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수의 딜레마'와 세월호사건의 공동정범

세월호 정국, 야당이 여당보다 더 욕먹는 이유

등록 2014.11.12 17:57수정 2014.11.12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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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 당연히 자백을 안 하죠.
혜성 : 자백을 하면 무죄로 나올 수 있는데두요? - 중략 -
동생 : 뭐? 형도 나처럼 증거가 없잖아. 근데 왜 유죄가 되지?
혜성 : 형은 증거가 있죠. 바로 당신. 당신이 한 자백이 형에게는 보강증거가 되는 거에요. 즉 형이 부인을 해도 당신이 한 자백 때문에 증거가 생기는 셈이죠. 이 경우, 형은 유죄입니다. 신기하죠? 자백을 하면 무죄, 부인하면 유죄가 된다는 게.

대화를 나누는 주인공 혜성( 이보영 분)의 직업은 변호사이고, 이 장면은 지난 2013년 SBS에서 방영되었던 <너의 목소리가 들려>라는 드라마의 한토막이다.

배경이 된 사건의 개요는 대충 이렇다. 일란성 쌍둥이 형제가 함께 편의점을 털다가, 한 사람이 편의점 주인을 칼로 살해했다. 그런데 사건의 진상이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문제는 CCTV 화면이 버젓이 증거로 남아있었지만, 누가 진범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쌍둥이라 거의 똑같이 생긴 외모 때문이다. 범행의 고의성에 있어서도 계획적이었는지, 아니면 우발적이었는지도 판단하기 어렵다. 따라서 엄밀히 따지면 한명은 강도·살인, 또 다른 한명은 특수절도로 기소를 해야 하지만, 검사는 공동정범( 共同正犯 )으로 두 형제를 기소했다.

여기에서 '공동정범'이란 2인 이상의 범죄혐의자가 공동으로 범죄를 함께 저질렀을 때, 범행 참여의 정도를 불문하고 전원을 정범자(교사범이나 종범자가 아닌 주범)로서 처벌한다는 뜻이다(형법 제30조). 공동정범은 하나의 범죄를 각자가 분담하여 저질렀지만, 각자는 그 전체에 대해 형사책임을 함께 진다는 점이 특징이다.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한 장면.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한 장면.SBS

혜성은 억울한 피해자가 생겨서는 안 된다며 두 사람을 공동정범으로 몰아가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라는 주장했고, 판사 역시 이 주장에 동의하며 혜성의 손을 들어준다.

극중에서 장혜성 변호사는 쌍둥이 중 동생 쪽의 변론을 맡았다. 무죄를 확신하고 이렇게 변론에서 1차적인 승리를 거두었지만, 두 형제가 계획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게 사실이라는 점을 뒤늦게 알게 된다.


공동정범이라는 검사의 판단이 옳았던 것이다.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느낀 나머지, 검사와 의논 끝에 '죄수의 딜레마' 전략을 구사하기로 결정한다. 결국, 범인들이 서로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법정에서 격렬하게 다투게 만들었고, 마침내 범인들의 자백과 더불어 사건의 진상을 밝혀냈다는 스토리다.

드라마 속 '죄수의 딜레마'의 이론적 배경


'죄수'라는 단어가 들어가고, 실제 범죄수사나 재판과정에도 쓰이는 기법이기 때문에 법률용어로만 이해하기 쉽지만, 원래 '죄수의 딜레마'는 법률용어가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 국방성은 군사력 증강과 안보를 위한 과학적 연구를 수행하기 위하여 '랜드( RAND Corporation )' 연구소를 설립했는데, 1950년 이 연구소 소속 경제학자였던 메릴 플로드( Merrill Flood)와 멜빈 드레셔( Melvin Dresher )의 공동연구에서 '죄수의 딜레마' 이론이 처음으로 시작됐다.

같은 해, 당시 랜드 연구소의 고문이자 프린스턴대의 수학교수인 알버트 터커( Albert Tucker )가 스탠퍼드대 심리학자들로부터 게임이론에 대해 강연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당시, 게임이론에 생소한 심리학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두 연구자의 이론에 기초하여 터커 교수가 제시했던 사례가 바로 유죄 인정에 대한 협상을 벌이는 두 죄수의 상황이었다. 때문에 이를 '죄수의 딜레마( prisoner's dilemma )'라고 부르기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게임 이론( game theory )'이란 현실 세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하고 복잡한 상황을 단순화시켜, 둘 이상의 개인이나 집단 사이에 어떤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게 되는지를 연구하는 방법론을 말한다. 전략적인 의사 결정을 내릴 때 가장 효과적인 선택이 무엇인지 연구하는데 매우 유용한 분석틀중의 하나이다.

세월호 특별법 합의 이후 폭락한 야당의 지지율

한국갤럽의 여론조사 기준으로 26%대였던 새정치연합의 지지율이 갑자기 21%로 내려앉으며 새누리당 지지율의 절반 이하로 떨어지기 시작한 것은 8월 첫째 주 부터이다. 박영선 전 원내대표가 새누리당과 더불어 세월호 특별법의 1차 합의안을 전격적으로 발표했던 시점과 정확히 일치하는 시점이다.

  11월 7일 현재 주요정당 지지율변화.
11월 7일 현재 주요정당 지지율변화.한국갤럽

유가족들이 시종일관 요구했고, 박영선 의원 스스로도 적극적으로 주장했던 수사권과 기소권이 아예 배제된 합의안이었기 때문에 '야합'이라는 비난이 들끓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그대로 반영되어 야당의 지지율 폭락현상이 벌어졌다.

그 이후, 두 차례 더 비슷한 과정을 거쳐 마침내 세월호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었지만, 야당은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다. 아니, 오히려 20% 초반대의 지지율을 그대로 유지하며 새누리당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지지율 고착현상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손해만 보았다는 게 옳은 판단일 것이다.

여야의 역할 수행 평가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런 사실을 보다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새정치연합의 야당 역할 수행평가에서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율은 무려 80%에 이른다. 전통적으로 야당의 텃밭이라고 여겨지는 광주·전라도 지역의 부정적 응답율 역시 81%이다. 한마디로, 야당노릇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새정치연합 야당 역할 수행평가 여론조사결과
새정치연합 야당 역할 수행평가 여론조사결과한국갤럽

'장외투쟁 반대, 국회복귀'를 외쳤던 새정치연합 중도파의 문제

11월 4일에 발표된 한국갤럽의 2014년 국정감사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는 새정치연합 내부의 소위 '중도파'에 대한 중요한 판단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지난 8월 26일, 김영환, 황주홍, 이찬열 의원 등 새정치연합 중도파 의원 15명은 '국회 밖으로 나가선 안 된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당 소속의원들에게 돌리며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야당의 장외투쟁에 찬물을 끼얹은 바 있고, 야당은 결국 아무런 소득도 없이 국회로 복귀하고 말았다. 그러나 국회 복귀 이후 진행되었던 국정감사에서, 중도파 의원들이 보여준 활약은 과연 무엇이었는가?

정부의 잘못된 국정운영에 대해 제대로 감시·비판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언론에 부각된 인물 가운데 중도파를 자처하는 의원들 이름은 거의 거론된 바가 없다. 대체 무엇을 보여주겠다고 '국회복귀'를 그토록 소리 높여 주장했던 것일까? 만약 장외투쟁이 야당 지지율 하락의 근본 원인이고, 국회복귀가 진정 옳은 결정이었다면, 복귀 이후 야당의 지지율은 올라가야 정상이 아닌가?

  국정감사 성과, 여야 역할 평가 여론조사 결과.
국정감사 성과, 여야 역할 평가 여론조사 결과.한국갤럽

그러나 국정감사 성과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는, 성과가 별로+전혀 없었다가 59%이고, 성과가 있었다는 응답은 불과 13%에 불과했다. 야당 지지층이라 할 수 있는 대통령 직무평가에 대한 부정평가자 가운데도 무려 67%가 성과가 없었다고 응답했다. 게다가 '야당이 더 잘함'이 14%인 반면, '여당이 더 잘함'은 19%로, 오히려 야당보다 여당이 국정감사활동을 더 잘했다는 응답이 많았다.

결국 새정치연합 중도파의 '국회복귀' 주장은 야당 지지율 상승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한, 연목구어(緣木求魚)였던 셈이다.

'세월호 사건' 진상규명 실패의 공동정범은?

세월호 참사는 '사고'가 아니라, '사건'이다. 어떻게 바라보고 규정하느냐에 따라 문제의 본질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침몰의 원인은 물론 청해진해운의 탐욕에 의한 것이라고 치더라도, 300명이 넘는 아까운 생명을 단 한명도 구하지 못한 것은 유례를 찾기 힘든 그야말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은 6·25때 실종된 미군병사의 유해문제까지 정부가 앞장서서 해결을 한다는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대한민국 정부는 과연 무엇을 했는가?

수사권과 기소권이 배제된 세월호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던 순간, 그리고 아직까지 가족들 품에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들이 있음에도 '인양중단'을 결정해야만 했던 바로 그 순간, 세월호 유족들은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

다시 죄수의 딜레마로 돌아가 보면, 새정치연합은 설령 부분적으로 양보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장했어야 했다. 어떤 경우에도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굴욕적인 양보 이후의 지지율변화가 이를 증명한다.

만약 끝끝내 사건의 실체적인 진상규명마저 실패하고 만다면, 정부 여당은 물론이거니와 야당인 새정치연합 역시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실정법으로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역사의 법정'앞에 새정치연합은 '공동정범'의 위치로 스스로를 추락시켰다.

그들은 투쟁도, 협상도, 국회활동도, 혁신도 제대로 못할 뿐만 아니라 야당이기를 스스로 포기하기까지 했다. 지금 그들 내부에서 지역위원장을 선출하고, 차기 전당대회에서 당권과 대권을 분리하네 마네 설전을 벌이고 있지만, 관심 있게 지켜보는 국민들은 별로 없다. 그저 '그들만의 리그'일 뿐이다.

그래서 "새정치연합은 정치 자영업자들의 담합 정당"이라는 문재인 의원의 고백은 오히려 솔직한 편이다. 다음 번 총선 때, 야당 지지자들이 여전히 알아서 찍어줄 것이라는 생각을 아직도 갖고 있다면 그건 오만이자 야무진 착각일 뿐이다. 6·4 지방선거에서 호남지역의 무소속 돌풍과 7·30 재보선에서 곡성·순천의 선거결과는, 유권자들이 엘로우카드가 아니라 레드카드를 뽑아들었다는 의미다.

지금 여당보다 야당이 더 욕을 먹는 이 기막힌 현실은, 전적으로 국민세금만 축내는 무능한 정치자영업자들과 '무늬만 야당'인 중도파들의 야당포기 전략 때문이다. 헐고 새로 짓던지, 아니면 분골쇄신 새로 태어나지 않을 거라면, 유권자들 지지는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또 다시 유권자들이 속아줄 거라고 기대하는 건, 참으로 후안무치한 일일뿐이다.
#죄수의 딜레마 #세월호사건 공동정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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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경기도의회 의원 (전) 제19대 대선 문재인 후보 국토균형발전 특별보좌관 (전) 제 19대 대선 더불어민주당 호남신성장동력 특별위원회 위원장 (현)호남신성장 포럼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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