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도리 잼잼"... 그렇게 살고 싶어 떠났다

[세 얼간이 교사의 인도 마실기-에필로그]

등록 2014.08.07 15:17수정 2014.08.07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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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얼간이 교사 참 개성이 넘치는 세 명의 교사가 의기투합하여 인도로 떠났다. 불협화음이 하나의 완성된 오케스트라가 되기까지... 25일 간의 인도, 사람들, 자연들, 그리고 사랑! 아름다웠다.
세 얼간이 교사참 개성이 넘치는 세 명의 교사가 의기투합하여 인도로 떠났다. 불협화음이 하나의 완성된 오케스트라가 되기까지... 25일 간의 인도, 사람들, 자연들, 그리고 사랑! 아름다웠다. 윤인철

뿌리도 얕게 내린 나무에 얼마나 많은 열매가 이유도 모른 채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가? 남들에게 이 열매의 화려함을 보라며 허세를 부린 것이 얼마이던가? 몇 일전부터 이 허세가 나를 제자리에 불러 세워 거울 앞에 서게 했다.

"잠깐만 멈춰 보지 않을래?"


작은 내면의 속삭임은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처럼 빈번하고 은밀하게 나에게 찾아들어왔다.

다양한 세상사에 내 이름표를 붙이고 살아가며, 이 모든 것이 곧 나의 노력과 열정에 대한 대가이자 온전한 존재 의미라고 자부하며 걷고 있었다. '이 정도면 괜찮지 않느냐?'고 자문했다. 누가 나보다 더 치열하게 사느냐고, 넌 나를 평가할 자격을 갖추고 있냐고 타박하며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리고는 그들에게 말했다. 사람들이 보다 더 겸손하고 자신을 낮추고 수용적인 자세를 갖추었으면 좋겠다고.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어떤 삶의 태도를 강요하고 있단 말인가?

요즘 이런 내가 거울에 비추어 군더더기 없는 알몸으로 서 있을 때가 있다. 그냥 지나쳐 버리면 다시 어제와 똑같이 '생동감 넘치는?' 일상으로 돌아와 정상인으로 살 수 있다. 하지만 요즘 그 거울 앞에서 발이 떼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그 자리에 서서 빤히 날 응시하고 있다보면 반추와 슬픔의 감정이 아니라 정체모를 기분에 휩싸이게 된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그것으로 좋다. 이유는 없다. 외롭나? 근심이 있나? 아픈가? 거울 앞에서뿐만 아니라 하루에도 수많은 감정이 교차되면서 '나'는 '내'가 되기도 하고 '나' 아닌 '남'이 되기도 하고, 관찰자가 되기도 하고,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나이가 들면 어렴풋하게나마 '삶의 이치? 세상 살이의 정답?'을 알 것만 같았다. 혼란과 갈등, 아픔, 이런 것들은 벗어나야만 하는 삶의 장애물이자 구속으로만 여겼다. 하지만 내 기대와는 달리 나이가 들어 갈수록 더욱더 삶은 모호해졌고 세상은 해석불가의 공간으로 변해 어두컴컴한 미궁으로 빠져들어만 간다. 정말 모르겠고, 어렵고, 혼란스럽고, 당황스럽다. 벗으려고 했던 것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마이너스라고 했던 것들이 플러스라는 것도 깨달았다. 하나 깨달은 것이 있다면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삶이라는 것이다. 


나이가 들며 나보다 나이 어린 이들이 물어본다.

"~뭐냐?"고.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느냐?"고.


몰라! 당신의 고민에 내가 무관심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뭐라 얘기할지를 모르겠어. 나도 지금 허우적대고 있거든. 니들 앞에 똥폼 잡고 있는 거거든? 딸랑 몇 줌 안 되는 타인의 책 구절을 내 것인 양 인용하며, 당신보다 더 힘들어하고 방황하며 현명한 선택을 해 본적도 없으면서, 내 삶 하나 온전히 감당하지도 못하면서, 나와 다른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포용하지 못하면서, 나의 삶이 아니라 타인의 삶을 살아가는 주제에…. 도무지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어. 이게 내가 말 못하는 이유야.

나는 어려서부터 성인의 가르침을 읽었으나 성인의 가르침을 제대로 알지 못했으며, 공자를 존경했으나 왜 공자를 존경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알지 못했다. 그야말로 난쟁이가 광대놀음을 구경하다가 사람들이 잘 한다고 소리치면 따라서 잘 한다고 소리를 지르는 격이었다. 나이 오십 이전의 나는 정말로 한 마리의 개에 불과했다. 앞의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나도 따라서 짖어댔던 것이다. 만약 남들이 짖는 까닭을 물으면 그저 벙어리처럼 쑥스럽게 웃기나 할 따름이었다.
- 이지, <속분서(續焚書)>

남의 이야기를, 남의 삶을, 남의 아픔을 마치 내 것인 것 마냥 흉내 내며 개처럼 살다가 헤벌쭉 웃어주면 그만이었다. 타인의 시선이 나의 존재 가치를 올리기도 내리기도 했고, 나의 이기적 만족감이 나를 올리기도 내리기도 했다. 시소처럼 왔다 갔다 하며, 나와 타인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는 '좋은 것'들만 선별해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것만이 '나'인양 꽉 쥔 채 나르시스적 황홀감에 도취했다. 모든 것을 다 아는 양, 다 품는 양 세상을 관조하는 페르소나를 쓴 채. 있는 그대로의 맨 얼굴은 숨기고 말이다.

"인철아, 인철이형, 인철씨, 인철샘, 그 손 좀 줘 봐."
"그래! 내가 항상 기다려온 말이지. 자, 내 손에 쥐어 있는 것을 한 번 보라고. 말 안 해도 존경할 만하지 않아? 나 이런 사람이야. 이렇게 열심히 살아왔어. 나와 함께 하면 너도 나처럼 '좋은' 사람이 될 것이고, 나를 니 잣대로 평가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너는 나와 다른 나쁜 사람이 될 거야."
"아니 그 움켜진 손 말고, 비어 있는 손 좀 보여줘 봐."
"비어 있는 손? 거긴 아무 것도 없는데? 너에게 보여줄 게 아무 것도 없어."
"그럼 그 손은 무얼 하는 것인데?"
"음…. 글쎄. 사람을 만나 악수하고 다가갈 때, 슬픔에 흐르는 눈물을 닦을 때, 누군가를 어루만져 줄 때 등이겠지."
"근데 왜 너는 꼭 쥐고 있는 손만 내밀고 그 속에 있는 것만을 보여주려고 해? 나는 너의 쥐고 있는 손이 아니라 그 비어 있는 손이 필요한데?"

아, 그렇구나. 나는 손이 두 개였구나. 이제 다른 한 손을 바라보게 된다. 어떤 것도 쥐어있지 않은 손! 빈 손! 꽉 쥐고 있는 손도 내 것이요. 비어 있는 손도 내 것이다. 쥐고 있는 것을 놓지 못해 꼭 쥔 채, 다른 손도 빨리 '좋은' 것을 잡으려고만 한다. 그냥 비워 놓으면 안 되나? 그것이 욕망이든, 도덕적 삶이든, 종교든 무엇이든지 간에 한 손은 영원히 이렇게 비워놓으면 안 되나?

더 없이 순수한 아기에게 다가간다.

"도리도리~ 잼잼!"

아! 아이에게 가르쳐 주는 삶의 가장 큰 가르침이 그 속에 있었구나.

도리도리~ 이것만이 정답이라고 빳빳하게 고개 들고 있지 말고 흔들어보자. 아니야. 아니야. 아닐 수도 있어. 도리도리 하다보면 언젠가는 까꿍하겠지? 하지만 까꿍했다고 도리도리를 멈추어서는 안 된다.

잼잼~ 쥐었다. 폈다. 쥔 것을 놓고, 다시 쥐었다가 놓고. 아가야, 너는 잼잼하며 살아야 한다. 흐르는 물이 맑듯이 그 어느 것도 영원한 것이라고 쥐지 말아야 한다. 쥐었다가 다시 풀어 놓아야 한다. 오직 빈손만이 잼잼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그것을 쥔다고 할지라도 이전에 쥐고 있는 것과는 다른 것을 쥐게 될 거야.

나는 도리도리, 잼잼하며 살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고개가 너무 빳빳해 졌거든. 손에 쥐고 있는 것이 이미 굳어져 버렸거든. 이미 나의 일부분이 되었거든. 그래 조그만 양보하자! 너라고 생각하는 것을 한 손에는 쥐고, 다른 한 손만이라도 잼잼하자!

아침에 학교에 오면 노트북을 켠다. 특별한 의도? 없다. 기계적으로 노트북의 전원을 연결하고 온on을 누른다. 가만히 앉아 내가 찾으려고 하지 않는 무수한 정보들이 홀씨처럼 날라든다. 가만히 앉아 홀씨를 뒤집어 쓴 채, 하루를 시작한다. 하지만 나에게 붙어 뿌리를 내리는 홀씨는 거의 없다. 다시 다른 곳으로 날아가 버리고 만다.

언젠가부터 신호등에 차가 멈추면 스마트폰을 보기 시작했다. 화장실에 갈 때도 호주머니에 스마트폰을 넣는다. 식당에서 음식을 기다리며 함께 식사하러 온 사람이 없는 듯 그냥 스마트폰을 켠다. 그리고는 동행에게 새로운 뉴스를 브리핑해 준다.

"그래?"
"응, 그렇대."

이젠 손에서 노트북과 스마트폰을 놓고, 날 쓰다듬자. 빈 손바닥을 볼 때마다. 특별히 반성하고 성찰한다고 생각하지 말자. 도덕적 잣대를 정해 놓고 '그렇게 살지 못하는' 나를 반성하는 종교적 경건함, 도덕적 성찰의 삶을 살자는 의도는 아니다. 삶의 의미가 삶을 억압해서는 안 된다. 그런 삶은 나에게 죄책감과 체념으로 돌아올 뿐이다. 있는 그대로의 욕망, 불나방처럼 모였다 흩어지는 사유와 춤추며 시간을 노닐자. 나도 모르는 사이 지긋한 미소가 얼굴에 그려진다면 그것만으로 난 이 하루를 사랑할 것이다. 내 곁에 있는 사람까지 번진다면 더 없이 행복하겠지?

인도로 떠나기 며칠 전 12월의 밤
덧붙이는 글 본 글은 중고등학교 현직 교사 세 명이 2014년 1월, 한 달간 인도를 여행한 기록입니다. 델리에서 자이살메르, 우다이뿌르, 조드뿌르, 아그라, 바라나시, 맥그로드 간지 등 인도 중북부를 방문했습니다. 단순히 '관광'이 아니라 '사색과 반추, 철학'이 있는 '여행'에 관한 것입니다.
#인도 #델리 #배낭여행 #철학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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