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보 접기 봉사도 하고 즐거움도 나눕니다
김관숙
우스개 소리가 유난히 많이 오갔던 날입니다. 모두들 웃음을 터뜨리던 순간 그 어르신이 혼잣말처럼 말했습니다.
"난 귀가 잘 안 들려서..." 모두가 놀라면서 걱정 했습니다.
"나보다 나이가 한참 덜 먹었는데 어쩌나. 보청기 해봤어?" "잡음이 많아서 안 해요." 그때 나는 귀가 잘 안 들린다는 팔순 지난 어르신의 말을 무심히 듣고 지나쳤습니다.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떨던 날. 주보 접기가 끝나고 그 어르신을 따라 마당으로 나섰습니다.
앞서가던 어르신이 나를 돌아봤습니다. 순간 놀랐습니다. 주보를 접을 땐 어르신과 떨어져 앉아있기도 했지만, 형광등 불빛이라 몰랐는데 햇볕에 드러난 어르신의 모습이 말이 아닙니다. 저 몸으로 어떻게 한 시간 이상 버티면서 주보를 접었을까... 주름진 얼굴은 꺼칠하고 기운이 하나도 없어 보입니다.
"형님, 어디 편찮으세요?" 그러자 어르신은 조용히 웃습니다.
"조금 크게 말해, 나 잘 안 들린다구 했잖아." 그제야 그제야 나는 '아, 잘 안 들린다고 하셨었지'하고 생각하면서 조금 크게 "어디 편찮으세요?"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어르신이 어린아이처럼 환하게 웃습니다.
"이쪽 다리가 자꾸 저려. 오래 됐다고. 또 물리치료 받으러 가야 해." "형님, 물리치료만 받지 마시고 큰 병원 가서 진료를 받아 보세요." 다리가 오래 저리신다는 말에 무슨 병의 전조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어르신은 "다리가 저릴 뿐인데 뭘" 하시고는 천천히 돌아섰습니다. 어르신은 어깨를 구부리고 힘이 하나도 없는 걸음으로 멀어져 갔습니다. 며칠 후 어르신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날 이후부터 성당에서 어르신들을 만나면 그때 그 어르신처럼 환하게 웃으면서 평소보다 조금 더 큰 목소리로 인사를 합니다. 어르신들이 얼마나 좋아하시는지요. 어떤 어르신은 사랑스런 눈빛으로 "커피 먹을래? 빼 줄까?" 하고 자판기 쪽으로 손을 잡아끄십니다.
돌아보니 사무실 안은 아까처럼 조용합니다. 돌아가신 어르신을 위한 연미사 신청을 받아 준 여직원이 컴퓨터 화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뿐입니다. 나는 어르신의 명복을 빌면서 마당으로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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