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희생자 고 김동혁군 어머니 김성실씨.
김동환
"동혁이가 추석 같은 명절을 항상 기다렸어요. 중 3때 처음 명절이란 걸 겪어봤거든요. 맛있는 음식들이 많잖아요. 어른들이 용돈도 주고. 고기를 무척 좋아했는데 산적같은 거는 아예 100% 고기니까..."
하루에 여섯 끼씩 밥을 먹던 아들의 사진을 만지작거리며 기억을 떠올리는 엄마의 목소리가 촉촉히 젖어들었다. 세월호 사고로 희생된 단원고 2학년 고 김동혁군의 엄마 김성실씨(50)다.
김씨는 김군과 가족이 된지 3년만에 아들을 잃었다. 당사자는 슬픔과 죄책감에 가슴이 찢어졌지만 '새엄마' 유가족을 바라보는 세간의 표정은 묘했다.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는 친정 식구들의 시선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김씨는 7일 만난 기자에게 자신이 추석에 할 '임무'에 대해 털어놨다. 명절날 모인 친정 식구들에게 부탁이든 설득이든 해서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지지해달라고 하겠다는 것이다. 김씨는 "아무것도 모르는 착한 아이들이 더 이상 죽지않게 하려면 세월호 참사 진상을 규명해서 꼭 바로잡아야 하고 그럴려면 제대로 된 특별법이 필요하다"면서 "주변 사람들을 좀 설득해달라"고 호소했다.
새엄마 거리로 나서게 한 아들의 "엄마 사랑해"세월호 유가족들은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서울 종로구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17일째 노숙중이다. 쇠파이프 몇 개 위에 김장비닐을 덮고 검은색 망사 비닐로 햇볕을 겨우 가린 지붕 아래서 유가족 20여 명이 먹고 또 잔다.
추석을 앞둔 농성장에는 먹을거리가 제법 풍성했다. 이날 오전에는 부천의 한 시민이 "달리 할 게 없어서 죄송하다"면서 중동시장에서 사온 문어 숙회 10만 원 어치를 놓고 갔다. 종로에 있는 '함께 여는 교회'에서는 밥 40인분을 가져왔다. 송편 등 추석 음식을 들고오는 사람도 상당했다.
유가족들은 "가져오시는 음식들은 거의 다 먹으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10년 치 먹을 송편을 이틀 동안 먹고있다"며 유쾌한 너스레를 떠는 유가족도 있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한 상실감은 좀처럼 채워지지 않는다. 반복되는 계절이 기억을 부르는 탓이다. 최근 농성장의 유가족 어머니들은 느닷없는 눈물을 쏟아야 했다. 농성장 인근에 위치한 경복고등학교 여름 교복이 단원고와 거의 비슷한 차림이었기 때문이다.
김성실씨는 추석 얘기를 하다가 동혁군 얘기를 꺼냈다. 친가와 왕래가 없던 동혁군은 김씨를 새엄마로 맞은 후에야 친지들이 모이는 명절을 처음 체험했다. 김씨는 "동혁이가 처음 추석날 외가에 가고서 너무 좋아했다"면서 "설이나 추석때는 항상 하루 먼저 가서 자면 안되느냐는 얘기를 하곤 했다"고 설명했다.
"정말 착한 아이였거든요. 어른들을 엄청 따르고 좋아했어요. 친정어머니가 편찮으신데 가서 간호도 해드리고. 학교에서도 뭐 먹을 게 생기면 수위아저씨하고 나눠먹을 정도로요."그와 김군의 사이는 각별했다. 동혁군은 배가 가라앉기 전 휴대전화에 "엄마 사랑해. 엄마, 아빠 사랑해요. 내동생 어떡하지?"라는 내용의 영상메시지를 남겼다. 김씨는 "새엄마가 유가족 활동을 열심히 하면 어떤 눈총을 받을지 잘 알고 있었지만 그 동영상 생각을 하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고 털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