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안나 도보여행가
김영숙
황씨는 본인의 성격을 소심하고 우유부단하다고 했다.
"여행은 다리 떨릴 때 가지 말고 가슴이 떨릴 때 떠나라는 말이 있잖아요. 제 경우엔 65세에 나 자신을 억제할 수 없을 정도로 간절한 갈망이 있었어요. 그 전에는 가슴 떨릴 시간이 없었는데, 농축돼 잠자고 있었나 봐요. 땅끝마을이라는 지명 자체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가보고 싶은 거예요. 한비야씨가 걸었다는 토말마을에서 고성 통일전망대까지를 똑같이 걷고 싶었어요. 왜 갔냐고 물어보는데, 이유가 뭐가 있어요. 그냥 가고 싶었지요. 한비야씨는 40일이 걸렸다는데, 그 정도 여행하려면 백수라야 가능하잖아요. 친구들한테 얘기하면 미쳤다는 말을 들을 게 뻔해 숫제 얘기를 안 했어요. 남편도 직장이 있으니까 안 되고요. 혼자 가려고 한 게 아니라 같이 갈 사람이 없어서 혼자 갔습니다."그 전까지 친구나 동료, 가족 등 동행이 있는 여행만을 한 황씨는 계획을 세우고도 남편이 말려줬으면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두려웠다고 한다.
"산악회 사람들이 제가 혼자 여행을 갈지, 안 갈지 내기를 했다고 해요. 사람들한테는 제가 소심하고 겁이 많은 사람으로 알려졌거든요. 그리고 저 같은 길치가 없어요. 부평전통시장에 가면 다른 사람들이 절 데리고 다녀야 할 정도로 길눈이 어두워요. 한번은 서울 교보문고 커피숍에서 <한겨레> 기자하고 인터뷰를 하다가 화장실 다녀와서 길을 잃은 적도 있고요."그러나 길을 떠나면 세상은 따뜻하고 용기를 준다고 했다.
"상처를 주는 것도 사람이지만 그 상처를 치유하는 것도 사람이잖아요. 이 세상은 그래도 살 만하다는 걸 새삼 또 깨닫게 되더라고요. 길에서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았어요."첫 국토종단은 23일 만에 끝냈다. 목적지인 통일전망대에 올라 하얀 포말을 만드는 파도를 보며 '만약 통일이 됐다면 여기서 멈췄을까? 신의주까지 올라갔겠지'라고 생각하며 조만간 다시 여기서 출발해 동해, 남해, 서해를 일주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저는 또 다른 길을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우물 안 개구리였던 제가 미지의 땅에서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 가보지 못한 곳과 마주하며 호기심이 엄청 생겼어요. 할머니 혼자 동행자 없이 지도 한 장 달랑 들고 이렇게 해낼 수 있다는 성취감으로 행복했어요. 다시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었죠."길에서 길을 찾다"길을 걷는다는 게 인생하고 똑같아요. 길을 걸으면서 얼마나 시행착오를 많이 했겠어요? 실패 안 하는 인생이 어디 있나요? 길을 잘못 찾아가면 두 배 이상의 고생을 하죠. 목표지점까지 못가면 일정에 차질이 생겨 시간 더 걸릴지 모르지만, 대신 좋은 사람을 만나 도움 받고 좋은 곳을 갔어요."해안일주 할 때의 경험이었다. 한번은 길을 잘못 들어갔는데 혼자 사는 할머니를 만났다. 그 집에서 자고 먹고 편하게 지내다 다음 날 떠나는데 밥까지 싸주었다. 또 한 번은 이름도 모르는 포구에서 길을 헤매다가 마당까지 바닷물이 들어온 아름다운 곳에 이르렀다.
"인생에서도 100% 실패는 없어요. 거기에서도 얻는 게 있죠. 성공에 도달하지 못했을 뿐이지 실패도 좋은 밑거름이라는 걸 알았어요. 길은 스승이에요. 저는 길에서 길을 찾습니다."인생은 갈등의 연속이라고 한다. 모든 순간, 선택을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스트레스를 받는다.
"눈만 뜨면 갈등의 연속이 아닐까요? 짜장면을 먹을지, 짬뽕을 먹을지도 고민하고 갈등하잖아요. 저는 부부싸움하고 나서 속상하면 부평공원을 한 시간 정도 걸어요. 걷다 보면 생각하고 나를 돌아봐요. 왜 싸웠지. 남편이 열 번 잘못하더라도 내가 전부 잘한 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 싸웠을 때의 감정도 수그러들고요."황씨는 걷기와 자기성찰은 불가분의 관계라고 했다. 결정을 못 내린 게 있거나 원고가 잘 안 써지면 걷는단다. '진정 위대한 모든 생각은 걷기로부터 나온다'라는 니체의 명언이 있다.
"맞아요. 저도 걷다 보면 생각이 흐르고 실마리가 풀려요. 길은 스승이고 인생과 정말 닮아 있어요. 걸으면 걸을수록 길에 빠져듭니다."황씨는 1차 국토종단 때는 새와 꽃, 바람소리 등 자연과만 교감했고 낯선 사람들에게 다가가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진정한 여행은 사람을 만나는 여행이라고 강조한다.
"해외여행을 갈 때 유명한 건축물을 눈으로 보는 여행은 하지 말아요. 보는 것보다 느끼는 여행이 참 여행인 것 같아요. 제가 해안을 일주할 때 절경을 많이 봤는데 그건 기억이 별로 안 나고 길에서 만난 사람을 잊을 수 없더라고요. 이번에 준비하는 책이 길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입니다."황씨는 오는 27일 오후 8시, KBS 1TV 강연 <백도C>에 출연한다. 사단법인 인천사람과문화에서 주최하는 '2014 인천인문학 콘서트' 5강의 강사로도 선다. 10월 16일 오후 7시 30분에 부평아트센터 호박홀에서 하는데, 메모해두었다가 찾아가 봐도 좋겠다. 참가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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