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언 팬티 상표 보도, 인격권 침해"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 145] 조윤호 <미디어오늘>기자

등록 2014.08.09 09:21수정 2014.08.09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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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언론 보도를 보면 '제 버릇 개 못 준다'는 속담이 떠오른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4개월이 다 되어 가는데도 대한민국 언론은 아직도 '기레기'에서 한 발자국도 못 벗어나고 있다.

특히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시신 발견과 장남 유대균씨의 검거를 다룬, JTBC를 제외한 종편들의 보도는 혀를 내두르게 한다. 뼈 없는 치킨 배달 여부, 검거된 박수경씨와 유대균씨의 관계 묘사 등 가십으로 점철된 선정적 보도로 가득 채웠다. 지난 6일 미디어비평 매체 <미디어오늘>의 조윤호 기자를 만나 유병언 일가 대한 종편의 보도 문제를 짚어봤다. 다음은 조윤호 <미디어오늘>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뼈 없는 치킨과 태권도 자격증 유무가 뉴스?

 <미디어오늘> 조윤호 기자
<미디어오늘> 조윤호 기자이영광
- 7월 21일 구원파 교주인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시신이 발견된 후, 7월 25일 유 전 회장의 아들인 유대균씨도 검거됐다. 이를 다룬 TV조선과 채널A 등 종편 뉴스 보도가 지나치게 선정적이란 비판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선정적인 것 이상으로 한심한 수준이다. TV조선과 채널A, MBN 등 종편의 보도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주로 대표적으로 두 가지 키워드를 다뤘다. 하나가 호위무사로 표현된 박수경씨와 유대균씨의 사생활이다. 박씨의 미모를 주제로 한 기사도 함께 쏟아졌다. 태권도 사범 자격증의 유무 여부부터 유대균씨를 '유조백'님이라 불렀다느니, 이혼소송 중이라느니 하는 보도들이 쏟아졌다.

지면 보도도 마찬가지다. <동아일보>가 7월 26일 지면을 통해 박씨의 미모에 관한 기사를 썼고 <중앙일보>도 같은 날 박씨가 유대균씨를 '유조백님'이라고 불렀다는 기사와 더불어 7월 28일엔 그녀의 남편과 인터뷰를 해 이혼여부 등 사생활을 털었다.

MBC는 7월 26일, 박씨 소식을 두 꼭지에 걸쳐 전했는데 하나는 유병언 일가를 왜 여인들이 돕느냐는 내용의 리포트였고, 다른 하나는 다른 보도와 마찬가지로 박씨의 이혼 사실이나 태권도 심판 경력 등 사생활털이였다. SBS도 한 꼭지에 그녀의 사생활을, YTN은 지난 7월 28일 태권도 매체 편집국장과 프로파일러를 불러 박씨를 인물탐구 했다. 태권도 6단이면 저항할 정도 아닌가라는 시원찮은 질문들이 이어졌다.

종편은 더욱 가관이다. 박씨와 유대균씨가 연인이라는 식의 기사가 대표적이다. 채널A는 '그 좁은 방에서 단둘이 석 달 동안 뭐 했나' , '잠은 따로 잤다더라' 하는 식의 보도를 했다. TV조선도 시사평론가들을 불러다가 남녀가 석 달간 같이 있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았겠냐는 식으로 아무 근거 없이 시청자들의 상상력을 부추기는 보도를 내보냈다.


또다른 키워드는 유대균씨의 '식성'이다. 7월 27일 유대균씨가 도피 중 뼈 없는 치킨을 주문했다는 채널A 단독보도를 시작으로 치킨 시킨 건 맞는데 시킨 사람은 유대균씨가 아니라는 <중앙일보>, 치킨을 시켜먹은 적이 없으며 해산물을 좋아한다는 보도를 한 TV조선. 유대균씨가 도피 중 만두를 먹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유대균씨와 만두를 연결, 심지어 영화 <올드보이>까지 연관시킨 기사들이 쏟아졌다."

보수권력의 승인을 받은 방송의 태생적 한계


 TV조선, 채널A
TV조선, 채널ATV조선, 채널A

- 이런 보도의 의도는 무엇일까?
"두 가지라고 본다. 첫 번째, 하루 종일 뉴스로 도배하는 시스템에서 많은 뉴스거리가 필요한 것. 온갖 가십거리를 다 뉴스 가치가 있는 것처럼 보도하는 까닭이다. 실제로 유병언이 입은 속옷이 명품이었다는 보도는 TV조선의 1시, 4시, 7시, 9시에 걸쳐 하루 네 번 보도됐다.

하지만 결국 뉴스를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는 언론사 별 가치판단의 결과다. JTBC <뉴스9>은 지상파 방송에 비해 세월호 참사를 다수 다루면서 해경이나 정부에 대한 비판을 주요 뉴스로 다뤘다. TV조선이나 채널A는 그에 비해 가십거리로 뉴스를 채우는 동시에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을 정부의 무능한 대응이 아니라 유병언이나 유대균의 문제로 인식하게 만든다. 보수권력이 승인해준 방송이라는 종편의 태생과도 맞닿아 있다."

- 인권보도준칙에도 위배되는 보도들이 아닌가.
"맞다. 한국기자협회가 2011년 국가인권위원회와 만든 인권보도준칙을 보면 인격권 항목이 나온다. '언론은 개인의 인격권(명예, 프라이버시권, 초상권, 음성권, 성명권)을 침해하지 않는다.' '공인이 아닌 개인의 얼굴, 성명 등 신상정보를 공개하려면 원칙적으로 당사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등이 나와 있다. 박수경씨의 얼굴을 버젓이 보도한 것은 분명 인격권 침해다. 특히나 세월호 참사나 유병언 일가 도피와 아무 관계없는 사생활 보도는 더욱 그렇다.

망자의 인격권도 침해하면 안 된다고 나와 있는데, 유병언 사체에 대해 지나치게 상세하게 보도한다. 팬티 상표까지 이야기한다. 더불어 범죄 사건의 경우 언론이 무죄추정의 원칙,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등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용의자나 피의자, 피고인의 얼굴, 성명 등을 원칙적으로 밝히지 않는다고 돼 있다. 유대균씨와 박수경씨는 아직 혐의를 의심받는 용의자에 불과하다." 

 유병언 속옷 10만원짜리 스위스 명품이 뉴스가 되는 요즘
유병언 속옷 10만원짜리 스위스 명품이 뉴스가 되는 요즘TV조선 화면캡쳐

세월호 참사 발생 4개월... '기레기' 면피 못한 언론들

- 호평을 받는 JTBC도 유대균씨 관련 보도를 13건이나 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의제 설정 안에선 자유롭지 못하다고 본다. 언론이 유병언 일가에 집중하기 시작한 시점이 세월호 참사가 일 주일 정도 지난 4월 21일부터다. 다음날 검찰의 유병언 일가에 대한 출국금지 명령, 4월 23일, 유씨 집과 금수원에 대한 압수수색이 있었다.

JTBC도 4월 21일부터 청해진해운과 세모그룹의 관계에 대해 보도하기 시작했고, 그 다음 날부터 유병언이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그 시기가 유병언 일가로 모든 관심이 쏠리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JTBC도 자유로울 수 없었고, 유대균 보도도 마찬가지다. 그 점에서 JTBC 보도도 비판받을 수 있다고 본다. 다만 JTBC는 계속 세월호 참사의 본질에 대해 보도했다. 유병언에 대해 다루긴 했지만 항상 1번 기사는 실종자 구조소식이었다. 관련 보도도 더 많았다."

- 지상파의 경우는 어떤가?
"지상파는 종편처럼 어처구니없는 보도를 많이 하진 않았다. 다만 주로 검찰과 정부의 입장을 받아 전달했다. 검찰이 이런 혐의가 있다고 하면 그렇다고 전하는 식이다."

- 세월호 참사 초기, 유가족을 비롯한 국민들에게 언론은 '기레기'라는 소리를 듣는 등 비판을 많이 받았다. 참사가 벌어진 지 4개월, 현재의 언론은 어떤가?
"세월호 참사 100일 때, 몇몇 언론에서 '변한 게 없다'는 기획기사를 내보냈다. 그 비판에는 언론도 포함이 돼야 한다. 언론이 비판받았던 가장 큰 이유는 정부의 말을 그대로 전하고, 본질을 흐리는 보도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지금 보도되는 유병언 일가에 대한 보도도 마찬가지다. 검찰과 정부에게 끌려 다니는 보도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같다. 결과적으로는 세월호 참사를 잊게 만들고 있다.

세월호 참사가 유대균이 치킨을 먹었느니 유병언이 어떤 속옷을 입었느니 하는 문제로 가볍게 다뤄지고 있다는 것. 이런 보도를 언론이 버젓이 하고 있고, 그런 면에서 여전히 '기레기'였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 희망이 있을까?
"종편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지상파나 인터넷 매체에서 이런 보도가 이어진다면 그들에게 기대 희망을 찾기보단 대안언론에 주목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 대안언론인 <뉴스타파>와 <국민TV>의 보도는 어떤가?
"대안언론들이 역량이 뛰어나서 다른 보도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보다 '구조적인 다름'이 있다. 정부의 눈치를 보느냐 마느냐, 재정의 출처가 어디냐, 속보로부터 자유로운가, 하는 것들이 맞물리는 문제다.

사실 언론의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하는 것은 지상파다. KBS가 수신료로 운영되는 이유가 거기 있다. 다른 눈치보지 말고 국민을 위한 방송을 하라는 건데. 제가 우려하는 것은 YTN이다. YTN이 유대균씨 검거소식을 전하는 보도를 보면, 종편하고 다를 것이 없어졌다. 평론가들이 나와서 떠드는 잡담 수준의 뉴스를 그대로 한다. YTN은 종편이 아니고 보도전문 채널이다. 점점 언론 자체가 종편화돼 가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정상적인 것은 지상파가 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 그럼 종편이 지상파에 영향을 줄 수 있겠다.
"얼마 전 <조선일보>에서 TV조선 시청률이 5% 넘었다고 기사를 썼더라. 뉴스가치 판단이 부족한 사람이 간부로 있다면 종편을 보다가 '저거 재밌네, 저렇게 한 번 만들어봐'라고 할 수도 있다.

원인을 다른 데서 찾는 것이다. 시청률이 떨어지면 '해야 할 보도를 안 해서 안 보는구나'라고 생각해야 하는데 자극적인 공세로 사람을 끌어 모으는 식의 판단을 한다면... 전체 언론의 종편화가 벌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우려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영광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 '이영광의 언론,그리고 방송이야기'(http://blog.daum.net/lightsorikwan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조윤호 #TV조선 #채널A #MBN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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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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