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민우회가 공개한 상담기록을 보면 직장 내 성희롱은 회사 안 가장 약자인 수습, 인턴, 하청노동자에게 주로 가해진다. 성희롱이 권력 관계 안에서 발생하는 특징 때문이다. 사진은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만들어 배포한 성희롱 예방 교육용 동영상의 한 장면.
고용노동부
신입 여성노동자는 여러모로 상사의 성희롱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경우 상사가 업무를 가르쳐준다거나, 지시를 내린다는 빌미로 접근하기 때문에 거부하기 어렵다. 또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피해자는 직장 안 관계망도 좁아, 동료들의 도움을 얻기도 힘든 처지다. 회사가 성희롱 사실을 파악한 즉시 개입해야 하는 이유다.
현행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아래 고평법)에 따르면 사업주는 성희롱 발생을 확인한 즉시 가해자를 징계하거나 그에 준하는 조치를 취하도록 돼 있다(14조). 또한 피해노동자에게 해고와 같은 불이익을 주지 못하고(14조2항), 이를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37조2호).
하지만 법과 현실은 달랐다. 피해자가 용기를 내 피해 사실을 알려도 제대로 된 해결을 기대할 수 없다. 보복성 징계나, 왕따, 괴롭힘에 시달리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피해자를 도운 직장 동료까지 징계를 받기도 한다.
문제제기하면 보복성 징계... 피해자가 왕따에 시달리기도지난해 11월 제조업체 정규직인 F씨는 팀장으로부터 원치 않는 성적 구애에 시달리다 사직서를 제출하기도 했다며 민우회를 찾았다. F씨의 사직서를 받은 임원은 '가해자를 회사에서 내보내겠다'며 F씨의 사직을 보류했다. 과도한 스트레스로 쓰러지기도 했던 F씨가 몸을 추스른 후 다시 회사에 출근한 날, 담당임원으로부터 억울한 통보를 받았다. 임원은 "가장 깨끗하게 해결되는 건 가해자와 F씨가 둘 다 그만두는 것"이라고 말했다.
억울한 F씨는 인사팀에 정식으로 신고했다. 하지만 인사팀은 일부 성적인 발언만 성희롱으로 인정할 뿐 끈질긴 성적 구애는 성희롱이 아니라 '진심으로 사랑한 것'이라고 했다. 가해자는 정직 2주 처분을 받았다. 그런데 F씨와 그를 돕던 동료 직원도 함께 징계를 받았다. 동료 직원은 근무태만, F씨는 동료를 협박해 증거자료를 얻어냈다는 게 이유였다. 그리고 F씨는 회사 안에서 왕따가 됐다. 셔틀버스에서든 회의실에서든 아무도 그의 옆에 앉지 않았다.
지난해 9월 G씨는 입사 다음 날 떠난 출장에서 인사팀 직원이 자신을 성희롱한 사실을 팀장에게 알렸다가 수습기간이 끝나기 하루 전날 해고됐다. "걱정하지 마라"며 G씨를 안심시켰던 팀장은 수습기간이 끝나기 직전에 메일로 해고통보서를 보냈다. 그날 밤 집으로 찾아와 G씨의 사인까지 받아갔다. 해고사유는 빈번한 무단이탈, 영업성적 저조였다. 단 한 번도 지각이나 결석을 한 적이 없는 G씨로선 억울할 뿐이다.
성희롱 사실을 회사에 알려도 제대로 된 해결을 기대할 수 없는 여성들은 고용노동부의 문을 두드린다. 피해자가 해당 사업장을 관할하는 지방노동관서에 신고하면, 지방노동관서의 장은 즉시 관련 법령 위반 여부를 조사한 후 시정 조치를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이 조사과정에서도 여성들은 근로감독관의 불성실한 태도에 또 한 번 불쾌감을 느낀다.
지난해 1월 상담을 받은 H씨는 근로감독관의 고압적 태도에 피해가 더 가중됐다고 토로했다. 회식 자리에서 상사의 성희롱을 알렸다 해고된 그는 지역 노동청에 진정을 냈다. 조사과정에서 감독관은 "그렇게 억울하고 부당하게 잘렸으면 남아서 투쟁이라도 했어야지 왜 아무 것도 안 했느냐"면서 오히려 그를 나무랐다.
상사에게 성추행을 당한 I씨도 근로감독관이 "뭘 원하느냐"며 쏘아붙인 탓에 더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근로감독관은 "내 일이 아님에도 도와주려고 하는 건데 왜 그러느냐", "성인인데 그것도 모르냐, 똑바로 말하라"고 했고, 참다못한 I씨는 지난해 8월 민우회에 도움을 요청했다.
남직원끼리 낄낄... 형식 아닌 내실 있는 예방교육 필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