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센터 감정 노동자 처우개선 캠페인부산 청년유니온 회원들의 콜센터 감정노동자 처우개선 요구 캠페인 활동사진
부산청년유니온
부산시는 2005년부터 고용창출과 도심 상권을 활성화하겠다며 콜센터를 적극 유치했다. 지자체 중 최초로 생산자 서비스업 보조금 지원제도를 마련해 이전 업체당 5억 원까지 재정지원을 하는 등 행정적 재정적 지원을 하고 있다. 부산시의 정책 덕분에 콜센터가 부산으로 많이 이전했다. 이제 부산의 콜센터 종사자들도 1만여 명에 달한다. 하지만 콜센터가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내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콜센터 일을 시작하지만 2년 이상 근무하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 더 괜찮은 곳이 있다면 찾고 싶지 않은 일자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면접날이면 수백 명의 청년들이 콜 센터로 모여든다. 마치 '이런 일자리라도 있는 게 어디냐'며 세상이 우리를 조롱하는 듯하다.
최근 감정노동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감정노동 수당, 진상고객퇴치법, 휴게시간 보장 등 감정노동자들의 처우개선에 대한 사회적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부산시도 콜센터 유치 뿐 아니라 노동자들의 인권과 처우개선에도 책임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부산청년유니온은 '고객님 10분만 쉬어도 될까요?'라는 주제로 9월부터 매주 콜센터 노동자의 근무환경을 개선과 감정노동에 대한 인식전환을 위한 한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콜센터 노동 사례를 모아서 사례집을 발간할 예정이다. 릴레이 인터뷰는 콜센터 노동자의 사례집 발간을 위해 시작됐다. 콜센터 노동자 릴레이 인터뷰 연재를 통해 많은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를 바란다. - 기자 주3년 전 그만둔 직장인데 그녀는 20대에 겪은 비인간적 노동의 고통을 그대로 기억하고 있었다. 인터뷰 과정에도 여러 번 울컥하는 모습을 보였다. 작심한 듯이 메모해온 것들을 풀어내고는 시원해 한다. 그녀도 주변사람들에게 하소연도 해보고 싶었을 테다. 하지만 주변사람들에게 몇번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냉담한 반응에 입을 닫았다고 한다. 우리사회는 아직 감정노동의 푸념을 들어 줄 여유가 없다. '직장생활이 다 그렇지 뭐~' 그녀의 감정노동은 우리에겐 그저 불편한 이야기다.
그녀는 고객들의 말에 배설이라는 표현을 몇 번이나 사용했다. 존중과 배려라고는 손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그들의 말을 종일 듣고 있노라면 그게 꼭 배설물 같이 역겹단다.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반가운 목소리, 이들에게 감정이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콜센터에서 일을 시작하다 그녀가 콜센터 일을 시작한 나이는 27살. 대학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며 일찍 남편과 결혼한 그녀는 좀 더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 공무원 시험공부를 시작한다. 그런데 공부를 시작하자마자 남편 직장에 문제가 생겼다. 월급이 몇달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결혼을 하며 진 빚도 있는데 남편의 월급이 몇달 안 나오자 생계마저 어려워졌다. 가만히 집에서 공부만 할 수 없었다. 알바라도 해보자고 알바천국 사이트를 보던 중 G기업에서 사무직 직원을 구한다는 구인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알바천국 사이트를 보면 항상 메인에 떠있어요. 구인광고를 콜센터 근무라고 안 해요. G업체의 배송관련 사무직이라고 소개해놨죠. G업체에서 구인을 하는 거니까, 일단 대기업이라서 믿음이 갔어요. 상대적으로 나을 거라고 생각했죠. 가기 전까진 배송 관련해서 물건을 구분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콜센터라는 건 면접에 가서 알았어요. 근데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응시를 하러 왔더라구요. 두 시간 단위로 수백 명의 사람들이 면접을 봐요. 1번부터 100번까지는 10시 100번부터 200번까지는 11시 뭐 이런 식이죠. 제 시간이 되어서도 한참을 기다렸어요. 근데 이걸 2주마다 한 대요.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면접을 보러 온다는 거죠. 아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저같이 모르고 오는 사람들인 것 같았어요. 저도 기다리면서 이게 콜센터구나 하고 생각했죠"
경험도 연령도 학벌도 상관이 없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들부터 아줌마들까지 나이도 이력도 다양한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면접을 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면접을 보지만 일을 시작하는 사람은 소수. 그날 그녀와 함께한 수백 명의 면접자 중에서 30여명만이 합격 했다. 이 사람들에겐 4일간 교육만 받아도 하루에 4만 원씩 교육비가 지급된다. 업체에서도 일단 교육을 받고 일할지 말지를 판단하라고 권한다. 첫날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교육을 받으러 온다. 그녀도 호기심 반 기대 반 교육을 들었다. 이튿날이 되자 그 숫자는 절반으로 줄었다. 다음 날엔 또 반으로 줄었다.
교육을 마칠 때는 30명 중에서 4~5명만 남아있었다. 그렇게 2주마다 들어오는 신입들 몇개 기수를 모아 20~30명이 되면 그 사람들을 대상으로 2주 정도 교육을 진행한다. 그 과정에서 또 절반이 그만둔다. 회사가 강요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그만둔다. 조금씩 일을 하면서 콜센터 일이 그리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콜센터에는 교육만을 담당하는 직원들이 따로 있다. 이렇게 2주마다 수십 명의 사람들을 뽑아서 근 한 달 간 교육시키고, 또 다음 기수를 뽑고... 그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 교육팀의 역할이다. 1년 내내 상시적으로 신입사원 채용이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누가 봐도 비효율적인 인력관리다. 이렇게 할 바에야 사람들을 좀 더 뽑아서 노동강도를 낮추고 월급을 높여서 퇴사율을 줄이는 게 더 나은 거 아닌가? G기업이 한심하고 답답해 보였다.
"그런데 그게 아니에요. 홈쇼핑 주문을 하면 주문은 1번, 배송문의는 2번, 3번 이렇게 이어지는데 뒤로 갈수록 전화 받는 사람입장에선 어려운 전화죠. 1번을 누르고 하는 단순 주문 전화는 3시간만 교육받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에요. 그 일을 숙련자, 돈을 많이 줘야하는 사람들에게 시킬 이유가 없죠. 그런 일들을 신입들이 하게 되는 거예요"대기업의 잔인한 효율성을 이해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 그녀가 첫 달에 받은 월급은 97만원, 1년이 지나고 받은 월급은 199만원이다. 단순 주문전화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니 노동자들이 잠시 일하다 나가는 것이 기업 입장에서는 훨씬 효율적이라 하겠다. 그렇게 기업은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하고 있었다.
한 달 교육 후 단순주문전화는 익숙해진다. 그렇게 신입기수가 만들어진 셈이다. 그리곤 팀으로 배정을 받는다. 한 팀은 10~15명 정도로 구성되는데 신입부터 2년차까지 다양하다.
대부분이 여성이니 팀원들과는 쉽게 친해진다. 주말에도 일을 하니 팀원 간에 쉬는 날을 조정한다. 점심을 같이 먹으며 진상고객을 욕하거나 팀장 뒷 담화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푼다. 하지만 딱 그 정도다. 나머진 모두 개인플레이다. 각자 자기자리에서 하루 8시간을 보내고 자신의 실적에 따라서 급여를 받는 탓이다. 뒷 담화를 나누기는 하지만 그 진상고객의 전화를 내가 받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월급이야기"첫 월급을 97만원을 받았구요. 그 후에는 120만원 130만원 140만원 올라가 1년 지나고 199만원까지 받게 됐어요. 저는 좀 잘하는 편이었죠. 199만원까지 받아보고 회사를 그만뒀어요. 기본급 개념은 없고요. 콜 수에 따른 월급 테이블이 있어요. 가로축에는 콜 수, 세로축에는 전화를 얼마나 잘 처리했는지 점수를 매기게 해서 두 축이 만나는 곳에서 월급이 책정되죠. 콜 수를 많이 받을수록, 전화 평가 점수가 높아질수록 월급이 많아져요."고생스럽지만 월급 때문에 하는 일이다. 감정노동에 시달리고 자긍심이 적은 일이니 임금보상심리가 크다. 그래서 가장 민감하다. 경력이 쌓일수록 하루에 처리할 수 있는 콜 수는 늘어난다. 월급테이블에 따르면 매월 월급이 오르기 마련. 하지만 그게 또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게 내버려두질 않는다. 경력이 일정 이상이 되면 단순 주문전화는 아예 배당이 되질 않는다. 처리하기 어려운 전화는 모두 경력자들의 몫이다. 컴퓨터에 창을 몇 개나 띄워 놓고 채팅을 하며 배송과정에 사라진 물건을 찾아내고 전화통화를 할 수 있는 신기를 발휘한다. 어쨌든 그렇게 '콜'수가 늘긴 는다.
전화를 받는 매뉴얼이 있다. 끝말에는 '~요'를 붙이면 안 된다. '~까'로 마무리 해야 한다. '~까'만 너무 하면 이상하니까 중간 중간 '~요'를 붙여야 한다. 고객과 이야기 하면서 한 번씩 웃어야 한다. 뭐 이런 것들이 정해져 있다. 평가 팀에서는 한 달에 두건의 상담전화 녹음 본을 열어서 점수를 매긴다. 얼마나 친절한지, 고객의 질문에 잘 응하는지, 실수는 없는지 등을 점수로 매겨 그달의 급여가 결정된다. 직원들 사이에서는 이게 가장 불만이다. 기준이 애매할뿐더러 운에 따라서 그달의 월급이 확 줄어들기 때문이다.
"왜 그렇잖아요. 전화를 받다보면 최선을 다해 친절하게 했는데 고객이 불만을 가지거나 오해를 살수도 있고, 어떤 전화가 열리느냐, 평가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서 점수가 높아 질수도 낮아 질수도 있으니까 다들 불만이었죠. 평가점수가 낮게 나오면 다들 억울해 해요. 전화 한통을 찝찝하게 받으면 월급 받는 날까지 걱정이 되죠. 혹시나 그 전화가 평가 샘플이 될까봐서요. 이게 제일 큰 불만이자 스트레스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