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개의 고향에 오니 수상한 시절이 더 부끄럽다

[길을 걷다 만난 풍경] 세월호 참사 책임과 사과 떠오르게 하는 장수 사과밭

등록 2014.09.26 16:06수정 2014.09.26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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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선가 '톡톡', '쩍쩍' 소릴 내며 결실의 실체를 뽐내며 지천에서 곡식과 과일들이 풍요를 노래한다.
어디선가 '톡톡', '쩍쩍' 소릴 내며 결실의 실체를 뽐내며 지천에서 곡식과 과일들이 풍요를 노래한다.박주현

완연한 가을, 하늘도 구름도 어딜 가나 맑고 푸르다. 눈부신 가을 햇살 아래 뭉게구름이 토실토실 영글어 가고 땅에선 곡식이며 과일이 알알이 여물어만 간다. 금세 어디선가 '톡톡', '쩍쩍' 소릴 내며 결실의 실체를 뽐내며 풍요를 노래한다.

다행히 태풍 풍웡이 지나가며 거센 바람대신 고마운 가을비만 내려줘서 그런지 곡식과 열매가 더욱 윤기를 발한다. 농부들은 한 해 동안 흘린 땀방울이 알차게 결실을 맺는 때가 다가왔는데도 정부의 대책 없는 쌀 관세화 때문에 밝지 못하다. 성난 농심이 곳곳에서 애써 가꾸어온 논과 밭을 갈아 업는다.


 눈부신 가을 햇살 아래 뭉게구름이 토실토실 영글어 가고 있다.
눈부신 가을 햇살 아래 뭉게구름이 토실토실 영글어 가고 있다. 박주현

그런 농부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가을 햇살에 더욱 토실하게 여물어가는 곡식과 과일은 마음까지 풍성하게 한다. 25일과 26일 1박 2일간 대학에서 실시하는 연수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전북 장수군 장수읍 발방골길에 위치한 한국농업연수원을 다녀왔다. 이름도 특이한 장수읍 발방골길 주변에는 사과재배 농가가 즐비하게 들어서 있었다. 

붉은 꽃이 가을에 저리도 곱게 탐스럽게 피었을까?

 전북 장수군 장수읍 발방골길에 위치한 한국농업연수원 입구.
전북 장수군 장수읍 발방골길에 위치한 한국농업연수원 입구.박주현

임진왜란때 왜구의 적장을 끌어안은 채 경남 진주시 남강에 뛰어든 주(朱) 논개의 출생지로 잘 알려진 장수는 사과뿐 아니라 한우로도 유명한 곳이다. 해마다 수확 철이 되면 '한우랑 사과랑 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올해도 지난 8월 29일부터 31일까지 사흘간 장수 의암공원 등 군 일원에서는 이 지역 특산품인 한우와 사과가 축제의 주인공이 됐다. 

장수 한우는 해발 500m 가량의 준고랭지 초원에서 호밀·보리 등의 풀과 옥수수·쌀겨 등 다양한 천연 재료의 사료를 먹고 자라기 때문에 맛일 일품이다. 지방이 적고 육질이 부드럽기로 소문났다.

이와 함께 장수 사과는 최근 들어 더욱 유명세를 날리고 있다. 이 지역 사과는 대부분 400미터 이상의 준고랭지에서 재배돼 당도가 높고 육질이 단단한데다 착색이 뛰어나다. 그래서 '홍로'로도 유명하다. 일교차가 커서 사과나무가 영양분을 비축하기 때문에 맛이 좋다고 한다. 해마다 이맘때만 되면 출하되는 장수 홍로는 전국에서 약 30%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재배농가가 많아졌다.


 한국농업연수원에 있는 사과체험 농장.
한국농업연수원에 있는 사과체험 농장.박주현

해마다 이맘때만 되면 장수 사과재배 농장들의 나무마다 온통 붉은 색으로 수를 놓는다. 사과가 붉은 꽃처럼 가지마다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먼발치서 보면 웬 붉은 꽃이 가을에 저리도 곱게 탐스럽게 피었을까?, 할 정도다. 그러다 점점 가까이 다가갈수록 알알이 여문 사과들이 주먹만 하게 반겨주니 참으로 신기하기만 하다.

사과밭에 인접한 한국농업연수원은 최근 이경해 열사 11주기 추모식을 개최된 곳이어서 감회가 더욱 새롭다. 열사는 2003년 9월 11일 제5차 WTO각료회의가 열린 멕시코 칸쿤에서 'WTO가 농민을 죽인다'고 외치며 산화했다. 우리나라 농업보호와 식량주권 수호를 위해 농산물 시장개방 반대에 앞장서서 헌신한 열사의 고장이 온통 붉은 사과 빛으로 물들고 있다.


사과밭 사과만 '주렁주렁'... 진짜 사과는 언제쯤

 어딜가나 길가에 사과밭이 즐비한 장수 사과 재배농장.
어딜가나 길가에 사과밭이 즐비한 장수 사과 재배농장.박주현

붉고 맛이 새콤달콤한 사과는 과일 외에도 의미 있는 두 가지 뜻으로도 쓰인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잘못 따위를)스스로 인정하고 용서를 빌다'란 타동사와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어떠하다고)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빌다'란 자동사로 사용된다.

 사과 열매인지 꽃인지 멀리선 잘 구분하기 어렵다.
사과 열매인지 꽃인지 멀리선 잘 구분하기 어렵다.박주현

물론 영혼 없는 사과보다 진심어린 영혼이 깃든 사과가 우리사회를 훨씬 훈훈하게 만들어 준다. 그런데 지난 봄 발생한 세월호 참사가 어언 반년이 다 돼가고 있는데도 책임져야 할 사람과 사과해야할 사람들은 아무런 말이 없다. 영혼 없는 사과조차 보기 힘들다.

 '홍로'로 유명한 장수사과, 그 정체.
'홍로'로 유명한 장수사과, 그 정체.박주현

국가적 참사의 꼭짓점에 선 대통령은 참사 당일 24차례의 서면 및 유선 보고에도 대면보고는 한 차례도 받지 않아 외국에서까지 교포사회에서 대통령의 '7시간 미스터리'를 제기하며 진정한 사과와 사후 방지대책을 요구하고 나설 정도다. 대통령은 과연 어디에서 무엇을 하였을까? 당당히 밝히고 사과하면 될 일을 자꾸만 키워서 도대체 뭘 어쩌려고 저러는 건지 국민들 가슴은 마냥 답답하기만 하다.

 붉게 물든 가을 사과, 맛은 어떨까?
붉게 물든 가을 사과, 맛은 어떨까?박주현

대통령이 그러니, 청와대 코앞에서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무려 160일 넘게 단식을 하며 진상규명을 애타게 요구하고 있는데도 그들의 목소리를 진정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그들에게 사과하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이미 보수세력과 보수언론, 여당과 정부, 심지어 대통령까지 그들의 절규를 외면하며 딴전을 피우고 있으니 일본 극우신문까지 나서서 조롱과 멸시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의로운 논개 정신 빛 발하게 하는 하수상한 요즘, 부끄럽다

 웬 붉은 꽃이 가을에 저리도 곱게 탐스럽게 피었을까?
웬 붉은 꽃이 가을에 저리도 곱게 탐스럽게 피었을까? 박주현

그래서인지 올 가을 하늘은 더욱 높게 느껴진다. 따스한 햇살은 오곡백과를 살찌우는 풍요의 계절을 가져다주었지만 가슴의 멍은 더욱 깊게 패여만 가고 있는 것 같다. 씁쓸한 기분을 애써 억누르며 하늘을 바라보니 금세 뭉게구름이 내려앉을 것만 같다.

한국농업연수원에서 바라다 보이는 빛 고운 가을 하늘과 뭉게구름이 차라리 부럽게 느껴진다. 2012년 문을 연 한국농업연수원은 부지면적 16만6501㎡, 건축면적 6853㎡, 연면적 1만2950㎡,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 건립돼 다목적용으로 활용되고 있다.

300석 규모의 대강당과 30석 규모의 소강의실, 20석 규모의 분임토의장 등을 갖춘 연수관은 평일에도 농업인 외에도 대학과 기업 등 많은 연수생들이 찾고 있다. 또 54개실을 갖춰 1일 250명의 연수생을 수용할 수 있는 한옥의 공간이미지를 구현한 생활관과 자연친화적 생활관인 포레스트빌이 사과 밭 한 가운데 위치해 있다. 연수원 내에는 아닌게 아니라 과수 농업실습이 가능한 사과 과수체험장 2개소와 농업체험장 2개소 등이 조성돼 있었다.

 의암은 진주에 있는데 논개 사당이 있는 의암호는 장수에 있고, 생가도 장수 주촌마을에 있다.
의암은 진주에 있는데 논개 사당이 있는 의암호는 장수에 있고, 생가도 장수 주촌마을에 있다. 박주현

이곳에서 약 3킬로미터를 가면 논개사당이 있다. 주촌마을 의암호에 논개 사당과 논개 생가가 있는데, 의암은 논개가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뛰어든 바위로 잘 알려져 있다. 의암은 진주에 있는데 의암호는 장수에 있고, 생가는 장수 주촌마을에 있다. 그래서 논개사당 이름을 '의암사'로 지은 모양이다. 이곳에서 매년 음력 9월 3일에 주논개제가 열리는 곳이다.

비록 기녀의 신분이긴 하지만 왜장들이 촉석루에서 벌인 주연에 참석하여 술에 만취한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뛰어들어 함께 죽은 의로운 논개가 이 고장 출신이라니 참 자랑스럽다. 그의 의로운 정신을 되새기며 빛을 발하게 하는 하수상한 요즘 시절이 더 부끄럽지 않은가?
#장수 #사과 #논개 #세월호 #한국농업연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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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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