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중지
해냄
다음날 아무도 죽지 않았다. 새해가 시작되는 1월 1일 0시를 넘어가는 순간 한 국가의 죽음이 사라졌다. 당장에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았던 모후(母后. 왕의 어머니)와 질병에 걸린 수많은 사람이 죽지 못하고 산송장처럼 목숨을 부지하게 되었다.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죽음의 중지>는 어느 날 죽음이 사라진 한 국가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죽음은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죽음을 통해 곁에 있는 사람의 부재와 소중함을 되돌아 볼 수 있고, 삶의 의미도 느낀다. 또한 죽음은 삶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마지막 촛불이다. 끝이 있어 시작이 의미를 가지듯 죽음이 삶의 의미를 만든다.
죽음이 사라진 삶책 속 죽음의 부재는 이웃 나라에서는 일어나지 않았으며 더구나 이 나라에서도 인간에게만 한정되어 일어났다. 장례 업계와 종교계 그리고 보험 업체 등 죽음과 연관된 모든 영역에서 비상사태가 벌어졌다.
죽음이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보험사는 80년을 주기로 보험료를 갱신해주겠다고 했으며, 장례 업계는 국내에 있는 스파이와 협정을 맺고 매일 죽어가는 개와 고양이, 도마뱀 등을 처리하는 볼품 없는 집단으로 전락해 버렸다. 종교계는 죽음이 없으면 부활도 있을 수 없고, 부활이 없으면 종교가 존재할 의미도 없다는 구호를 내세우며 이는 필시 신의 분노이기 때문에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소설을 보면 인간들은 삶 속에서 죽음을 추상적인 존재가 아닌 하나의 물질로 치부한다. 죽음이 사라지자 도시는 혼란에 빠진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인간들은 죽음의 부재를 잊고 그저 살아가게 된다.
보험, 종교, 장례 단체는 죽음이 사라진 삶을 단순한 사회 변화로 인식한다. 그들은 새로운 사회에 적용되는 변화를 추구하기에 이른다. 그 단체들이 보기에 인간의 삶과 죽음은 돈과 명예로 치환할 수 있는 단순한 개념이었던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도시는 수많은 사람이 실처럼 가는 호흡을 내쉬며 목숨을 연명하는 산 자들의 공동 묘지로 변해간다. 죽음도 삶도 아닌 그들의 시간을 끝낼 수 있는 것은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국경선이었다. 죽음이 의무가 아닌 선택이 된 것이다.
죽음이 없는 상태의 혼란과 무질서
그러던 중 오래도록 죽지 못하고 살아있는 노인을 데리고 있던 한 소규모 자작농 가족이 새로운 발상을 한다. 국경 너머로 노인을 데리고 가서 죽이자는 것이었다. 이후 국내 여러 사람들은 이웃 국가와 맞댄 국경으로 죽일 사람들을 데리고 가게 된다. 이 나라와 근접한 이웃 4개 국가는 전시 체제에 돌입하게 된다. 다행히 국내 왕은 국경에서 죽음을 맞고 장례는 국내에서 치루겠다는 협상을 통해 이웃 나라와의 전쟁은 면하게 되었다.
국민들은 점점 죽음의 부재에 익숙해져갔다. 그러던 중 총리 앞으로 자주색 편지가 도착한다. 소문자 '죽음'이라는 서명이 적힌 편지로, 내일부터 다시 죽음이 시작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미 7개월 동안 일방적인 휴전을 한 죽음으로 인하여 6만 2580명이 목숨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다음날 죽음이 시작된다면 국가는 다시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있었다.
총리는 다음날 오전 12시가 되기 3시간 전 텔레비전을 통해 비상사태를 알린다. 국가는 다시 혼란에 빠졌다. 7개월 동안 죽음의 부재를 겪고 있던 인간의 삶에 다시 죽음이 찾아온다. 죽음이 다시 시작되는 날 죽음 대기자 6만 2580명이 한꺼번에 죽는다. 여기에는 모후도 끼어있었다. 이로써 한 세대가 죽고 한 세대가 태어나는 올바른 흐름이 다시 시작된다. 장례 업계는 일꾼들과 목수를 모집하느라 바쁘고, 교회도 참회하는 사람들로 붐빈다. 그리고 다음날 6만 명이 넘는 죽음을 시작으로 삶은 다시 예전처럼 돌아온다.
소설은 이제 '죽음'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죽음은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죽기 일주일 전 그 사람에게 자주색 편지를 전달하는 일을 반복한다. 하루에 약 200명 정도의 사람들이 일주일의 삶을 선고받고 죽음을 기다리게 된다. '죽음'이 여느 때와 같이 자주색 편지를 쓰고 있는데 한 통의 편지가 되돌아온다. '죽음'은 그 편지를 다시 보내 보지만 또 되돌아온다.
'죽음'이 다시 활동을 시작하고 사람들에게 삶을 선고하는 나날이 흐르던 중 '죽음'은 어떤 편지가 연달아 되돌아오자 의아해 한다. 그 사람은 50살의 독신 남자 첼리스트였다. 그는 원래 49살에 죽어야 하지만 50번째 생일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죽음'은 그 사람을 몰래 관찰하고, 한 번 더 편지를 보내보지만 소용없었다. '죽음'은 그와 대면하여 직접 편지를 전하기로 한다. '죽음'은 직접 그 사람을 찾아 나섰다. 죽음이 삶과 만나는 순간이었다. 죽음은 그를 관찰하며 따라다닌다. 그의 음악회에 가서 노래를 듣기도 하고 그가 침실에서 잠자는 것을 지켜보기도 한다.
마침내 '죽음'은 인간 여성의 모습으로 첼리스트 앞에 나타난다. 그리스 로마 시대 운명의 세 여신(파르카이)처럼 소설 속 '죽음'은 여성 인간으로 분장한다. '죽음'은 그를 겁주면서 건네줄 편지가 있다고 한다. 그렇게 첼리스트와 죽음은 여러 이야기를 한다. 그러던 중 첼리스트는 '죽음'을 사랑하게 된다. 인간의 모습으로 첼리스트와 대화를 나누던 어느 날 '죽음'은 첼리스트로부터 사랑 고백을 받는다. '죽음'은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했지만 무엇에 이끌렸는지 그와 사랑을 나눈다.
'죽음'을 사랑하게 된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