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일 오후 대학생들이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부근에서 '가만히 있으라'가 적힌 손피켓과 국화꽃을 들고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다.
권우성
저는 이 합의 내용을 읽는 순간, 한 순간에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어버린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 역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해 '열심히'는 아니더라도 개인적으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분명 세월호 참사는 제 삶을 바꾼 사건이었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시민사회의 움직임을 따라 거리로 나왔습니다. 그냥 가만히 있고 싶지 않았습니다. 가족들은 '대학교 1학년이니 마음껏 놀아라', '시위 가서 네가 할 수 있는 게 뭐니?' 하며 만류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거부했습니다. 대학생이든 아니든 그것을 떠나, 그 사건을 알게 된 한 사람으로서 '인간성'을 버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도 그 피해자가 될 수 있었고, 지금 가만히 있으면 후회하면서 살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권력을 쥐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돈도 없는 대학생이 할 수 있는 행동은 '발로 뛰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게 된 것이 4월 말 대학생 용혜인씨가 제안한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입니다. 이 행진을 시작으로 세월호 행동에 나섰습니다.
매주 주말을 거리에서 보냈습니다. 서울로 대학 가면 홍대거리, 시청, 광화문광장 이런 곳들로 '놀러' 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어느덧 시위를 하러 그곳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거의 5달 동안 지내다보니 세월호 진상규명 행동은 '당위'로 변했습니다.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과 더불어 6·10 청와대 만인대회, '10만의 동행 5일의 약속'(9월 첫 주 수업을 반납하고 거리로 나와 시민들을 만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동안 스스로도 많이 변했습니다.
처음 4월 29일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에 참여했을 때 감정소모가 심했습니다. 침묵행진을 다녀온 밤이면 항상 집회 현장의 모습이 꿈에 나왔으니까요. 점점 시간이 갈수록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쳐갔습니다.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을 하다 5월 18일, 6월 10일 경찰서 유치장에도 들어갔다 나왔습니다. 그때 건강도 많이 안 좋아졌습니다.
시민을 기만하는 정치... 이제 말 아닌 행동으로 보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