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슬픔을 함께 나누는 작은 문화제

[현장] 계속 이어지는 세월호 화명목요촛불 "달과 함께 울다"

등록 2014.09.05 18:50수정 2014.09.05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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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슬픔을 함께하는 작은 문화제는 50여명이 끝까지 자리를 지켜며 진행되었다.
세월호 슬픔을 함께하는 작은 문화제는 50여명이 끝까지 자리를 지켜며 진행되었다.송태원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 슬픔을 나누는 작은 문화제가 열리고 있는 부산 화명 롯데마트 앞이다. 추석 한가위를 앞두고  "달과 함께 울다"라고 작은 문화제의 제목을 달았다.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 슬픔을 나누는 작은 문화제가 열리고 있는 부산 화명 롯데마트 앞이다. 추석 한가위를 앞두고 "달과 함께 울다"라고 작은 문화제의 제목을 달았다.송태원

지난 4일, 부산 화명동 롯데마트 앞에서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한 부산시민의 화명목요촛불이 켜졌다.

사회를 맡은 황기철 선생님이 마이크를 통해 '세월호 슬픔을 함께하는 작은 문화제'의 시작을 알렸다. 시작과 동시에 격앙된 목소리의 시민 두 명이 노골적으로 문화제 중단을 요구했다.

"소리 시끄러워 죽겠다. 소리 낮차라. 시끄러워서 우리가 일을 못한다. 이레 시끄러우면 경찰에 신고한다. 대충 합시다. 세월호 때문에 장사가 안 된다. 집회신고는 했나?"

'화명촛불아짐이'를 자처하는 아주머니 한 분이 두 명의 시민을 어렵사리 달래며 간신히 행사가 시작됐다.

현실을 풍자한 자작시 한 편에 눈시울이 붉어지다

 "선생님, 준이가 물에 빠졌어요"을 두명의 시민이 낭송하고 있다.
"선생님, 준이가 물에 빠졌어요"을 두명의 시민이 낭송하고 있다. 송태원

얼마 전 아이를 출산한 한 엄마와 미소시민이 여는 시 한 편을 낭송했다. 대화형식으로 낭송된 이 시 내용이 현실과 흡사하다는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선생님, 준이가 물에 빠졌어요.
아아, 걱정마라, 곧 스스로 나올 거야.


선생님, 준이는 수영을 하지 못해요.
걱정마라, 이 수영장엔 전문 구조요원이 있어.

선생님, 준이가 물 밑에서 안 나와요. 구조요원은요?
걱정마라, 늦게 오겠지만 구조요원은 최선을 다할 거야.


선생님, 준이가 물에 빠진지 30분이 넘었어요.
오오 걱정하지마라, 선생님이 방금 수영장 사장을 고소했어.

선생님, 준이의 아빠가 오셨어요.
괜찮아, 애들 키보다 풀을 깊이 판 수영장은 준이 아빠에게 충분한 보상금을 줄 거다,

선생님, 준이 아빠는 선생님이 뭘 했는지 묻고 싶대요.
그게 왜 궁금한지 모르겠지만, 괜찮다. 시간이 지나면 준이 아빠도 이해할거야.

선생님, 사실 저도 선생님이 아무것도 안 하신 것 같아요.
이런 이런, 너는 나쁜 아이구나. 선생님은 항상 최선을 다하고 있어

선생님, 준이가 왜 물 속에서 못 나오는지 가르쳐주세요.
운이 나빴을 뿐이야. 익사는 교통사고 같은 거거든.

선생님, 저한테도 그런 일이 일어나면 어떡하죠?
누가 그러든! 착한 아이들에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

선생님, 준이는 나쁜 아이였나요?
글쎄,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준이 아빠는 나쁜 사람이구나. 아직도 수영장 가에 서 계시네. 저러면 이용하는 분들께 피해를 주지 않니.

선생님, 준이 아빠가 계속 묻고 계세요.
준이 아빠, 어쩔 수 없었어요. 전 수영은 할 줄 알지만 젖기가 싫었답니다.

선생님, 준이 아빠가 울고 계세요.
괜찮다 얘야. 준이 아빠는 사실 이혼도 했고 수상한 클럽에도 가입되어 있단다.

선생님, 중요한건 그게 아닌 것 같아요.
늦었구나, 그만 집으로 가자 얘야.

선생님, 준이 아빠는 집으로 안가신대요.
그건 얘야, 준이 아빠가 떼를 쓰고 있기 때문이야. 어쩌면 보상금을 더 원하기 때문인지도 모르지.

선생님
선생님, 아직 질문이 많아요.
들어보세요. 한번만 들어보세요.

우리가 준이처럼 되면,
우린 어떻게 되나요.

이어지는 공연, 훼방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촛불

홍승이씨의 "꼭꼭 숨어라, 어디까지 왔니, 이름이 뭐니?"의 대사와 춤으로 어우러진 공연이 이어졌다. 공연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많은 생각에 잠겼다.

 춤과 짧은 대사의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는 홍승이
춤과 짧은 대사의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는 홍승이송태원

이날은 박경화 밴드의 사람들도 "달과 함께 울다"라는 취지에 동참했다. 박경화 밴드의 하창룡씨는 "그동안 화명촛불을 들기만 했지만 오늘은 세월호 유가족의 슬픔을 노래로서 연대하기로 하였다"며 짧은 소회를 밝히며 공연을 시작하였다.

이날 행사에는 이 지역 주민뿐만 아니라 다소 먼 지역의 부산 시민, 경남에서 오신 분 등이 슬픔을 나누기 위해 모였다. 각자가 나누는 마음은 화명목요촛불이 이어지는 힘일 것이다.

 박경화 밴드의 공연
박경화 밴드의 공연송태원

세월호 참사 사망자의 넋을 기리고 실종자의 무사 귀환을 염원하며 밝혀진 화명촛불은 매일 오후 7시에서 9시까지 롯데마트 앞을 지켜왔다. 내가 처음으로 화명촛불을 들기 시작한 것은 지난 4월 22일이었다. '손피켓'을 들고 조용히 그 자리를 지켰던 화명촛불에는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한 서명가판대가 생겼다. 추모문화제에 500여 명이 참가한 날도 있었다.

지난 6월 13일 세월호 참사 추모 문화제 이후 화명목요촛불이라 이름 불리게 됐다. 매일 들던 촛불을 매주 목요일 오후 7시로 변경하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화명목요촛불은 궂은 날씨에는 10명도 되지 않는 인원이 촛불을 들었을 때도 있었다. 몇 주 전부터는 화명목요촛불에 대해 "세월호 지겹지도 않나?", "할 만큼 했다", "고만해라"라며 불만을 토로하는 시민들도 몇명 있었다. 지난 8월 25일의 부산지역홍수도 "세월호 유가족들이 나랏돈 6조나 드는 억지주장을 했기 때문"이라는 억지주장에는 실소가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세월호 촛불에 강한 불만을 토로하였던 두 사람
세월호 촛불에 강한 불만을 토로하였던 두 사람송태원

 세월호 참사에 대한 기억이 진실규명없이 희미하게 사라지면 세월호 참사는 계속될것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기억이 진실규명없이 희미하게 사라지면 세월호 참사는 계속될것이다.송태원

그 전에 함께 슬픔을 나누고 방울토마토, 포도, 음료수 등을 서명 가판대옆에 조용히 놓고 가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장면들이 한 번씩 연출되고 있다. 하지만 보이다가 안 보이는 사람도 있지만, 매주 보이는 사람도 있다. 새롭게 참여하는 사람도 있다.

화명촛불 지킴이로 불리던 황기철 선생님은 광주에서 팽목항까지 일주일 간의 도보순례를 다녀오기도 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1일 동조 단식에 참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화명목요촛불은 세월호 참사의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까지 이어질 것이다. 그러기를 바라본다.

play

아침이슬을 함께 부르다 세월호 슬픔을 나누는 작은 문화제(달과 함께 울다)에 참가한 부산경남 시민 50여명이 아침이슬을 함께 제창하였다. ⓒ 송태원


#화명목요촛불 #세월호 참사 #달과 함께 울다 #작은 문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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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폐지, 헌옷, 고물 수거 중 하루하루 살아남기. 콜포비아(전화공포증)이 있음. 자비로 2018년 9월「시(詩)가 있는 교실 시(時)가 없는 학교」 출간했음, 2018년 1학기동안 물리기간제교사와 학생들의 소소한 이야기임, 책은 출판사 사정으로 절판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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