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된 고려대 학생회... 학생 사회 몰락을 봤다

[후기] 총학생회장단 탄핵 논의한 전학대회... 학생회는 다시 설 수 있을까

등록 2014.11.12 19:12수정 2014.11.15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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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오후 1시, 고려대학교 안암캠퍼스 4·18 기념관 대강당으로 향했다. 47대 중앙운영위원회(아래 중운위)가 주관한 임시 전체 학생 대표자 회의(아래 전학대회)를 보기 위해서였다. 이번 전학대회는 사상 초유의 총학생회 부정선거 관계자에 대한 징계안과 현 총학생회장단 탄핵안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전학대회 대의원 자격은 없었지만, 평소 관심이 많았던 한 '학우'의 자격으로 참관하러 나섰다.

지난 2013년, 제47대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단 선거 과정에서 발생한 부정이 내부고발자에 의해 폭로됐다. (관련 기사 : 고려대 총학 선거 2주 앞두고... '부정선거' 내부고발)

이날 징계에 대해 논의하는 관계자는 현 총학생회장단 2명을 제외하면 황순영, 정우진, 박종찬, 정연기, 신강산, 신유정 등 6명이었다. 총학생회장을 포함해 모두 학생 사회에 나름의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라 일반 학생들의 충격은 더욱 컸다. 특히나 '고대공감대' 총학생회는 지난 통합진보당 부정경선 사건부터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까지 비판의 목소리를 앞장서서 냈던 이들이었다.

고대 총학생회, 통합진보당 경선비리 규탄 성명발표 고대공감대 총학생회는 비운동권을 표방하면서도 사회 문제에도 목소리를 냈다. 특히 통합진보당 부정경선, 국정원 대선 개입 등 '선거' 이슈에 적극 대응했다. 사진은 지난 2012년 5월 16일, 제45대 고려대학교 총학생회가 통합진보당 경선비리 비판 기자회견 모습. 사진의 오른쪽 두번째가 이번 부정선거에 연루된 박종찬씨다.
고대 총학생회, 통합진보당 경선비리 규탄 성명발표고대공감대 총학생회는 비운동권을 표방하면서도 사회 문제에도 목소리를 냈다. 특히 통합진보당 부정경선, 국정원 대선 개입 등 '선거' 이슈에 적극 대응했다. 사진은 지난 2012년 5월 16일, 제45대 고려대학교 총학생회가 통합진보당 경선비리 비판 기자회견 모습. 사진의 오른쪽 두번째가 이번 부정선거에 연루된 박종찬씨다.연합뉴스

대의원은 게임하고, 징계 대상자는 불참...

전학대회는 학생총회를 제외한, 학생 사회에서 가장 높은 권한을 가지는 의결 기구다. 학내 모든 자치 단위의 장들과 간부들이 소속되어 있으며, 정기 회의는 1년에 단 두 번뿐이다. 임시로 전학대회를 열어야 할 정도로 이번 사안이 중대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내가 목격한 전학대회의 모습은 지극히 실망스러웠다. 자리에 도착하니 대의원 자격을 갖춘 97명 중 상당수가 자리에 오지 않아 1/2 정족수를 채우지 못했다. 학내에서 부정선거가 일어났는데도 출석률이 저조했다. 때문에 개회는 늦춰졌고, 예정 시각부터 30분이나 지나서야 겨우 열렸다. 부정 선거로 인해 총학생회장단 탄핵 안건을 심의하는 임시 전학대회가 맞나 싶었다.

심지어 내가 소속된 단과대학의 학생회장과 부학생회장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안건이 발의되는 중임에도 이어폰을 꽂은 채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는 대의원까지 있었다. 말하는 학우 역시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60여 명이 모인 자리인 것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일이었다. 정갈하게 자신의 의견을 정리해서 말하는 참관인이 있었는가 하면, 기존의 의견을 밀어붙이기만 하는 대의원도 있었다.


더 놀라운 점은 징계 대상자들의 무단 불참이었다. 내부고발자 신강산씨를 제외하면 아무도 전학대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들의 휴대전화도 모두 전원이 꺼져 있었다. "숨거나 피하지 않겠다"던 제45대 총학생회장도, 부정 선거의 핵심에 서 있는 현 47대 총학생회장과 부학생회장도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다.

현재 군 복무 중인 황순영 46대 총학생회장을 제외한 나머지 징계 대상자들 모두 전학대회 불참 사유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지난 2일, 징계대상자들은 중운위에 출석하여 추후 조사에 적극 협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이들은 학교 후문과 재학생 커뮤니티에 사과문도 올렸다. 이후 반성한다는 듯이 말만 해놓고 정작 책임져야할 자리에 나오지 않은 것이다.


부정 선거와 관련한 징계 대상자 8명 중 제47대 총학생회장 최종운과 부총학생회장 이나영은 지난 7일 '깜짝' 자퇴신청을 한 상태다. 이들의 자퇴신청 소식이 알려지자 일각에서는 동정 여론도 일었다. 그러나 "후회와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반성하고 살겠습니다"라던 이들은 핸드폰을 꺼둔 채 전학대회 자리에 나서지 않았다. 이들의 자퇴 수속이 수리되면 고려대학교 학생이 아니게 되므로 징계 대상자에서도 제외된다. 후에 재입학도 가능하다.

주요 징계 대상자들의 무단 불참에 분노하는 대의원들이 보였다. 사과문 게시 시간과 장소가 적절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일었다. 어떻게 봐도, 징계 대상자들에게서 진심 어린 반성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들에게 과연 변명의 여지가 있을까?

기존 신강산씨에 의해 제기된 부정 선거 관련 의혹은 총 다섯 가지였다. ▲ 2012년 유인물 디자인 관련 시안 제작 관련 의혹 ▲ 2013년 메신저를 통한 선거 중립 의무 위반 ▲ 2013년 유인물 부수 관련 의혹 ▲ 2013년 투표 독려 위반 관련 의혹 ▲ 졸업 앨범 리베이트 관련 의혹 등이다.

이 중 첫째, 유인물 디자인 시안 제작 의혹은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기에 안건에서 배제됐다. 다섯째, 졸업 앨범 리베이트 의혹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중운위에 의해 보고되어 논의에서 제외됐다. 그러나 여전히 꺼림칙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신강산을 제외한 징계 대상 본인들은 불참한 가운데 탄핵안 및 징계안의 의결이 이뤄졌다. 황순영, 박종찬, 정연기 3인에 대한 제명안이 통과됐으며, 신강산은 선거권 및 피선거권의 박탈, 신유정에 대해서는 공개 경고와 사과문 게재 안건이 통과됐다. 비록 자퇴를 신청했지만, 최종운과 이나영의 총학생회장단에 대한 탄핵 총투표 부의안도 가결됐다.

그러나 최종운과 이나영의 자퇴가 수리되면, 학생회칙상 이들 탄핵은 자동으로 불가능하다. 이와 관련하여 중운위는, 학교 측에 자퇴 수리를 늦춰달라는 요청을 보내어 탄핵이 이뤄진 후에 자퇴를 수리하게 하는 계획 등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유일하게 출석한 징계 대상자 신강산의 태도는 또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처음에 순수한 내부고발자이자 정의의 사도인 것 같았던 그는, 이후 과정에서 차기 총학생회장 자리를 두고 '거래'를 시도했음을 실토했다. (관련 기사 : 신강산 "부정선거 폭로, 학생회장 후보 됐다면 안했다") 그러나 이날 전학대회 자리에서 그는 다시 자신의 발언을 번복했다.

그는 "부정선거가 있었던 사실에 대한 논의와, 앞으로의 출마에 대한 논의는 별개로 진행했다"고 입을 열었다. 그는 이어 "만약 선거에 나가는 것이 성립되었다면, 100% 고발했다고는 차마 말을 못하겠다"며 "다만 두 사안은 명백히 분리되어 진행했다"고 주장했다. 전학대회에 참여하여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는 태도를 보였지만, 총학 출마 관련한 발언을 거듭 번복하는 모습은 신뢰를 주지 못했다.

<표1> <표1> 각 징계 대상자 별 직책 및 징계 사유/방식
<표1><표1> 각 징계 대상자 별 직책 및 징계 사유/방식송민근

대학 학생 사회... 신뢰 되찾을 수 있을까

한편 박종찬씨의 제명과 관련하여, 고려대학교 온라인 커뮤니티 고파스에 대한 논의도 함께 진행됐다. 이 사이트는 박종찬 개인이 지난 2008년 부총학생회장 재임 기간에 만든 사이트이다. 제작 당시에는 학생회비가 투여되었으나, 이후에는 학생회 지원 없이 박종찬 개인에 의해 운영됐다.

그러나 고파스가 실질적으로 공론장의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명 시에 발생하는(학생 회칙 제 5조와 69조에 근거) 자치활동 및 언론활동 등에 대한 제한이 고파스를 운영하는 박종찬에게도 적용 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이와 관련하여 전학대회가 고파스 환수를 주장하는 것으로 잘못 알려졌으나 실제 전학대회에서 고파스의 환수에 찬성하는 이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이는 학보사 <고대신문>의 보도가 와전된 결과였다. 차후 전학대회에서 고파스에 대한 논의를 하는 것으로 잠정적 합의가 내려졌다.

이 과정에서 일부 대의원들은 학생대표로 자격미달인 모습을 보여줬다. 탄핵 논의가 지나고 나자 몇몇 대의원들이 다시 자리를 떠났다. 아직 논의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리를 지키는 대의원이 정족수 이하로 줄어들 위기에 처했다. 이에 대의원을 향해 논의가 마무리될 때까지 자리를 지켜달라고 의장이 '읍소'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다행히 폐회 때까지 간신히 정족수는 유지됐다.

지금의 중운위는 전원이 사퇴한 제47대 총학생회로부터 금전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안을 인수인계 받지 못했다. 차후 인계를 전 기획국장 등에게 구두로만 약속 받은 상태다. 추가 조사가 필요한 사안은 정보보호대학과 연계하여 진행할 계획이며, 진상규명위원회를 별도로 꾸리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앞으로의 조사는 중운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진상규명위원회를 중심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전반적인 논의는 조심스러웠지만 숨을 고르며 맞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임시 의장을 맡은 사범대 회장의 미숙을 '잘못'이라 말하기는 어려웠다. 최악의 상황을 맞이한 중운위원들의 노력하는 모습이 눈물겨웠다. 처참하게 무너진 학생 사회를 바로세우기 위해 바둥거리는 모습이었다.

이 사태를 단순히 몇몇 전·현직 학생회장들의 비리로만 볼 수 있을까. 그저 고려대학교라는 하나의 대학만 겪는 문제일까. 고대 학생 사회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대한민국 대학 사회가, 학생 자치 전체가 몰락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기성 정치를 닮아버리고 비판정신과 저항정신을 잃어버린 학생회를 봤다. 가라앉는 학생 사회를 어떻게든 띄우려고 고생하는 소수 학생과 이를 방관하는 절대 다수의 학생이 있었다.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고 학생 자치를 다시 바로잡을 수 있을까. 그날이 오기는 올까.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11일 오후, 학생 사회 신뢰를 재구축하겠다며 "47대 총학생회장단 당선 무효"를 탄핵안과 동시에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논란은 있지만 시도는 해볼 수 있는 조치라고 생각한다. 고대 학생 사회의 내홍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어쩌면 이번 사태가 마무리되는 모양새가, 대한민국 학생 사회의 자생력을 시험해볼 수 있는 리트머스지가 되지 않을까. 부디 온전히 끝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고려대학교 #총학생회 #선거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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