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고속도로 휴게실에 걸린 표지판
송준호
사람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다. 언어적 동물, 사회적 동물, 경제적 동물 등이 귀에 익은 것들이다. 비단 사람만이 아니다. 동물도 제 나름의 언어로 의사소통을 한다. 무리를 지어 서식하고, 우두머리의 인솔에 따라 이동할 줄도 안다. 나중에 먹으려고 먹이를 비축하는 경제 활동도 한다. 다만 사람에 비해 체계가 덜 잡혀 있을 뿐이다.
'생각하는 동물'이야말로 사람의 본질을 꿰뚫은 정의라고 할 만하다. 자동차를 굴리고, 비행기를 띄우는 것도 생각의 힘에서 비롯되었다. 생각의 힘으로 생활에 필요한 여러 가지 것들을 개발하고 제품으로 만들어서 먹고 입고 사용한다. 그것들을 죄다 쓰레기로 만드는 것 또한 사람이다. 사람의 일생을 쓰레기를 만드는 과정에 비유하는 것도 그래서다.
어떤 이는 사람을 이렇게 정의하기도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사람에 비유한다면, 지구에서 살고 있는 사람은 암세포, 아니 암 덩어리 그 자체일 겁니다. 그냥 암 덩이가 아니라 췌장암이나 간암 같이 아주 악성인…." 사람이 결국 지구를 죽이고 말 거라는 얘기다.
사람이야말로 '쓰레기 적(的)' 동물이다.
왜 아니겠는가. 지구의 몸을 마구 갉아먹는 주범이 사람이다. 온갖 생활 쓰레기도 큰 몫을 차지한다. 쓰레기 줄이기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벌이는 것도, 분리수거를 생활화하자고 목청을 높이는 것도 큰 틀에서 보면 지구 환경을 보호하자는 취지에서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람은 또 '병주고 약주고的' 동물이다.
전국 방방곡곡에서는 340여 개의 크고 작은 고속도로 휴게소가 운영되고 있다. 그중에는 각종 놀이시설이나 전시장, 쇼핑센터 등을 갖춘 '테마휴게소'도 적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 봐야 휴게소는 일방적 소비공간일 뿐이다. '휴게'하면서 먹고 마시는 게 거의 전부인 공공장소다. 쓰레기 버리기로 고속도로 휴게소만한 데도 없다. 가히 대량의 쓰레기 양산소라 할 만하다.
휴게소를 운영하는 측에서는 또 청결이 생명이다. 그게 미흡하면 자동차들 발걸음이 뜸해질 게 뻔하다. 실제로 우리나라 휴게소 시설은 땅덩이가 광활한 이웃 나라에 비하면 가히 5성 호텔 수준이다. 그걸 유지하자니 청소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 고충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오죽했으면 그림 같은 경고문까지 적어서 세워두었을까. 차례대로 읽어보면 이 경고문은 그곳에 들른 모든 이들에게 회유와 설득과 협박을 동시에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분리수거하는 모습 여러분의 자녀가 보고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종류에 따라 분리수거를 할 수 있도록 쓰레기통을 여러 개 비치해 두었다. 거기 적힌 대로 따라 달라. 뭐 그런 뜻이라는 건 알겠는데, 속뜻이 민망하기 이를 데 없다. 지각 있는 어른답게 분리수거를 제대로 좀 하라, 부모로서 자식 앞에 모범을 보여야 할 것 아니냐는 말을 하고 싶은 거다. 얼핏 보기에는 아닌 것 같지만 이건 단수가 꽤 높은 회유 수단 중 하나다.
"분리수거를 철저히 해주시고 가져온 쓰레기는 되가져갑시다."
앞서 협박했던 게 좀 께름칙했던가 보다. 회유가 사라진 자리에 설득이 들어섰다. 민주시민다운 쓰레기 처리 방법에 관한 행동지침을 차분하게 설명한 것까지는 무난하다. 쓰레기를 되가져가라는 말은 또 뭔가. 아, 알겠다. 차에 싣고 온 쓰레기는 분리해서 버리고 말고 할 일이 아니다. 그건 우리 휴게소 영업실적과 무관한 것이니 집에 갖고 가서 버려주십사 하는 뜻일 게다.
"쓰레기 불법투기시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웬걸, 이건 온통 빨간색이다. 빨간색은 중국 사람들이 특히 좋아한다. 우리네 보편적 정서로는 적잖이 섬뜩하다. 특별히 강조할 부분이 있으면 빨간색으로 표시하는 게 습관화되어 있다. '빨간펜'이 대표적이다. 바로 그 점을 노렸을 것이다. 경고판의 핵심 전달사항 또한 바로 이것이라는 증거다. 위에서 부탁한 대로 고분고분 들어주지 않으면 법대로 처리하겠다는 것이다.
표지판에서 눈에 띄는 게 또 있다. '불법투기'의 '투기'는 질투의 '투기(妬忌)'인가, 한탕주의 '투기(投機)'인가, 아니면 피터지게 싸우는 '투기(鬪技)'를 가리키는 말인가. 그게 뭔가를 함부로 버린다는 뜻의 한자말 '투기(投棄)'라는 걸 몰라서 하는 소리가 아니다. 휴게소에서 쓰레기를 함부로 버렸다가 실제로 '1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문 사람이 있다는 말을 혹시 들어본 적 있는가. 적잖은 과태료가 무서워서 분리수거를 착실히 할 사람은 또 과연 몇이나 될까.
앞에서 사람은 '쓰레기的 동물'이라고 했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걸 보면 '쓰레기的 동물'이 언제 이렇게 많아졌는지 모르겠다. 진실이 불 보듯 빤한데 굳이 알 것 없다면서 막무가내로 버티거나 협박을 일삼는 '쓰레기的', 손바닥으로 하늘을 대충 가리면 만사오케이인 줄 아는 '쓰레기的', 알량한 권력 좀 쥐었다고 자식 잃은 고통에 울부짖는 부모들 면전에 대고 막말을 일삼는 '쓰레기的', '쓰레기的'들….
자기 집 담 옆에 동네 사람들이 쓰레기를 몰래 버려서 골머리를 앓는 사람이 있었다. '이곳에 쓰레기 무단투기자는 고발조치하겠음'이라는 문구를 써 붙여도 소용이 없었다. '단 돈 몇 푼 쓰레기봉투 값이 그렇게 아까우십니까?'라고 시비도 걸고, '제발 이곳에 쓰레기를 버리지 말아주세요'라고 애원도 했지만 새벽에 나가 보면 또 쓰레기가 쌓여 있는 것이었다.
그는 누군가의 조언에 따라 최후의 수단을 썼다. 그랬더니 더 이상 그곳에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이 없었다. 동네 사람들이 쓰레기를 버리는 바로 그 자리에 작고 예쁜 화단을 조성하고 꽃을 심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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