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총학생회, 통합진보당 경선비리 규탄 성명발표고대공감대 총학생회는 비운동권을 표방하면서도 사회 문제에도 목소리를 냈다. 특히 통합진보당 부정경선, 국정원 대선 개입 등 '선거' 이슈에 적극 대응했다. 사진은 지난 2012년 5월 16일, 제45대 고려대학교 총학생회가 통합진보당 경선비리 비판 기자회견 모습. 사진의 오른쪽 두번째가 이번 부정선거에 연루된 박종찬씨다.
연합뉴스
대의원은 게임하고, 징계 대상자는 불참...전학대회는 학생총회를 제외한, 학생 사회에서 가장 높은 권한을 가지는 의결 기구다. 학내 모든 자치 단위의 장들과 간부들이 소속되어 있으며, 정기 회의는 1년에 단 두 번뿐이다. 임시로 전학대회를 열어야 할 정도로 이번 사안이 중대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내가 목격한 전학대회의 모습은 지극히 실망스러웠다. 자리에 도착하니 대의원 자격을 갖춘 97명 중 상당수가 자리에 오지 않아 1/2 정족수를 채우지 못했다. 학내에서 부정선거가 일어났는데도 출석률이 저조했다. 때문에 개회는 늦춰졌고, 예정 시각부터 30분이나 지나서야 겨우 열렸다. 부정 선거로 인해 총학생회장단 탄핵 안건을 심의하는 임시 전학대회가 맞나 싶었다.
심지어 내가 소속된 단과대학의 학생회장과 부학생회장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안건이 발의되는 중임에도 이어폰을 꽂은 채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는 대의원까지 있었다. 말하는 학우 역시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60여 명이 모인 자리인 것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일이었다. 정갈하게 자신의 의견을 정리해서 말하는 참관인이 있었는가 하면, 기존의 의견을 밀어붙이기만 하는 대의원도 있었다.
더 놀라운 점은 징계 대상자들의 무단 불참이었다. 내부고발자 신강산씨를 제외하면 아무도 전학대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들의 휴대전화도 모두 전원이 꺼져 있었다. "숨거나 피하지 않겠다"던 제45대 총학생회장도, 부정 선거의 핵심에 서 있는 현 47대 총학생회장과 부학생회장도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다.
현재 군 복무 중인 황순영 46대 총학생회장을 제외한 나머지 징계 대상자들 모두 전학대회 불참 사유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지난 2일, 징계대상자들은 중운위에 출석하여 추후 조사에 적극 협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이들은 학교 후문과 재학생 커뮤니티에 사과문도 올렸다. 이후 반성한다는 듯이 말만 해놓고 정작 책임져야할 자리에 나오지 않은 것이다.
부정 선거와 관련한 징계 대상자 8명 중 제47대 총학생회장 최종운과 부총학생회장 이나영은 지난 7일 '깜짝' 자퇴신청을 한 상태다. 이들의 자퇴신청 소식이 알려지자 일각에서는 동정 여론도 일었다. 그러나 "후회와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반성하고 살겠습니다"라던 이들은 핸드폰을 꺼둔 채 전학대회 자리에 나서지 않았다. 이들의 자퇴 수속이 수리되면 고려대학교 학생이 아니게 되므로 징계 대상자에서도 제외된다. 후에 재입학도 가능하다.
주요 징계 대상자들의 무단 불참에 분노하는 대의원들이 보였다. 사과문 게시 시간과 장소가 적절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일었다. 어떻게 봐도, 징계 대상자들에게서 진심 어린 반성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들에게 과연 변명의 여지가 있을까?
기존 신강산씨에 의해 제기된 부정 선거 관련 의혹은 총 다섯 가지였다. ▲ 2012년 유인물 디자인 관련 시안 제작 관련 의혹 ▲ 2013년 메신저를 통한 선거 중립 의무 위반 ▲ 2013년 유인물 부수 관련 의혹 ▲ 2013년 투표 독려 위반 관련 의혹 ▲ 졸업 앨범 리베이트 관련 의혹 등이다.
이 중 첫째, 유인물 디자인 시안 제작 의혹은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기에 안건에서 배제됐다. 다섯째, 졸업 앨범 리베이트 의혹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중운위에 의해 보고되어 논의에서 제외됐다. 그러나 여전히 꺼림칙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신강산을 제외한 징계 대상 본인들은 불참한 가운데 탄핵안 및 징계안의 의결이 이뤄졌다. 황순영, 박종찬, 정연기 3인에 대한 제명안이 통과됐으며, 신강산은 선거권 및 피선거권의 박탈, 신유정에 대해서는 공개 경고와 사과문 게재 안건이 통과됐다. 비록 자퇴를 신청했지만, 최종운과 이나영의 총학생회장단에 대한 탄핵 총투표 부의안도 가결됐다.
그러나 최종운과 이나영의 자퇴가 수리되면, 학생회칙상 이들 탄핵은 자동으로 불가능하다. 이와 관련하여 중운위는, 학교 측에 자퇴 수리를 늦춰달라는 요청을 보내어 탄핵이 이뤄진 후에 자퇴를 수리하게 하는 계획 등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유일하게 출석한 징계 대상자 신강산의 태도는 또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처음에 순수한 내부고발자이자 정의의 사도인 것 같았던 그는, 이후 과정에서 차기 총학생회장 자리를 두고 '거래'를 시도했음을 실토했다. (관련 기사 :
신강산 "부정선거 폭로, 학생회장 후보 됐다면 안했다") 그러나 이날 전학대회 자리에서 그는 다시 자신의 발언을 번복했다.
그는 "부정선거가 있었던 사실에 대한 논의와, 앞으로의 출마에 대한 논의는 별개로 진행했다"고 입을 열었다. 그는 이어 "만약 선거에 나가는 것이 성립되었다면, 100% 고발했다고는 차마 말을 못하겠다"며 "다만 두 사안은 명백히 분리되어 진행했다"고 주장했다. 전학대회에 참여하여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는 태도를 보였지만, 총학 출마 관련한 발언을 거듭 번복하는 모습은 신뢰를 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