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아저씨'로 만들어준 문방구
이대로
초점 없이 멍하고 퀭한 눈. 그 밑엔 때 이른 다크서클. 대충 감고 나온 머리는 온통 땀에 젖어 헝클어졌다. 후줄근하게 걸려 있는 사흘째 똑같은 셔츠. 맨발에 슬리퍼.
치열한 아침 장사(라고 쓰고, 전쟁이라 읽는다)를 이제 막 마치고 난 다음에 화장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다. 딱 한 단어가 생각난다. 아, 저, 씨! 예전에는 배는 나왔어도 '동안'임을 나름 자부했던 나. 이젠 노안이 아님을 감사해야 할 처지. 나는 진짜 아저씨가 되어 있던 것이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씩 '아저씨'라며 나를 부르며 찾는 아이들 틈에서 나는 아저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학부모들에게 머리 조아리는 내 모습, 정말 불쌍했지만... 뭣도 모르고, 무모하게 낯선 땅에서 문방구를 시작한 지 한 달 반. 이제야 좀 적응이 되는 것 같다. 아침 7시 반에서 저녁 9시까지 일을 하고, 매일 문을 열어야 되는 시스템(격주 일요일은 쉰다)도 적응됐다. 너무 피곤할 때는 문 좀 일찍 닫고 싶은 유혹도 찾아오지만, 그렇겐 안 되더라. 내 장사니까.
물건의 위치도 이젠 어느 정도 파악했다. 사실, 있는 것도 못 판 경우도 몇 번 있었다. 내가 못 찾았는데, 손님이 찾아줄 때의 '뻘쭘함'이란! 가격도 이제 어느 정도 외웠다. 거스름돈을 잘못 준 적도 여러 번. 그 정도는 귀여운 실수 아니냐고? 모르는 소리! 이 업계에선 몇 백 원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새로운 딱지와 카드도 들여놓고, "신상 나왔어!"하며 애들에게 외친다.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문방구의 필수 업무인 포장. 이제 그것도 능숙하게(다섯 번에 한 번 정도?) 할 줄 안다.
무척 바쁜 아침과 저녁을 빼고는 라디오도 크게 틀어놓는다. 6평 문방구 속 1평도 안 되는 비좁은 카운터에서 책도 읽고, 이렇게 글도 쓴다. 밥 먹고 원두커피 아메리카노까지는 아니더라도 봉지커피를 마시는 여유도 부린다.
아이들의 성향도 파악했다. 문에서부터 "안녕하세요" 90도 인사를 하고 들어오고, 물건 사고 공손히 동전 올려놓고, 나갈 때에도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인사를 꾸벅 하는, 이른바 '천사표' 아이들이 있다. 이 아이들만 오면 막 힘이 나고 신이 난다. '문방구 하길 정말 잘 했네' 느낀다. 그 천사들만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으니 세상은 참 공평(?)하다.
'진상' 아이들도 있다는 사실. 오백 원짜리를 백 원 깎아 달라고 계속 떼쓴다. 이들과의 협상은 빨리 끝내야 한다.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그들의 술수에 말린다. 어리다고? 노(No)! 이럴 때 보면 속에 능구렁이 하나쯤 들어 있는 것 같다. 동전을 팍팍 던지는 아이들도 있다. 이럴 때면 몇 번씩 가슴을 쓸어내린다. '이걸 얘기할까? 말까?'
장사 마치고 집에 들어가면, 그날 매출을 정리한다. 꼬깃꼬깃 접힌 지폐들과 손때 묻은 동전들을 바라보면, 하루의 피로가 푹 가신다(까진 아니고, 기분이 좀 풀어진다). 샤워로 하루를 마무리하며, "오늘 하루도 고생했구나! 대로야 수고했다!" 스스로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낸다. 이렇게 한 달 반이 지난 지금, 나는 완벽한 문방구 아저씨로 변신했다.
문방구 개업 한 달 반... 이제 커피 한 잔의 여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