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조선학교 알리는 일이면 뭐든 할 겁니다"

[인터뷰] <우리학교> 제작한 김명준 감독을 만나다

등록 2014.09.18 14:38수정 2014.09.18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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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에 개봉된 <우리학교>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다. 이 영화 포스터에는 '일본 땅 조선아이들의 '용감한' 등교가 시작된다'라고 크게 쓰여 있다. 이른바 조총련계 '조선학교'로 사람들에게 인식된 '우리학교'는 현재 일본 땅에서 온갖 차별과 탄압을 받고 있다.


2011년 6월부터 CBS에서 방영하고 있는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아래 세바시)>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강사는 15분이라는 시간 동안 자신이 경험한 것에 기초해 세상을 향해 메시지를 던진다. 이 프로그램이 생긴 지 얼마 안 된 2011년 7월, 영화 '우리학교'의 김명준 감독은 강사로 출연해 '조선학교' 아이들의 얘기를 하다 목이 매 말을 잇지 못했다.

"제가 세상을 바꾸지는 못할지언정, 여러분들이 조선학교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십사, 호소하기 위해 나왔습니다. 올 3월에 일본에서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도호쿠 조선학교에서 있었던 일화를 하나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지진이 일어났을 때 중급부 학생들은 마침 건물 밖에서 잘 피해 있었는데, 건물 안에는 초급부 동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었대요. 어린 친구들은 훈련받은 대로 책상 아래 숨어있었습니다.

지진이 잠깐 멈췄을 때 중급부 학생들이 소리를 질러 일부는 빠져나왔다고 합니다. 다시 여진이 시작됐습니다. 어른들도 그냥 서 있는 것도 무서운데 중급부 아이들이 아직 못 나온 초급부 아이들에게 달려가게 해달라고 선생님들한테 소리 지르고 울면서 아이들을 데리고 나왔다고 합니다."

8월 29일, '북녘어린이영양빵공장사업본부(본부장 이미혜)'의 강연 요청으로 인천을 방문한 김명준(45·사진) 감독을 <시사인천>이 만났다.

2000년 6·15공동선언과 통일 열기
 
 영화 <우리학교> 김명준 감독.
영화 <우리학교> 김명준 감독.김영숙
"일본에서 대지진이 일어나고 '몽당연필'을 만든 직후라 많이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세바시) 피디(PD) 요청에 응했죠. 아직도 '조선학교'라고 하면 재일동포, 조총련, 북쪽, 반 쪽발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어서, 긴장을 많이 했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세바시 출연 동기를 묻자, 김 감독은 이렇게 답했다. '몽당연필'은 재일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한국에서 조선학교의 가치를 알리고 더 많은 이들이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일을 하고 있다. 배우 권해효씨가 대표로, 김 감독이 사무총장으로 활동한다.

영화 '우리학교'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조선학교'에 관심을 가진 계기가 무엇이었는지를 묻자, 김 감독은 자세하게 설명했다.


"조은령 감독이라고 미국 뉴욕대 영화과 출신으로 단편영화 '스케이트'로 칸 영화제에 초청을 받은, 촉망받던 여성 영화감독이 있었습니다. 조 감독이 재일 조선인 학교에 대한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촬영감독을 섭외했죠. 그때 함께 했습니다."

조 감독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단편영화를 만들 정도로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되자 한반도에 평화의 물결이 일었다. 그 당시는 어느 종교단체든 통일이 화두였고, 조 감독이 다니던 교회에서도 통일을 주제로 부흥회를 열 정도였다.

그 해 광복절에 방송에서 일본에 있는 '민족학급'에 대한 다큐가 소개됐다. 민족학급이란 오사카나 고베 지역에 있는 일본 학교 내에서 방과후에 조선인 학생들을 모아 우리말을 가르치던 학급을 말한다. 조 감독은 그것을 보고 극영화로 만들면 재밌겠다고 생각했다. 그 해 일본으로 가 민족학급 교사를 만나 취재하던 중, '민족교육을 잘 알려면 조선학교를 가라'는 말을 듣고 오사카 조선학교를 방문했다. 조선학교 아이들을 만나고 나서 영화 '우리학교'를 기획했고, 극영화보다는 다큐로 만들기로 결정했다.

"조총련이라는 존재를 언론에서 들었지만 조선학교니 민족교육 등은 몰랐어요. 그런데 미국에서 학교를 다닌 조 감독이 그런 얘기를 하니까 신선했죠. 같이 2002년 3월, 조선학교를 취재하러 갔는데 그때 엄청 놀랐어요."

홋카이도 조선학교, '우리학교'의 '우리 아이들'

조은령 감독에게는 분단 최초 민간인 신분으로 어느 조선학교든 방문이 가능한 권한이 주어졌다. 그만큼 조 감독은 동포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갔고, 동포사회에서도 그에게 마음의 문을 열었다.

그러나 2002년부터 촬영을 시작한 조 감독은 2003년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이 영화를 만들면서 많은 교감을 나눈 김명준 감독과 결혼한 지 6개월 만의 일이었다. 조 감독이 죽었을 때 동포들은 추도식을 했고 그를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그의 유골 일부와 함께 나무를 심었다.

김 감독은 부인이 재일 조선인사회에 만들어놓은 신뢰감을 바탕으로 홋카이도 조선학교에 들어가 1년 7개월간 학생·교사들과 함께 살며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고, 1년 6개월간의 편집기간을 거쳐 영화 '우리학교'를 세상에 내놓았다.

'우리학교'는 태평양전쟁 전후 일본으로 건너간 재일조선인들이 세운 민족학교를 말한다. 치마저고리를 교복으로 입고 우리 말, 우리 역사를 가르치는 이 학교는 일본 정부에서 정식 학교로 인정하지 않아, 이 학교 학생들은 대학에 가려면 별도의 시험을 치러야 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홋카이도 조선초·중·고급학교'의 아이들은 교사들과 함께 기숙사 생활을 하며 가족처럼 12년을 보낸다. 김 감독도 기숙사의 방 하나를 배정받아 학생들과 먹고 자며 영화를 찍었다.

"제가 '우리학교'를 계속 찍겠다고 했을 때, 저를 아끼는 친구들이 저에게 도움이 안 되는 영화라고 많이 말렸어요. 하지만 이 영화의 프로젝트가 너무 아까웠고 제가 안 하고 누군가 다시 시작한다면 많은 시간이 걸릴 테니 내가 안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김 감독은 아내를 잃은 괴로움을 영화를 찍으면서 극복할 수 있었다.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계속 우울했죠. 힘들게 밤을 보내고 아침에 다시 촬영하기 위해 웃음기 없는 얼굴로 카메라를 들고 나가면 초급부 1학년 아이들이 밝은 얼굴로 저에게 안기는 거예요. 그 아이들 앞에서는 자연스레 웃는 얼굴이 되죠. 동포들이 제 사정을 다 알면서도 드러내지 않고 위로해주시면서 밥도 챙겨주셨어요. 영화를 찍으면서 조선학교를 제대로 보여줘야 한다는 의무보다는 그냥 고향사람 같은 분들과 같이 있는 마음이었죠."

없어서는 안 될, '몽당연필'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은 2011년 3월 11일 일본 대지진 이후 조선학교를 돕자는 취지로 문화예술인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공동대표는 동갑내기인 가수 이지상·안치환과 배우 권해효씨가 맡았고, 김명준 감독이 집행위원장으로 함께 했다.

권해효씨는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몽당연필'이라는 이름을 지은 사연을 말했다.

"아끼기는 하지만 언젠가 버릴 수밖에 없는, 하지만 없으면 안 되는 존재들이 있죠. 조선학교 학생들과 몽당연필의 이미지를 비슷하게 느꼈습니다. 몽당연필은 학교를 연상시키기도 해서 그렇게 지었습니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우리말과 역사를 지키면서 일본사회에서 살아온 소중한 이들을 알리고 도움을 주고자 합니다."

현재는 '몽당연필'의 사무총장이자 공석인 사무국장의 역할까지 하고 있는 김 감독은 "매달 한 번씩, 12회 공연으로 1년간 한시적으로 운영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조선학교를 돕던 기존 단체들도 '몽당연필'에 힘을 실어주면서 오히려 재일본 조선학교를 돕는 사업에 우리가 중심에 서게 된 거죠. 제가 활동가는 아니니까 혼자라면 못했을 텐데 여러 사람이 조언도 하고 도와주니까 할 수 있었습니다"라며 "한국사회에 재일동포와 조선학교 아이들을 알리는 일이면 어떤 것이라도 하는 게 우리 단체의 목표입니다"라고 했다.

60만 재일동포들의 염원인 '60만 번의 트라이'

김영숙
올해 15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CGV무비꼴라쥬상을 수상한 박사유·박돈사 감독의 영화 '60만 번의 트라이'가 9월 18일 개봉한다. 전국 시사회를 통해 조용하지만 무섭게 입소문이 번지고 있다. 인천에서는 북녘어린이영양빵공장사업본부가 9월 27일 오후 2시와 5시 부평 싱크빅문고 6층 강당에서 무료 상영회를 연다.

두 감독은 최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촬영한 테이프를 놓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영화를 만들 엄두를 못 내고 있을 때, 김명준 감독이 오사카에 왔다가 이 얘기를 듣고는 빨리 영화로 만들어야한다고 재촉했고 한국 독립영화 제작·배급사를 소개해주면서 급물살을 탔다'고 했다.

"좀 과장된 거예요. 이 분들이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거는 예전부터 알았고, 제가 오사카에 갔을 때 영화를 편집하고 있던 상황이었죠. 영화 만드는 사람들은 기한을 정해 개봉날짜를 확정하지 않으면 만족할 때까지 계속 작업하는 경향이 있어요. 저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 당신들 영화 훌륭하다. 빨리 개봉하자'고 한 게 전부예요."

오사카 조선고급학교 럭비부 얘기는 재일동포사회에서 유명하다. 김 감독은 이를 누군가 영화로 만들면 좋겠고, 자신이 만들어보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몽당연필' 활동 등으로 선뜻 시도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누군가 작업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제가 '우리학교'라는 영화를 만들면서 느꼈던 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능력이 아니라 감독이 그 현장에서 동포사회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 게 다라는 거였어요. 그 결과가 감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선학교 어머니들의 얘기를 영화로 만들고파

김 감독은 '그라운드의 이방인'이라는 영화를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이 영화는 재일동포 가운데 일본 학교에서 야구했던 사람들 중에 대표로 선발돼 고국을 방문한 '재일동포 학생야구단' 이야기다. 한국전쟁 후인 1956년부터 42년간 동대문야구장을 찾은 이들은 IMF 경제위기 이후 다시는 그라운드를 밟을 수 없었다.

"조선학교 이야기는 아니지만, 동포들의 얘기에 관심이 갔습니다. 우리 사회가 재일동포를 어떻게 이용하고 버렸는지 말하고 싶었던 거죠. 앞으로 꼭 찍고 싶은 영화는 조선학교 엄마들 얘깁니다. 조선학교는 동포들의 후원금과 수업료로만 운영됩니다. 조선학교를 지탱해나가는 힘은 어머니들에게서 나옵니다. 어머니들이 어떻게 조선학교를 지켜나가고 자기 인생을 걸고 있는지, 그걸 찍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시사인천>에 실림
#김명준 #우리학교 #몽당연필 #60만번의 트라이 #북녘어린이영양빵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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