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동하는 불쾌한 냄새... 제천시 이러다 큰일 난다

에어돔 무너지고 침출수 흘러내리는데... 지자체와 정부 서로 책임 미뤄

등록 2014.07.05 13:57수정 2014.07.05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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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기물 매립장은 아직 보이지도 않는데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1만7000㎡, 축구장 넓이 2.4배에 이르는 드넓은 매립지가 시야에 들어오자 냄새는 더 심해진다. 문은 굳게 잠겨있다. 빨간색으로 '위험 접근금지'가 적혀 있다.

충북 제천시 왕암동 산업단지에 있는 산업폐기물 매립장. 산업폐기물 중에서도 가장 독성이 강한 지정 폐기물이 묻히는 곳이다. 지정 폐기물에는 폐합성고무 분자화합물, 오니류, 광재, 분진 등이 있다. 이들은 생명체 내분비계의 정상기능을 방해하고 호르몬 관련 암 발생 확률을 높인다.

 제천 왕암 폐기물매립장에는 2012년에 붕괴한 에어돔이 방치돼 있다.
제천 왕암 폐기물매립장에는 2012년에 붕괴한 에어돔이 방치돼 있다. 홍연

"저기 고여 있는 물 색깔 보이시죠? 일반적인 빗물이 고여서 썩은 거랑 달라요. 에어돔이 덮여 있는 아래 상황은 더 심각하고요."

제천환경운동연합 김진우 사무국장은 매립장 바닥을 가리켰다. 마치 시커먼 때가 묻은 흰 비닐을 깔아놓은 듯한데 그게 바로 붕괴된 에어돔이었다. 김 국장 말대로 군데군데 고인 물은 붉거나 푸른색을 띠었다. 그 위로는 빗물을 빼내기 위한 굵은 호스가 여기저기 널려 있다. 입구 쪽 가장자리에 가동을 멈춘 10여 대 양수펌프가 있다. 근처에 삐죽삐죽 솟은 풀은 이곳이 수년 째 방치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현재 가동되지 않는 양수기를 제천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이 설명하고 있다.
현재 가동되지 않는 양수기를 제천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이 설명하고 있다.홍연

"악취에 가스 폭발 가능성도 우려된다"

지난 2006년부터 매립을 시작한 이곳은 비나 눈을 막기 위해 에어돔을 설치했다. 에어돔이란 비닐 막을 씌우고 공기를 주입해 지붕(돔) 형태를 유지하는 공기막구조다. 충주시 대소원면 첨단산업단지 폐기물매립장, 충남 아산시 둔포면 테크노벨리산업단지 내 폐기물매립장, 경북 성주군 일반산업단지 내 폐기물매립장에도 에어돔이 설치돼 있다.

그러나 제천 왕암 폐기물매립장 에어돔은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 지난 2012년 12월 8일 제천에 18㎝ 폭설이 내려 눈 무게를 이기지 못해 에어돔 전체가 무너졌다. 지난 2006년 7월 폭우로 에어돔 일부가 파손된 사고 이후 두 번째다. 원주지방환경청은 업체를 상대로 에어돔 수리와 침출수 처리 명령을 내렸지만, 업체는 시정 조치를 수행하지 않고 방치했다.


김진우 국장은 "에어돔이 복구되지 않으면 추가적인 대형사고가 예측된다"며 "유해 침출수 발생, 폐기물로 인한 가스 유출 사고와 폭발 가능성, 악취로 인한 건강 피해 등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의 지적대로 에어돔 붕괴 방치는 침출수 유출 문제로 이어졌다. 침출수란 빗물이나 지하수 등에 폐기물 일부가 용해돼 오염된 물을 뜻한다. 여기에는 중금속 등 인체에 해로운 물질이 다량 함유돼 있다. 제천환경운동연합이 제공한 지난 2012년 에어돔 내부 사진에서도 여기저기 침출수가 고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지금은 에어돔이 완전히 무너져 내부를 확인할 수도 없다. 제천시에 따르면 돔 내부에 쌓인 침출수는 12만여 톤에 이른다고 한다.


이는 유독가스 배출 문제를 야기한다. 지정폐기물에서 발생하는 가스는 독성이 있는데다 폭발 가능성이 있어 이를 포집하는 설비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곳에는 가스 포집관 10여개가 매립장 위에 박혀있다. 하지만 포집관은 침출수로 질척거리는 땅에서 버티지 못하고 모두 쓰러졌다.

지금은 제천시가 설치한 양수펌프와 배수로가 침출수 처리 시설의 전부다. 이는 폭우나 폭설이 내릴 때 에어돔 위에 고인 빗물을 제거하기 위한 설비다. 에어돔 밑에 깔린 침출수와 유독가스를 처리할 수 있는 설비는 없다.

하천에선 물고기 떼죽음 목격되기도

 매립장 근처 미당천에는 붉은 슬러지가 쌓여있다. 물을 휘젓자 악취와 함께 침전물이 올라왔다.
매립장 근처 미당천에는 붉은 슬러지가 쌓여있다. 물을 휘젓자 악취와 함께 침전물이 올라왔다.조수진

왕암 폐기물매립장의 침출수 처리 문제는 지난 2006년부터 이어졌다. 당시 매립장 사업자인 A업체가 침출수 처리 미흡과 침출수 집배수층을 제대로 시공하지 않고, 폐기물처리시설 설치기준과 개선명령을 여러 차례 위반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김상민 의원(새누리당) 역시 지난해 원주지방환경청 국정감사에서 이 폐기물매립장에서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에어돔 내부에 고여 있는 침출수 처리 문제를 꼽았다. 김 의원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원주지방환경청에서도 차수막 손상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지만, 아무런 조처 없이 방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침출수 유출에 따른 2차 오염 가능성은 근처 개천에서도 확인된다.

"아까 폐기물 처리장에서 맡았던 냄새랑 비교해 보세요."

폐기물 매립장에서 약 500미터가 채 안 되는 곳에 미당천이 있다. 미당천 바로 옆 도로 위에 서자 폐기물 처리장에서 맡았던 냄새가 다시 났다. 아래를 보니 미당천 바닥이 온통 적벽돌 색이다. 이미 오랜 기간 퇴적물이 쌓여온 듯 두껍게 층을 이루고 있다. 긴 막대기로 휘젓자 붉은 퇴적물들이 뿌옇게 일어나며 더 심한 악취를 내뿜었다. 순간 구역질이 올라왔다.

이곳은 2008년 4월 제천환경운동연합이 물고기 수 백 마리 떼죽음 장면을 처음 목격한 곳이기도 하다. 2012년 7~8월에도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했다. 제천환경운동연합은 이런 현상이 폐기물 매립장에서 나온 슬러지, 곧 폐수 침전물 때문이라 주장한다. 2008년 미당천을 찍은 사진에는 슬러지로 추정되는 하얀 거품들이 온 개천을 뒤덮고 있다.

  2013년 미당천에서 물고기가 집단 폐사했다.
2013년 미당천에서 물고기가 집단 폐사했다. 제천환경운동연합 제공

미당천 근처에는 농사를 짓는 주민들 몇 가구가 살고 있다. 주민들이 겪는 피해는 없는지 인터뷰를 시도해 봤지만 다른 '부작용'을 경계하는 듯 대화조차 하려 들지 않았다. 하지만 A업체에서 지역주민 협의와 민원 문제를 담당했던 한 직원에게 폐기물 매립장과 관련해 주민의 피해 호소가 이어졌다는 걸 확인했다. 그는 자신이 근무한 2007년과 2008년,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역한 냄새가 난다는 주민들 민원을 지속적으로 받아왔다고 밝혔다.

 미당천 옆에는 밭농사를 짓는 농가와 비닐하우스가 있다.
미당천 옆에는 밭농사를 짓는 농가와 비닐하우스가 있다.홍연

환경보건시민센터 최예용 박사는 미당천 오염을 두고 "오염원(폐기물 처리장)과 가장 가까운 천이고, 두 지점을 연결하는 하수로 중간에 오염물질이 대량으로 나올 수 있는 요인이 없어 정황상 폐기물 처리장을 오염원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산업폐기물이 토양으로 흡수돼 지하수를 통해 인근 환경을 오염시킬 수 있다"며 "주변 농작물의 오염도가 위험 수준일 수 있어 정확한 조사가 뒤따라야 한다"고 덧붙였다.

시공업체∙제천시∙환경부 서로 미뤄

이와 관련해 제천시와 환경부에서는 선뜻 나설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인다. 제천시 도시미화과 유인동 생활환경팀장은 에어돔 시설 붕괴와 침출수 처리 문제를 방치해 온 것에 대해 "국가나 지자체의 시설이 아닌 개인 사유시설이라 함부로 손댈 수 없어 에어돔 위에 고인 빗물을 빼내는 작업만 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2000년대 초반에 환경부에서 폐기물매립장 건설을 밀어붙이는 경향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부 의지대로 당시 전국 20여 곳에 매립장이 생겼지만, 현재 환경재난 문제 등 여러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니까 이제 와서 '나 몰라라' 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 아니냐"며 폐기물 매립장의 사후처리는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임을 분명히 밝혔다.

환경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당시 왕암 폐기물매립장 인·허가는 제천시와 원주환경청에서 내준 것이므로 그쪽에서 해결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며 "환경부가 나설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원주지방환경청 담당자에게는 여러 차례 연락을 시도하고 메모를 남겼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매립장 사업자였던 A업체는 현재 영업이 정지된 채 경매에서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폐기물매립장 개선 방안에 대한 의견은 조금씩 엇갈린다. 제천환경운동연합은 "현재 매립된 폐기물을 모두 이전해서 침출수 유출 원인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단체는 "눈이나 비가 올 때마다 유입되는 우수를 빼내는 방법은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으며, 매립장을 그대로 놔둔다면 위험과 비용은 계속해서 증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는 폐기물 이전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보였다. 안양대 환경에너지공학과 이남훈 교수는 "제천 인근에는 지정폐기물을 보관할 수 있는 매립장이 없고, 폐기물을 전부 퍼내는 것이 기술적으로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다른 지정폐기물매립장으로 잠시 옮긴다 하더라도 옮기는 비용이 만만치 않고, 기존 폐기물매립장을 재시공하는 과정에서 오염이 심해질 수 있어 주민 동의를 받기도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다른 대안으로 '연직차수' 방법을 제안했다. 난지도에서 시행했던 방법으로, 지하수의 오염 정도와 오염수의 양, 방향을 확실히 파악한 뒤 수직으로 암반까지 부분 혹은 전면 차수 처리를 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그는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은 에어돔을 치우고 복토를 쌓아 우수(빗물) 유입을 최소화하는 것"이라며 "우수가 스며들어 침출수가 되고, 침출수가 주변 환경을 오염시키는 악순환을 막고 현장을 안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온라인 미디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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