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국군(맨오른쪽)과 함께 해맑게 웃으며 손을 잡고 뛰는 심윤섭, 양세찬, 오승찬, 이재홍군의 모습.
가족제공
"우리가 손잡고 달린 게 이렇게까지 화제가 될 줄은 몰랐는데... 사실 좀 얼떨떨해요."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왔다며 헐레벌떡 교무실 옆 휴게실로 들어온 아이들. 8일 오후 <오마이뉴스>가 경기 용인 양지면 제일초등학교에서 만난 6학년 2반 심윤섭, 양세찬, 오승찬, 이재홍, 김기국 학생은 모두 최근 쏟아지는 관심에 "놀랐다"고 말했다. 인터넷에서 '감동 운동회' 사진으로 알려진 해당 학생들은 이 일이 왜 이렇게 화제가 되는지 몰라 어리둥절한 눈치였다.
시간은 지난 9월 20일 가을운동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기국(13. 지체장애 6급)군은 연골이 자라지 않는 '연골 무형성증'을 앓고 있는 탓에 운동회 달리기에서 한 번도 1등을 해본 적이 없다. 운동회날 아침, 가족들에게 "(달리기) 안 하면 안 되냐"고 말하기도 했다. '장애물 이어달리기'를 하던 그 날도 친구들 뒤에 뒤처져서 뛰고 있었다.
놀라운 일은 그 때 일어났다. 김군과 경쟁하며 앞서 잘 달리던 친구들이, 갑자기 멈춰 서서는 뒤처진 기국군을 기다려 그의 손을 잡고 나란히 결승선을 통과했기 때문이다. '나홀로 1등'보다 '다함께 1등'을 택한 학생들이 찍힌 이 사진을 보면서 사람들은 "눈물이 났다", "어른인데 오히려 아이들에게서 배웠다"는 등의 댓글을 달았다.
이 날 만나본 기국군의 키는 약 114cm. 또래 친구 옆에 서면 가슴팍이나 어깨 높이로, 통상 초등학생 2학년 정도의 키다. 남보다 키가 작은 김군은 계단을 오르내리기 불편할 뿐 아니라 놀이공원에 가서도 키 제한에 걸려 원하는 놀이기구를 타지 못하기도 했다(관련기사:
운동회 감동 사진 주인공 누나 "가족들 엉엉 울었다"). 운동회날 당시, 김군은 어땠을까.
"맨 처음에 (왜 그러는지) 진짜 몰랐어요 저는. 갑자기 앞에서 재홍이랑 세찬이가 달리기를 멈추길래 '어 얘들이 다리가 아픈가?' 싶었는데 갑자기 얘들이 돌아와 제 손을 잡는 거예요. 마음이 울컥하면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왜냐면 제게 (초등학교) 마지막 운동회인데, 그 동안 한 번도 1등을 해본 적이 없는 저에게 이런 좋은 선물을 주니까…." 김군은 그때를 떠올리며 "(달리면서) '오늘도 졌구나'라고 생각했는데 깜짝 놀랐다"며 "친구들에게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친구들 앞이라 쑥스러운 듯 말끝을 흐렸지만 "고마웠다"는 표현만은 분명히 했다. 목소리도 크고 활달한 김군은 말이 많고 소식도 빨라서 학교에서 '뻐꾹이'란 별명으로 불린다고.
▲ 어른들 울린 감동 운동회. 그물을 지난 아이들이 맨 뒤에 처져있는 기국군을 기다려주는 모습이 보인다. ⓒ 가족제공
"무시했다고 생각할까봐 걱정... 고맙게 여겨줘서 저희도 고마워요"
'꼴찌 없는 운동회'를 위해 다 같이 손을 잡고 달리자는 아이디어는 기국이의 짝꿍이자 반장인 이재홍군에게서 나왔다. "기국이에게 마지막 운동회인데 어떻게 할까"란 선생님의 고민을 듣고 나서 평소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과 머리를 맞댔다고 했다.
혼자 1등을 하고 싶은 욕심은 없었을까. 기국이의 '절친'이자 지난 6년 간 계속 같은 반이었다는 '개그맨' 원섭이는 "에이, 달리기 1등 해봤자 별거 없잖아요"라며 짐짓 너스레를 떨었다. 말라서 '뼈다귀'란 별명이 붙은 승찬이도 "오히려 기국이가 고맙다고 해줘서 저희도 고맙죠"라고 말했다.
"약간 걱정했어요. 저희가 속도를 낮춰서 손을 잡아주면 기국이가 감동받을 수도 있지만, 오히려 자기를 무시했다고 생각해서 화를 낼 수도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승부욕이 많으면 그럴 수도 있잖아요. 근데 감동받았다고 해주니까…." (이재홍군)
놀랄 만큼 어른스럽게 말하던 학생들은 그러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근데 우리 다 1등 했는데 왜 상품 안 줘?"라며 서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수학 공부 하기 싫은데 인터뷰 조금만 더 길게 하면 안 되냐"며 조르거나, "(우리학교) 2학년 애들은 '중2병'에 걸린 것 같아요, 말도 너무 안 듣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체 모르겠어요"라며 불평 아닌 불평을 털어놓기도 했다.
담임선생님인 '왈쌤' 정희옥(54)씨는 "운동회 때 아이들이 손잡고 달리는 걸 보며 아이 어머니도 저도 펑펑 울었다, 그 때 마음이 참…. 말로는 잘 표현을 못 하겠다"며 살짝 울먹거렸다. 정씨는 "교육은 결국 함께 손잡고 같이 걸어가는 것"이라며, "기국이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힘든 일이 많겠지만, 함께 하면 누군가 희망을 준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고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