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대부업체는 지난 2009년 12월 이미 숨진 조씨에게 내용증명으로 보낸 '채권양도통지서'. 이 대부업체는 채무금을 일시불 또는 분할 처리하라고 '최종 권고'하면서 '신용불량 등재', '지급 명령', '법원 본안소송' 과 '재산 압류' 강제 집행 등을 '경고'했다. 당시 조씨가 진 빚 원금은 고작 14만3410원이었고 이자 11만 원을 포함해도 25만 원 정도였다.
김시연
어떻게 소멸 시효를 넘긴 장기 부실 채권들이 버젓이 거래되고 있는 것일까? 바로 대부업체나 추심업체에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채권 소멸 시효를 정지시키거나 늘릴 수 있어서다. 이번에 희망살림 등 시민사회단체에 10억 원어치 부실채권을 기부한 대부업체 대표 A씨 역시 22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소멸 시효가 지난 채권이지만 남겨뒀다 '불쏘시개'라도 쓰려고 했는데 편법으로 추심 행위를 하기 싫어 기부하게 됐다"고 밝혔다.
제윤경 에듀머니 대표는 "채권 소멸 시효가 지나도 대부업체나 추심업체에서 3만 원을 내고 채무자를 상대로 전자 소송을 제기하거나, 채무자에게 전화를 걸어 1만 원만 입금하면 원금 50%를 면제해 주겠다고 속여 소멸 시효를 연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소멸 시효가 지났어도 원리금 일부만 갚으면 채무자가 빚을 갚을 의사가 있는 것으로 보고 소멸 시효를 연장하는 제도를 악용한 것이다.
은행, 카드사, 저축은행 등 금융회사에선 채무자가 3개월 이상 연체하면 '부실 채권'으로 분류한다. 금융회사는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맞추려고 회수하기 어려운 부실 채권을 대손상각 처리한 뒤 유동화전문회사나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유암코 같은 자산관리회사(AMC), 대부업체 등에 헐값에 넘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2년 현재 국내 부실 채권 시장 규모는 10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자산관리회사는 자신들이 회수하지 못한 채권을 다시 대부업체나 추심업체에 넘기는데, 이 가운데는 신용정보회사나 금융회사 자회사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부동산 같은 담보가 있는 채권은 원금의 70%까지 거래되기도 하지만 카드 연체금 같은 무담보 채권은 여러 업체를 전전하며 원금의 1~10%까지 떨어진다. 1000만 원짜리 채권도 10만 원이면 살 수 있는 셈이다. 실제 국민행복기금이 지난해 대부업체 등 금융회사에서 매입한 부실채권 가격도 평균 3%에 불과했다.
최근 이같은 부실 채권 거래가 일부 '큰손'들 사이에 재테크 수단으로 떠오르면서 채권 가격도 덩달아 오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부 대부업체와 투자자들은 전문 추심업체에 의뢰해 채권 회수에 나서기도 한다.
5년째 부실채권을 거래해온 A씨는 "무담보 채권은 보통 원금의 2.5~3%까지 거래되는데 위험 부담은 크지만 원금과 이자 등을 포함한 금액의 30% 정도만 받아도 큰 이익을 남길 수 있다"면서 "그나마 요즘 채권 거래가 돈이 된다는 얘기가 돌면서 가격이 3~4%까지 뛰었다"고 밝혔다. 실제 이번에 A씨가 기부한 채권 원금은 10억 원 정도지만 실제 매입 가격은 2천 만 원 정도라고 한다. 다만 회수 가능성이 있는 '우량'과 거의 불가능한 '악성' 부실채권이 패키지로 묶여 거래되는 현실을 감안하면 실제 매입 가격은 이보다 훨씬 낮을 수 있다.
대부업체 관리 업무를 맡고 있는 이동문 서울시 민생경제과 팀장은 "부실 채권 회수 가능성은 보통 2~3년이면 판가름이 나는데 연체 1년만 지나도 회수 가능성은 거의 없다"면서 "장기 연체 채권을 회수하려고 독촉하면 민원만 더 발생하기 때문에 대부업체들을 설득해 사회 환원하라고 유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빚 탕감하면 채무자 도덕적 해이? 금융회사 약탈적 대출이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