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28일 낮 12시경 서울역 광장. 가습기살균제 피해 가족들이 모였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오후 2시] 증인과 참고인 심문이 진행되며, 의원들의 추가 질의가 이어졌다. 드디어 가습기살균제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환노위 위원장이 가습기살균제 피해 신규 신청기간을 연장하고, 불용될 처지에 있는 예산을 피해자들을 위해 쓰일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이에 환경부장관은 "관련 전문가와 상의하여 생각해보겠다"는 원론적인 대답만 내놓을 뿐이다. 마음이 또 답답해진다.
가습기살균제 문제가 무엇이던가! 현재 500여 명이 넘는 피해자와 144명의 사망(그중 절반이 유아사망)이 발생한 대한민국 초유의 환경재난 사고가 아니던가. 2000년대 중반부터 이유를 알 수 없는 폐질환으로 수백명이 죽어가고 아파하다가 2011년 8월 정부 발표로 가습기살균제 유해성이 확인된 지 벌써 3년.
그러나 살인제품을 제조한 회사도,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도록 판매한 대형마트도, 또 그것을 관리감독하는 정부도 이 문제를 빠르게 분석하고 피해를 보상하며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을 하지 못했다. 제조사는 아직도 정부의 유해발표를 믿지 못하며 대형로펌 등 뒤에 숨어 소송을 계속하고 있다.
애초에 관리감독을 하지 못한 정부는(당시에는 몰랐다고 백 번 양보해 생각한다고 해도) 가습기살균제의 유해성을 발표하고 모든 제품을 전량 회수할 뿐 그후 담당부서만 '보건복지부→환경부'로 바꾸면서 폭탄 피하기에만 급급했다. 그러다 국회에서 관련 법령(가습기살균제 피해 구제 특별법)을 제정하려고 하자 이제 와서 아주 제한적으로 지원을 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기업에 구상권을 전제로 한 쥐꼬리만한 지원을.
그 사이에 아이를 잃고 아내를 잃고 가족을 잃거나 폐이식 등으로 힘든 생활을 하고 있는 피해자들은 제조사로부터 아무런 사과도 받지 못했다. 정부로부터도 공식적인 사과를 받지 못한 채, 경제적·정신적 어려움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오후 6시] 여러가지 이슈들로 국감장은 여전히 분주하다. 예년에 비해 큰소리는 많이 나지 않았지만, 따질 것은 많아 보인다. 4대강 습지 문제나, 저탄소 차량 지원 문제 등도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지만, 내 눈엔 어린이 용품 유해물질 문제나 생활화학용품 관리체계 문제가 더 들어온다. 작지만 생활 속에서 충분히 조심하고 준비했다면 사랑하는 내 딸도 하늘나라에 가 있진 않을 건데, 하는 부질없는 생각도 해본다.
[오후 9시 반] 벌써 밤이 깊어가고 있다. 간단한 저녁식사 후에도 의원들의 추가질의와 답변들이 계속 오간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의 등급 산정이 올바르냐?"고 질의한다. 피곤한 몸이지만 절로 박수가 나왔다. 현재 피해자들이 지난 3월 1차로 판정받은 4단계는 '①가능성 확실 ②가능성 높음 ③가능성 희박④가능성 없음'이다.
이 판정의 임상학적 기준의 옳고 그름은 차치하고라도 한 가정을, 한 생명을 송두리째 잃어버리거나 고통을 받는 피해자에게 등급을 매겼으니, 그런 줄 알아라라는 식의 행정태도는 참을 수 없다. 그들의 입장에서 우리는 그저 대기업에서 제조하고, 나라에서 허가한 제품을 사서 쓰다가 병에 걸리고 죽음에 이른 '재수없는 국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재수없음을 몇 개의 등급으로 나눠 일괄적으로 재단하는 이 모양새가 너무도 비상식적으로 느껴지는 밤이다.
[오후 10시] 국회에서 걸어나오며 하늘을 바라본다. '아빠, 오늘도 수고했어요'라고 말하는 큰딸아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좁은 회의장에서 웅크리며 한 마디라도 놓치지 않고 들으려고 힘들었던 나에게 위안이 된다. 오늘 하루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최선을 다했던 그대들. 다른 건 다 몰라도 그 최선이 가습기살균제문제를 가장 상식적인 선에서 해결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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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보건시민센터는 '환경이 아프면 몸도 아프다'라고 문제제기하고 '환경이 건강해야 몸도 건강하다'라고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환경문제 해결의 기준인 '오염자부담원칙'과 '사전예방원칙'을 기조로 특히 피해자운동을 강조합니다. 생태적 감수성과 건강의 눈으로 환경문제를 보는 사회, 공해산업을 이웃에 떠넘기지 않는 건강한 아시아 시민사회를 만들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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