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산 도선굴에서 내려다본 구미시가지와 낙동강
박도
만주 이야기
"마, 우리같이 천한 것들은 어딜 가도 마찬가지 아니가? 일본 놈 세상 되어봤자 그 놈들이 설마 사람 잡아먹지는 않겠지."마칠봉은 왠지 살던 고장을 떠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만주에는 땅이 어떻게나 넓은지, 산도 보이지 않는다 하고, 거기가면 양반상놈도 없다고 그러대요."사곡 댁 지말순은 왠지 만주로 가고 싶었다.
"쓸데없는 소리 마라. 우리가 거기 간다고 하루아침에 양반되겠나?"그때 춘옥이가 이불속에서 일어나 아버지에게 하소연했다.
"형식이 도련님이 소꿉놀이 때 지 보고 그랍디다. 나중에 만주에 가서 진짜 신랑각시 되자고 예.""얘, 오를 수 없는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사곡 댁이 깜짝 놀라며 딸을 꾸짖었다. 그러면서도 속으로 그렇게만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람도 있었다.
"내도 이미 도련님한테 약속했어 예." 마칠봉은 그 소리에 눈을 부라리며 호통을 쳤다.
"이 놈의 가시나, 빨리 자!""예."춘옥이는 볼멘소리로 대꾸한 뒤 그 말에 이불을 뒤집어썼다.
안채에서도 허필 내외가, 행랑채에서는 하인 겸 머슴 내외가 만주 이야기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웃 큰집 허발 내외도, 다른 허씨들도, 그 즈음 잠을 이루지 못하고 전혀 알지 못하는 미지의 땅 만주 얘기로 밤 깊은 줄 몰랐다.
사람들은 압록강이란 큰 강만 건너면 신천지 만주 땅인데, 거기에는 빼앗긴 나라를 찾으려는 조선의 젊은 청년들이 몰려들어 홍길동처럼 활약이 대단하다는 둥, 만주 땅은 넓고 기름져서 메밀을 '미친 년 널뛰듯이' 뿌리기만 해도 추수를 한다는 둥, 주로 만주에 대한 희망적인 이야기들이 주를 이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