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협조 필요" 신뢰 잃은 한국은행... 여야 '난타전'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 금리·물가·독립성·통계 해석까지 논란

등록 2014.10.07 20:27수정 2014.10.07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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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7일 한국은행에서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7일 한국은행에서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권우성

"한국은행의 독립성엔 정부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상대방 기구에 대한 존중이 있어야 독립성이 확보될 수 있습니다."(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혹독한 신고식이었다. 취임 후 첫 국정감사를 받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앞뒤가 맞지 않는 발언을 하는 등 평소와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그는 한은의 고유 기능인 기준금리 결정과 관련해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외압없이 독립적인 판단을 내리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러나 같은 취지의 다른 질문에는 한은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정부 협조가 필요하다는 식으로 발언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위원들은 7일 열린 한국은행 국정감사에서 가계부채, 금리문제, 금융규제 완화, 물가, 한은 독립성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은의 책임을 묻는 날선 질문들을 쏟아냈다. 이 총재는 일부 위원들의 질의에 대해서는 명쾌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향후 기준금리 운용 방안을 놓고 치열한 기싸움도 벌어졌다. 이날 여당 의원들은 디플레이션 위험성을 언급하면서 이 총재에게 기준금리 추가 인하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반면 야당 의원들은 "금리인하 시 가계부채 우려가 크다"면서 이 총재에게 이와 관련한 적극적인 의견 표명을 요구했다.

"이주열 총재, 한은의 독립성 마셔버리고 있어"

포문은 야당에서 먼저 열었다. 홍종학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오전 질의에서 "이 총재가 한은의 독립성을 '마셔버리고' 있다"고 질타했다.

중앙은행 총재가 경제 상황이나 통화 상태가 아니라 정권 실세인 최경환 경제부총리 눈치를 보고 금리를 결정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 총재는 취임 초기 금리인상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으나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취임한 이후 연이어 금리인하 필요성을 강조하는 발언을 내놓자 지난 8월 기준금리를 0.25%p 인하했다.


홍 의원은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척하면 척' 발언도 언급했다. 최 부총리는 지난달 21일 회의 참석차 방문한 호주 케언즈에서 이 총재와 함께 와인을 마셨다고 소개하면서 "금리의 '금'자 얘기도 안 했지만 '척하면 척'이다"라는 발언을 한 바 있다.

최 부총리는 8월 기준금리 인하 이후에도 공개발언을 통해 계속적으로 금리인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척하면 척' 발언도 사실상 한은의 추가 금리인하를 압박하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홍 의원은 이날 지난 7월과 9월 '기준금리 인하' 소수의견을 낸 정해방 금통위원을 불러 "기획재정부 추천을 받은 정 위원이 총재를 겁박한 것 아니냐"고 몰아붙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정 위원은 "5~7월 기재부 관계자들을 만난 적은 있지만 통화신용정책에 대한 얘긴 나눈적 없다"고 밝혔다.

한은 독립성 관련 질의가 이어지자 이주열 총재는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답했다. 8월에 내렸던 기준금리 인하 결정에 대해서는 "현재 경제와 금융상황을 종합해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여당 위원들은 금리 인상 필요성을 강조했다. 박명재 새누리당 의원은 "최근 일본의 물가상승률이 한국보다 높은데 기준금리는 한국이 더 높다"면서 "통화정책에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적극적이고 과감한 통화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은이 잘못된 통계해석으로 정부 입장에 편승"

최재성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한국은행의 부실한 정책효과 분석에 대해 지적했다. 정부가 지난 8월부터 시행한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책이 가계부채에 상당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통계가 나왔음에도 한은이 정반대의 분석을 내놨다는 것이다.

한은은 지난 9월 발표한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부동산 금융규제를 완화 후) 신용이 높은 고소득자들 위주로 대출이 증가한 점을 감안하면 가계부채가 늘어나서 단기간 내 부실화 될 가능성은 낮다"고 밝혔다.

그러나 최 의원이 이날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8월 1일 이후 늘어난 가계대출의 68%는 상대적으로 부실화 가능성이 높은 중·저소득층 대출이었다.

LTV와 DTI를 완화하면 시중 가계대출이 비은행권에서 은행권으로 이동하면서 가계의 이자 부담이 줄어들 것이라던 금융당국의 예상도 8월 통계에서는 사실과 거리가 먼 것으로 나타났다. 최 의원은 "부동산 금융규제 완화 후 고소득층의 비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은 4000억 원 감소했지만 연 가구 소득 3000만 원 이하의 저소득층 대출은 0%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장담한 것과 달리 규제완화 첫 달에 저소득층 이자부담 경감 효과가 거의 없었다는 얘기다. 그는 "(한은이) 이런 내용을 왜 9월 보고서에 반영하지 않았느냐"고 추궁했다.

최 의원은 "한은이 잘못된 통계 해석으로 정부의 입장에 편승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에 이주열 총재는 "한 달간의 추이만 보기가 그래서(적절치 않아서) 그랬는데 (앞으로는) 유의해서 보겠다"고 답했다.

"23개월째 안 맞는 물가안정목표제... 책임져야"

한은이 운영하는 물가안정목표제와 관련해서는 여야 모두 질타했다. 물가안정이 한은의 존립 근거 중 하나임에도 무성의한 대처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은은 2013~2015년 물가상승률 목표치로 2.5~3.5%를 제시했지만 실제 물가는 23개월째 1%대를 기록하고 있다.

이한구 새누리당 의원은 "물가안정목표제가 어떤 의미인지 한은이 확실히 밝힐 필요가 있다"면서 "필요하다면 (목표치를) 다시 조정해서 발표하라"고 지적했다.

실제 물가가 한은이 정한 목표치 하한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데 한은이 다소 태연한 태도를 보이고 있음을 꼬집은 것이다. 이만우 새누리당 의원은 "한은에서 책임감을 통감하고 물가안정목표 상한선을 없애거나 다른 대안을 검토하라"고 말했다.

박원석 정의당 의원도 "물가안정 목표제가 유효하지 않으면 개선을 하고 그게 아니라면 물가안정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것에 대해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책임을 져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이주열 총재는 "물가 목표에 미달한 데 대해 송구하게 생각하지만 물가 목표에 집착해 통화정책을 할 수는 없다"고 털어놨다. 그는 3년의 목표기간 중간에 물가 목표를 조정하는 식으로 노력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한국은행 #국정감사 #기재위 #이주열 #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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