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석 하나에도 이런 뜻이 있을 줄 몰랐다

스스로 생각하는 역사 공부... 경상감영공원을 다녀오다

등록 2014.08.25 09:29수정 2014.08.25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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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감영은 1601년부터 이곳에 있었다. 선화당은 지금으로 치면 도청 건물이고, 징청각은 도지사 집무실이었다. 두 건물 모두 세 차례 화재로 전소했는데, 지금 건물은 1807년에 중건된 것이다. 원형이 잘 보존된 채 남아 있는 경우가 드물어서 경상감영 선화당과 징청각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하마비는 관찰사 이하는 말에서 내려서 걸어오라는 표식이다."

 경상감영공원 하마비 뒤로 선화당이 보이는 사진
경상감영공원 하마비 뒤로 선화당이 보이는 사진추연창
대구 중구 소재 경상감영공원에 가면 흔히 이런 내용의 해설을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정만진 한국예술인복지재단 파견예술인은 대구공정여행A스토리협동조합이 주최한 8월 22일 '대구 중심가 공정여행 답사' 해설에서 "그런 답사로는 살아있는 역사교육이 안 된다.


이 문화유산을 자기 자신이 만들었다고 생각하면서 따져 보고, 그 결과를 글로 써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하마비가 선화당 오른쪽에 서 있는 것을 보면서 "이게 본래부터 이 자리에 있었을까? 그렇지 않다면, 어디에 있었을까? 왜?"하고 반문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하마비는 말에서 내려서 걸어오라는 표식이다. 그러나 그런 지식을 얻기 위해 답사여행을 다니는 수준에 그쳐서는 안 된다. '어디서부터 걸어오라는 말인가?' 질문을 반복해야 한다. '어디서부터?' 당연히 문 밖에서부터다. 어느 문? 경상감영 정문 밖에서부터다.

경상감영의 정문은 어디에 있나? 아무리 사방을 둘러봐도 정문이 없다. 경상감영의 문은 1906년에서1907년즈음 친일파 대구 군수 박중양이 읍성을 부순 이래 달성공원 안으로 옮겨졌다. 지금 달성공원 안에 있는 관풍루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나라의 문은 본래 남쪽에 있다. 그러므로 경상감영의 정문은 선화당 남쪽, 즉 선화당의 정면 전방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하마비의 자리는 선화당 오른쪽이다. 정면 어디쯤(지금의 국채보상로)에 있던 하마비가 이리로 옮겨졌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옮겨졌다는 데서 또 생각해본다. 관풍루를 복원할 때 경상감영에 복원하는 것과, 지금처럼 달성공원 안에 서 있도록 하는 것 중 어느 것이 옳을까? 대구 읍성의 정문인 영남 제일관도 복원될 때 본래 자리가 아닌 망우공원에 중건되었고, 달성 앞에 있던 조양회관도 망우공원에 복원되었는데 그게 과연 옳은 일일까?


 경상감영공원 선화당
경상감영공원 선화당추연창

정보 습득용 답사보다 스스로 생각하는 역사 공부 돼야

정만진 해설가는 "하마비에 새겨져 있는 내용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왜 관찰사 이하는 말에서 내려서 걸어오라고 명령했을까요? 성주향교 앞에 가면 '대소인(大小人) 하마'라고 해서 누구든지 말에서 내리라고 되어 있는데, 이들과 견줄 때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하고 묻는다. 왜 경상감영 하마비는 관찰사 이하만 말에서 내리라고 하고, 성주향교 하마비는 누구를 막론하고 모두 내리라고 명령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는 해설이다.


경상감영의 하마비는 신분 상하를 중시하는 관료주의적 발상을 보여준다. 관찰사 이하는 말에서 내리라는 것은 그보다 높은 관료나 임금은 가마든 말이든 탄 채 들어오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성주향교는 '공자'를 모시는 곳이니 더 높은 사람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누구든지 말에서 내리라고 명령하는 것이다.

선화당은 은혜를 베풀어 백성을 교화하는 집이라는 뜻이다. 선화당은 대구에만 있을까? 하마비가 여기저기 있는 것처럼 선화당도 여기저기 있지 않을까? 실제로 선화당은 공주와 원주에도 남아 있다. 즉, 선화당이라는 이름은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주체가 관찰사가 아니라 임금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징청각도 마찬가지다. 징청각은 맑고 깨끗하게 행정을 집행하는 집이라는 뜻이다. 이 이름은 관찰사에게 청렴을 요구하고 있다. 징청각은 예나 지금이나 권력을 가진 자에게는 청렴이 요구된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 이런 뜻을 보자니 '대구시청과 선화당, 시장 관사와 징청각 중 어느 쪽이 좋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징청각 뒤로 가면 선정비가 줄지어 서 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것을 이곳에 모아둔 것이다. 왜 선정비들을 다른 곳 아닌 이곳에 모아 두었을까?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2·28기념중앙공원, 달성공원 등에 모아두는 것과 이곳에 모아두는 것 중 어느 쪽이 이치에 맞을까?

 경상감영공원 징청각
경상감영공원 징청각추연창

"교사나 학부모가 답을 미리 말해버리면 생각하는 교육, 글쓰기 교육이 되지 않습니다.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직접 글로 써야 합니다. 가르치는 사람이 사전에 다 말해버리고 피교육자는 그 내용을 구성하고 문장화하는 기교만 배운다면 역사교육도 글쓰기교육도 무의미합니다."

정만진 해설가가 강조했다. 그는 덧붙여 "선화당과 징청각을 줄자로 재지 말고, 스스로 생각해본 뒤 대답해 봅시다. 당과 각 중 어느 건물이 더 규모가 클까요? "하고 질문을 던진다. 머릿속에서 질문에 대한 생각이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경상감영 #선화당 #징청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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