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 시인10·26 사태 이후 조국으로 돌아올 수 없는 시인이 된 김정기씨. 이후 그의 가족은 정치적인 망명이 아니라 정서적인 망명자로 남았다.
박숙희
"떨림과 황홀함으로 시를 지켜서 행복하였네라."
뉴욕 문단의 대모 김정기 시인이 6월 시집 <빗소리를 듣는 나무>(문학동네)를 냈다. '당신의 군복'(1975), '구름에 부치는 시'(1984), '사랑의 눈빛으로'(1989), '꽃들은 말한다'(2004)에 이은 다섯 번 째 시집. 지난 10년간 시인의 컴퓨터와 서랍 속에서 잠들어 있다가 세상 밖으로 나온 86편이다.
시인은 말한다.
"시는 나의 온갖 남루함을 덮어주고 숨결을 조정해주는 수줍음이다. 고국을 떠난 지 삼십오 년, 황무지에서 우리말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내 시선의 떨림과 황홀함으로 서툴고 약한 시를 지키면서 자랑스럽고, 그래서 행복하였다. 여린 꽃잎 같은 시 한 구절에 입김을 불어넣었던 나의 평생이 부끄럽지만 따뜻하다."조국을 떠나 뉴욕에 정착한 지 35년 째. 이 땅의 이방인으로서 모국어로 글쓰기는 무엇이었을까?
"시에 대한 진심어린 애정으로 세상과의 불화를 녹였다. 상처와 방황의 기록인 시는 기진맥진한 내 삶을 이길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내 곁을 지켜주었다." 시는 그를 향해 빗장을 걸어 잠근 조국에 대한 서운함을 달래주는 위안처였고, 시인은 글쓰기를 갈구하는 한인 이민자들의 등대가 됐다.
충청북도 음성에서 태어난 김 시인은 1972년 시문학지에 '오물'이 신석조 시인의 추천되며 등단했다. 1975년 대한민국 군인과 아내들을 감동시킨 시 <당신의 군복>을 타이틀로 한 시집을 냈다. 1979년 봄 남편이 주유엔대표부 참사관으로 발령되면서 뉴욕으로 이주했다. 그해 10·26이 터지면서 대한민국은 가족이 '돌아갈 수 없는 나라'가 된다. 박정희 대통령 살해범으로 체포된 김재규의 측근으로 남편이 지목됐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김 시인은 명예로운 외교관의 아내에서 비자발적인 망명자로 내려앉았다. 하지만 시는 세상에서 받은 상처를 달래주고, 휘청거리는 그의 이민생활에 부둥켜안을 수 있는 기둥이 되어 주었다. <빗소리를 듣는 나무>는 비탈길에서도 시인을 굳건히 지켜준 글쓰기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