로 인한 교통난과 유흥시설 밀집에 따른 교육·주거환경 등이 악화됐다. 이후 인근 초등학교는 주민들이 떠나는 바람에 10학급에서 3학급 소규모 학교로 폐교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경마와 경륜, 경정, 내국인 카지노, 소싸움 경기, 복권 가운데 화상경마의 중독성이 가장 심각하다고 도박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어요. 또 인터넷도박 중독보다 심하다고도 하고요. 화상경마장의 주 고객은 돈 많은 사람들이 아니라 서민들이 대부분입니다. 나라가 허가난 도박장을 열고 서민들의 돈을 따먹고 있는 것입니다."

마사회, 국민권익위 결정도 무시

 서울성심여자중·고교 전경
서울성심여자중·고교 전경이창열

마사회가 지역 주민들의 강력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학교 인근에 화상경마장 개설을 강행하려는 목적은 수익성 때문이다. 용산 화상경마장은 연면적 1만8358㎡에 동시 입장인원만 2178명 규모다. 하지만 이는 지정좌석만 이용했을 때를 예상한 추정인원이다. 실제 문을 열면 1일 입장인원은 1만명에 이를 것으로 대책위는 내다보고 있다.

한 사람이 한 창구에서 한 경주에 배팅할 수 있는 최고 금액은 10만 원이다. 하루에 화상경마장에서 17개 경주가 열리는 것을 감안하면 한 사람의 배팅액은 최소 170만 원이다. 한 경주의 판돈은 60억 원에 이른다. 하지만 한 사람이 여러 창구에서 배팅하는 편법을 동원하면 1일 배팅액은 수백 억 원에 이를 수 있다.

마사회가 전국에서 운영하고 있는 화상경마장은 모두 29곳이다. 경마공원은 과천과 부경, 제주 등 3곳이다. 마사회가 이곳들에서 2013년에 벌어들인 매출액은 7조7000억원에 이른다. 더구나 마사회는 용산 화상경마장의 경우 기존 입장료를 1천 원에서 1만~5만 원으로 상향 조정해 수익성을 높인다는 계획으로 추진하고 있다. 

마사회는 용산구 화상경마장 개장을 일방 통행식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지난 3월 "정온한 시민생활을 저해할 수 있고, 인근에 학교 등이 밀집해 있어 청소년의 교육환경에 악영향을 줄 우려가 있다"며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에 반대 입장을 전달했다. 관할 용산구의 의견도 마찬가지였다. 국민권익위원회도 관할 지자체의 의견을 받아 지난달 17일 한국마사회에 주민 민원을 수용하라는 내용의 이행권고문을 전달했다.

"마사회는 일방통행식으로 밀어붙이고 있어요. 더욱이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인근에 화상경매장 개장을 강행하려는 것은 사설업체도 좀체 하기 힘든 짓입니다. 국가 공기업으로는 너무 뻔뻔합니다."

현재 한국마사회 회장은 박근혜 대통령을 만든 친위 '7인회'에 속한다고 알려진 현명관 전 삼성그룹 부회장이다.

김율옥 교장과 학부모 대표, 학생들은 오는 3일 청와대를 방문할 계획이다. 이들은 마사회 용산 화상경마장 개장을 반대하는 탄원서 5만장과 대통령에게 드리는 글을 적은 학생들의 엽서 500장을 전달할 예정이다. 탄원서에는 용산구 지역주민, 학부모, 학생, 동문들이 서명했다.

이와 관련 마사회측은 지난달 29일 <연합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공청회 등 협의절차를 거쳤지만 주민들이 양보하지 않아 더 시간 끌기는 무의미하다고 판단했고, 시범운영을 통해 주민들의 우려가 기우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했다"라고 주장했다.

한편 박 대통령은 1967년 성심여중을 졸업(8회)했고, 1970년에는 성심여고를 졸업(8회)했다. 2012년 대선 무렵에는 동문회를 겸해 모교를 방문하기도 했단다.

"우리는 동문 졸업생인 박근혜 대통령의 힘을 믿고 싸우고 있는 게 아닙니다.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서 싸우고, 지역주민들의 안전을 위해서 거대한 국가 공기업과 1년을 넘게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안전보다 수익을 앞세운 것이 세월호의 참사를 낳았고, 수 백명의 아이들이 희생됐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가 우리에게 뼈아프게 남겨준 교훈을 지금 잊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교육희망>에도 함께 싣습니다.
#용산 화상경마장 #서울성심여중고교 #세월호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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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입니다. 교육 분야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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