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객 진중권, 연예인 진중권으로 알던 필자가 미학자 진중권을 알게 된 것은 모 후배 교수가 어느 중남미학 교수 보다 진중권이 아르헨티나 작가 보르헤스를 더 잘 대중에게 소개하고 있다고 하여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를 읽어 보는 데서 비롯되었다.
진중권은 <미학 오디세이> 3권에서 반복해서 보르헤스를 인용하면서 자신의 탈근대 미학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의 탈근대미학을 설명하기 위해 피라네시의 회화를 보여주고 있었지만 그 회화에 정작 살을 붙게 해준 것은 보르헤스의 미학적 사고였다.
한 작가가 장편의 글을 쓰면서 여러 사상가들의 이론을 합산 정리하는 것은 아주 고전적인 글쓰기 방식이라 필자는 진중권의 보르헤스에 대한 애정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2014년에 나온 <이미지 인문학>을 읽으면서 진중권 사고의 중심에 보르헤스가 서 있음에 깜작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우리나라 미학 계에 중진이 되어버린 진중권이 <이미지 인문학> 뒤편 겉장에 "그동안 다양한 주제로 많은 책을 썼지만 그것을 모두 관통하는 사유 전체를 체계화하려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이미지 인문학>은 미학자로 성숙한 진중권의 미학의 핵심이 들어 있다. 신문기사에서 이 작품을 소개하는 글들은 주로 빌렘 플루서 발터 벤야민, 롤랑 바르트 등의 이론이 이 책의 핵심을 이루는 듯 다룬다.
필자는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 3권 때문에 호기심을 갖고 <이미지 인문학> 1장을 펼쳐 보았다. 그는 첫 줄에서 보르헤스의 <원형폐허 Las ruinas circulares>를 인용하며 불에 타죽을 수 없는 인간을 논한다. 보르헤스의 주인공이 불에 안 타죽는 이유는 그가 실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르헤스는 동양 사상의 영향을 받아 인간은 꿈속의 인간처럼 실체가 없다고 생각한다. 우주가 본래 실체가 없다는 보르헤스의 사고는 오늘날 디지털 세상의 미학을 수립하는 데는 좋은 이론적 기반이 될 수 있다.
진중권은 이후 계속 빌렘 플루서, 발터 벤야민을 논하며 사진과 디지털 세계에 대해서 논한다. 그의 <이미지 인문학>1,2 권의 전 작품을 이루는 키워드는 오늘날 디지털 예술의 <언캐니uncanny>함이다. 쉽게 말해 디지털 예술이 왠지 낯설고 깨름직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디지털 예술이 만들어낸 작품이나 공간이 너무 사실 같은데서 오는 <언캐니>함이다.
우리가 장식으로 놓인 조화를 가끔 生花로 착각하다 퍼득 정신을 차릴 때의 섬뜩함, 불쾌함을 우리는 진중권의 <언캐니>라는 표현으로 이해 할 수 있다. 디지털 세상에서는 진짜와 가짜를 구분 할 수가 없다. 즉 우리는 그 세상에서 어느 것이 진짜 현실이고 어느 것이 가상 공간인줄 구분하지 못한다. 진짜 공간과 가상 공간이 인터페이스하는 공간, 그리고 그 공간의 <언캐니>함은 진중권이 <이미지 인문학> 맺음말에서 언급하듯 보르헤스의 작품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떼르띠우스Tlön, Uqbar, Orbis Tertius >라는 작품에 이미 70년 전에 언급되어 있다.
진중권은 보르헤스의 작품을 <이미지 인문학>의 엠블렘으로 삼는다는 말로 맺음말을 마무리하고 있지만, 사실 필자가 보기에 <이미지 인문학>은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떼르띠우스>라는 작품이 언급하는 가공의 행성 <오르비스 떼르띠우스: 태양계 제3 행성, 사실상 지구를 가리킴>에 빌렘 풀루서, 발터 벤야민, 롤랑 바르뜨를 집어넣은 것에 불과하다. 쉽게 말해 <이미지 인문학은>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떼르띠우스>가 메인 플롯이고 나머지 이론가들은 그 플롯을 풍성하게 하는 <오르비스 떼르띠우스> 행성의 <아키텍트arquitect>일 뿐인 것이다. 그가 보르헤스를 굉장히 좋아한다는 말은 들은 바 있으나 그의 미학사상의 핵심이 보르헤스 일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한국에서 또 다른 <보르히매니어Borgimania: 보르헤스 광팬이라는 뜻>을 만나게 되어 반갑다.
이미지 인문학 1 - 현실과 가상이 중첩하는 파타피직스의 세계
진중권 지음,
천년의상상,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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