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문>에서 방영된 과거시험 풍경.
SBS
양반 특권층만 과거에 응시한 게 아니라는 점은 <경국대전> 예전(禮典) 규정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예전은 <경국대전>의 일부로서 과거시험·학교·제사·외교 등에 관한 규정집이다. 아래에서 괄호로 묶인 부분은 해당 조문의 주석으로 딸린 규정이다.
"문과시험은 통훈대부 이하(무과도 동일), 생원시험·진사시험은 통덕랑 이하만 볼 수 있다(수령은 생원시나 진사시에 응시할 수 없다)." 통덕랑이나 통훈대부 같은 것은 군대 식으로 말하면 중위·대위 등의 계급과 같은 것이고, 소대장·중대장 등의 보직과는 다르다.
위 규정에 따르면, 제1단계 시험인 소과(小科, 생원시+진사시)에는 정5품 통덕랑 이하이거나 지방 수령이 아닌 사람이 응시할 수 있었다. 두 가지 요건에 해당되지 않으면 누구나 다 생원이나 진사가 되기 위해 시험을 볼 수 있는 셈이다. 물론 노비는 제외되었다. 따라서 노비가 아닌 이상은 누구나 다 응시자격이 있었다.
소과 합격자가 참여하는 제2단계 시험인 대과(大科)에는 정3품 통훈대부 이하만 응시할 수 있었다. 소과를 통과한 뒤에 어떤 이유로 통훈대부보다 높은 관직에 특채됐다면 대과 응시자격을 상실한 것이다.
과거시험, 노비 빼고 누구나 응시 가능일정한 품계 이상의 관리들이 소과나 대과에 응시할 수 없도록 한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과거시험을 통과하지 않고 특채된 현직 관리' 혹은 '품계가 낮은 현직 관리'들이 더 좋은 관직을 받고자 시험공부에 전념하게 되면 직무 집행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둘째, 현직 관리들이 과거에 급제하면 그만큼 신진 인물의 등용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응시자격을 갖추었더라도 시험을 볼 수 없는 경우가 있었다. 결격 사유에 관한 규정 때문이다. <경국대전> 예전에 아래와 같은 규정이 있다.
"죄를 지어 영구적으로 임용할 수 없게 된 사람, 부정부패를 범한 관리의 아들, 재혼하거나 품행을 상실한 부녀자의 아들과 손자, 서얼의 자손인 사람은 문과시험과 생원시·진사시를 볼 수 없다."'죄를 지어 영구적으로 임용할 수 없게 된 사람'은 중범죄를 지었다는 이유로 관직 취임 자격을 박탈당하는 재판을 받은 사람을 뜻한다. 또 '서얼 자손'이란 표현에 관해서는 '여기서 말하는 자손은 아들과 손자뿐만 아니라 자자손손을 가리킨다'는 1555년의 유권 해석이 있다. 하지만, 서얼에 대한 이런 제한은 훗날 점진적으로 완화되었다.
이런 결격 사유만 없으면, 응시자격을 갖춘 양인은 원칙상 누구나 과거에 응시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비밀의 문>에서 사도세자가 보여준 정치적 파란은 실상은 불필요한 것이었다. 사도세자가 태어나기 수백 년 전부터 일반 양인들도 응시 자격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법률 규정상의 이야기다. 법적으로는 노비가 아닌 한 누구나 다 응시할 수 있다지만, 실제로는 시험을 준비할 시간과 경제력이 있는 사람들만 가능했다. 결과적으로는 지역 양반클럽에 가입한 경제력과 지위를 가진 지주나 관료의 자식들만 응시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양반 클럽에 가입하지 못한 사람이 과거에 응시한 사례도 적지 않다. 그 중 하나가 송순(1493~1583년)이다. 전라도 담양 사람인 송순은 이른바 양반이 아니었다. 담양의 양반 클럽에서는 이 집안을 양반 가문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송순의 조상들이 전통적인 담양 토착민이 아닌 남원에서 온 이주민이었기 때문이다. 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거주해야만 양반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송순은 과거시험에 당당히 합격하고 사신으로 명나라에 다녀오기도 했다. 게다가 그는 대사헌(검찰청장)에까지 올랐다.
대사헌이 된 뒤 송순은 담양을 방문해 양반 클럽 회원들에게 성대한 식사를 제공했다. 그러자 담양 양반들은 그의 이름을 양반 명부에 넣어 주었다. 이렇게 해서 송순은 이른바 양반의 범주에 포함되었다. 이는 사회적으로 양반 인정을 받지 못한 사람도 과거에 응시했다는 점과 양반의 범위가 법적으로 규정된 게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양반' 기준 법으로 규정된 것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