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산기슭 저 아래 자리잡고 있는 아주 작은 암자가 보였다.
송성영
"암만 해두 나는 저기로 가야겠어." "어디로요?""저기 반대편 산봉우리."내가 젊은 친구들에게 손짓한 산봉우리에는 온통 오색 깃발들로 뒤덮여 있었다. 오색 깃발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싶은 것도 있었지만 저 산봉우리에서 홀로 설산과 마주 보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젊은 친구들과 헤어져 산길로 되돌아 내려와 오색 깃발 찬연한 산봉우리에 올랐다. 산봉우리로 향하는 길목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야생화들이 곳곳에 피어 있었다. 가파르게 오른 산봉우리에는 형형색색의 오색 깃발들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고 거기서 몇몇 티베트 사람들이 옷가지를 불사르고 있었다.
한국의 절에서 죽은 자들의 영혼을 하늘로 올려 보내는 천도제를 지내고 천도제에 쓰였던 옷가지들을 불에 태우듯이 이들 또한 죽은 사람의 유품을 태우며 극락정토를 염원하는 의식을 치르고 있는 듯했다. 그동안 사진을 통해서만 보아왔던 히말라야 설산과 오색 깃발들이 바람과 함께 내 주변을 감싸왔다. 황색, 백색, 홍색, 청색, 녹색의 이 다섯 가지 깃발을 티베트 사람들은 흔히 '다르촉' 혹은 '룽따'라 부르고 있다.
'룽따'를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바람의 말'이라는 뜻으로 이 깃발 안에 새겨진 말(馬)을 얘기한다. 오색 깃발에는 불교 경전이 새겨져 있고 깃발의 여백에는 개인의 소원을 적어 놓기도 한다. '롱따'가 바람을 타고 하늘을 달려 부처님의 말씀과 함께 개인의 소원을 이루게 해달라는 염원이 담겨 있다.
죽은 자들과 산자들의 염원이 담겨 있는 오색 깃발들, 매달아 놓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새 깃발과 더불어 다 낡아 그 일부가 바람에 찢겨 나갔거나 색 바랜 깃발들로 뒤엉켜 있다. 사방팔방 산봉우리를 물들이고 있는 오색 깃발들이 마치 인간의 생로병사를 한 자리에 모아놓은 듯하다.
제를 마친 티베트인들이 산을 내려가자 마침내 나는 혼자가 됐다. 눈앞으로 펼쳐진 히말라야 설산과 마주앉아 가만히 눈꺼풀을 내리고 숨고르기를 한다. 숨이 들어오고 나감을 느끼며 의식을 따라가 본다.
예민하게 열린 내 의식 속에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내가 있다. 머릿속에 뒤엉켜 있는 의식들을 꼬리뼈 아래로 내려 보내려 하지만 쉽지 않다. 혼란스럽기만 한 의식은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처럼 흔들리고 있다. 깃발마다 담겨진 수많은 염원들이 바람소리와 뒤엉켜 소란스럽게 내 귓전을 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