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를 키우신 어머님며느리의 직장생활을 위해 육아의 빈자리는 어머님이 대신하셨습니다.
김춘미
이렇게 키운 아이들이 조금씩 자라서 스스로 걷게 될 무렵, 작은 아이가 3살되던 해에 두 아이를 데려와 아무도 없는 대전에서 함께 생활했습니다. 놓치기 싫은 직장의 꽃, '승진'때문에 아이들을 온종일 어린이집에 맡기고 저녁에 퇴근해서도 돌봐주는 분에게 맡겼습니다.
한 여자가 일을 하기 위해 생긴 육아의 빈자리를 처음에는 어머님이, 그리고 그 다음에는 어린이집의 선생님과 돌봐주시는 분이 채우셨던 겁니다. 아무 연고도 없는 도시에서 '주말 부부 직장맘'이란 이름으로 그렇게 3년을 생활하고 드디어 승진대상이 되는 해가 되었습니다.
승진 발표가 있던 날, 일년동안 일한 성과와 분위기 그리고 '올해는 내 동기들이 주력인 이 해에 내가 안 되겠어?'라는 생각을 하며 출근했습니다. 하지만 저녁 퇴근 시간 무렵 승진자 명단이 발표되었을 때, 거기엔 제 이름이 없었습니다. 아, 이럴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내 이름이 없다니... 정말 맞는지 명단을 보고 또 봤지만 제 이름 석자는 없었습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함께 하는것이 팀이라 위로주 마시러 가자고 잡는 팀원들께 정말 죄송하지만 다리가 풀려 도저히 술 마시러 갈 수가 없다고 양해를 구하고 나왔습니다. 아이들을 데리러 어린이집으로 가면서도 직장동료의 위로가 잘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너무 속상해 마라, 될 사람은 나중에라도 다 된다" 라는 한 선배의 말이 그때는 야속하게 들리기까지 했습니다. '될 사람인데 왜 지금 안 된 건데요?' 라고 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괜찮은듯 고맙다는 인사하고 나왔는데, 평소에는 단숨에 달려갈 그 길이 천리길이나되는 듯 멀게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참고 참고 참았던 서러움인지 아쉬움인지, 도대체 뭐였는지 모르는 복잡한 심정이 집에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서자마자 터져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도 없는 집에 아이들을 앞세우고 불을 켜고 들어가면서 도대체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그동안 왜 우는 아이들을 떼어놓고 회사로 향했는지 내 자신에게 끝없이 질문을 내놓았습니다.
주책없이 나오는 눈물때문에 곧장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눕고 싶다는 생각만 간절했습니다. 하지만, 당장 아이들의 저녁을 차려줘야 했습니다. 옷을 벗고 부엌으로 들어가 아이들이 먹을만한 것들을 주섬주섬 챙겨와 아이들의 입속으로 넣어주며, '엄마가 힘들어서 오늘 샤워는 쉬자'고 말하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막 쏟아졌습니다. 그러자 큰아이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물었습니다.
"엄마, 왜 그래? 승진 안 돼서 울어?"어린이집이 직장보육이라 아이들 사이에서도 오늘이 무슨 날인지 얘기가 있었나 봅니다. 눈물을 훔치며 아니라고 얘기했지만 아이는 조금뒤에 아빠에게 전화를 하며, "아빠, 엄마 차장 안 되서 운대. 지금 막 울어"라고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아니라고 손사래 치며 '에이, 차라리 동료들이라 술이나 퍼 마시고 올걸' 했다가, 현실은 오로지 믿을 사람이라곤 엄마뿐인 아이들 앞에서 대책없이 술 마시고 쓰러질 수도 없다는 걸 깨닫고 더더욱 슬퍼 밤새도록 펑펑 울었습니다.
바로 재작년 이맘때입니다. 힘든 일도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게 있다고 느낀 일. 매년 이맘때만 되면 '아, 그때... 많이 아팠지!'라고 혼잣말을 하게 만드는 아픈 기억입니다. '직장맘이라도 남편과 함께 살았다면 그날 그렇게 궁상맞게 아이들 앞에서 울고 있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면 지금도 억울하기만 합니다.
승진자 명단에 내 이름이 없을 때, 지금 말하라고 해도 어떻게 하는 게 좋았을지 잘 대답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남들은 모를 아픔을 안고 사는 직장인들, 화이팅입니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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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소중한 이 순간 순간을 열심히 살아가려고 애쓰며 멋지게 늙어가기를 꿈꾸는 직장인 아줌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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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진자 명단에 내 이름이 없어 펑펑 울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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