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장을 먹고 자르고... 섬뜩했지만, 후련했다

[관람기] 2014 안동행위미술제 - 너울거리는 몸·살

등록 2014.12.25 17:48수정 2014.12.25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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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계획과 상관없이 몸과 마음이 가는대로 발길을 옮길 때가 있다. 그날도 그랬다. 대구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안동으로 가는 길. 한 지인의 전시가 안동문화예술의 전당에서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지만 굳이 갈 계획을 세우지는 않았었다. 그것이 우연 속에 감춰진 필연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평안할 安(안)자가 장음으로 내 입속에서 굴러다닐 때 즈음, 전시실 앞에 도착했다.

2014안동행위미술제 배너   배너 조차 범상치 않은 행위미술제
2014안동행위미술제 배너 배너 조차 범상치 않은 행위미술제 권미강
참 낯선 제목이다. '2014 안동행위미술제 - 너울거리는 몸·살'. 미술과 행위의 만남도 낯선데 몸과 살이라니... 거기에 '너울거리다'라니... 전시실 앞에 놓인 십 원짜리 동전을 사슬처럼 만들어 온 몸을 칭칭 감은, 낯선 사내의 얼굴이 이국적이기 조차 했던 배너부터 범상치 않은 전시였다.


벽면에는 행위작가의 공연포스터들이 즐비하게 붙어있었다. 망사스타킹을 신은 다리 위에 얼음을 올려놓고 다리 한쪽을 치켜세우려는 여성작가의 사진이랄지, 얼굴에 검은 고무줄을 칭칭 감고 좀비처럼 서있는 남자랄지, 피 같은 붉은 물감을 얼굴에 바르며 데드마스크처럼 응시하는 얼굴이랄지...

뭔가 괴기스럽기까지 한 사진들을 더 괴기스럽게 만든 음향이 책들이 전시된 벽면 뒤로 흘러나왔다. 턱... 얍... 아아아아... 이 이상야릇하고 섬뜩한 음향이 포스터들의 괴상함과 어울려 마치 어릴 적 귀신의 집 안에 들어갈 때의 공포처럼 온 몸을 감쌌다.

나는 거기서 자기검열에 빠졌다. 아무도 없다는 무서움과 천장에 매달린 CCTV가 무서워하며 금방 뛰쳐나가려는 나를 누군가 훔쳐본다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울까 하는 염려 속에서, 되도록 침착하고 세련되게 마치 이런 예술의 세계를 이해하는 제법 미적 배려가 풍부한 사람으로 비쳐지기를 바란 것이다. 우선 눈과 귀를 두렵게 만드는 것들을 애써 외면하며 벽면에 붙어있는 월텍스트 문구를 하나씩 읽어내려 갔다.

그건 우리나라 행위예술사이기도 했는데 소위 말하는 행위미술, 퍼포먼스아트에 대한 일련의 기록과 사진들이었다. 기록은 당시 신문에 실린 기사들도 있었는데 서울시내 한복판에서 전위행위를 하다 끌려간 예술가들이 즉결심판에 넘겨졌다는 기사며, 한 여성 행위예술가가 미술관에서 거꾸로 매달려 있다가 혼절했다는 기록 등등, 일반인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행위에 대한 기록들이 시대별로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그 아래 탁자에는 행위예술과 관련된 책자들도 전시돼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잘 알지 못했을 뿐, 우리나라 행위예술의 역사도 현대예술사에서 나름대로 긴 시간을 이어오고 있었음을 알게 됐다. 다만 다른 장르의 예술과 달리 그것이 때론 인간본성의 원초적이기도 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일련의 행동들이 주는 불편함도 있기에 다소 외면 받아온 것도 사실이다.


"행위예술이야말로 고도로 계획된 개념미술"

작가들의 걸개 작품사진  전시실 안 행위예술작가들의 대표이미지가 들어있는 걸개 작품사진
작가들의 걸개 작품사진 전시실 안 행위예술작가들의 대표이미지가 들어있는 걸개 작품사진 권미강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이혁발(나의 지인이기도 한) 작가는 "겉으로는 이상 행동쯤으로 보이기도 하겠지만 행위예술이야말로 고도로 계획된 개념미술"이라고 말한다. 작가가 쓰는 소품 하나, 작가의 몸짓과 동작 하나 하나에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가 담겨있다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행위예술은 세상이라는 캔버스에 직접 들어가 온 몸으로 붙이고 오리고 그려내는 그야말로 행위미술인 것이다.


행위예술에 대한 이해만큼이나 미로 같은 전시글과 책자, 포스터들을 둘러보고, 들어올 때부터 내 달팽이관을 울려댔던 메인 전시실로 접어드니 그곳은 3개의 칸막이로 구분돼 각각의 영상을 볼 수 있도록 돼있었다. 전시도 행위예술처럼 조금은 파격적으로 기획된 듯했다.

내가 맞닥뜨린 첫 영상은 문유미 작가의 행위영상이었는데 온 몸에 잡지에서 오린 듯한 각종 상품과 명품, 치장한 여성의 모습 등을 스티커처럼 붙이고 나왔다. 그녀는 관객석을 돌아다니며 맘에 들거나 갖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자신의 몸에서 스티커를 떼라고 했다. 남자관객들은 좀 쑥스러워 하면서도 자동차나 시계 등을 떼어 가졌다.

관객들이 스티커를 떼어낼수록 그녀는 완전한 알몸이 됐다. 그리고는 명품을 넣는 종이가방을 마구 흔들어댔다. 그 안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상품 스티커들. 화려하게 넘쳐나는 상품과 그 안에 빠진 여성들의 물욕. 물신주의에 대한 비판이었다. 그녀의 알몸은 그러한 것들로부터 벗어나 비로소 온전한 자신으로 돌아온다는 의미를 보여주는 것 같았는데 몇몇 남자들의 불편한 시선이 느껴지기도 했다.

2014안동행위미술제 자료 전시  우리나라 행위예술에 대한 역사가 기록과 각종 자료로 전시돼 있다
2014안동행위미술제 자료 전시 우리나라 행위예술에 대한 역사가 기록과 각종 자료로 전시돼 있다 권미강

다음 영상은 문재선이라는 작가의 행위 작품이었다. 역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나온 그는 선풍기 같기도 한 설치물이 있는, 물이 찰박하게 들어있는 작은 관에 자신의 몸을 누이고 느리게 느리게 움직였다. 그 움직임이란 것이 정말 느리고 느려서 답답한 마저 느끼는.. 그 안에서 소리를 내는 몸과 물의 마찰음... 이혁발씨는 문재선씨의 작품을 '원초적 고독과 존재의 불안과 마주한다'고 썼지만 아, 난 잘 모르겠다.

영상 안에서 그의 모습은  불안해 보였지만 결코 고독해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행위를 너무나 편안하게 즐기는 것 같았다. 마치 좁은 엄마 뱃속에서 태아가 양수를 찰박거리며 노는 듯한 그런 평화로움 마저 느꼈다.

다음으로 심홍재 작가의 '어떤 일상'이 영상으로 비쳐졌는데 병원에 누운 그의 일상이었다. 무대가 아닌 병원에서의 일상이었는데, 실제로 그는 사고를 당해 입원했다고 한다. 사고만 아니었으면 무대 위에서 자신의 작품을 선보였을 텐데... 하지만 대청소하다가 다락에서 떨어져 다친 상황이 뜻하지 않은 퍼포먼스가 된 것이다. 삶이란 때론 계획되지 않은 곳에서 또 하나의 예술을 낳기도 하리라. 자연스럽게 그의 쾌유를 빌었다.

그 다음은 나의 대학선배이자 시퍼포먼스를 함께 하는 예술적 동료이기도 한 카니 김석환씨의 행위예술이 이어졌다. 역시 외모의 비주얼은 만만치 않다. 길게 늘어진 흰 머리는 산신령 같은데 얼굴은 선하고 장난끼가 다분한 아이표정이다.

설치미술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작가답게 지구본, 투명한 원통형의 관, 전자불빛 램프 등의 소품으로 물질과 문명, 자본주의에 물든 지구를 해체하고 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해 자신이 직접 나서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지구의 내장을 먹거나 팔뚝을 자르는 장면이 섬뜩했지만 그만큼 지금의 세상이 그렇다는 것을 보여주는 행위인 듯했다.

"우리 인생은 이렇게 한번 흔들리는 거야"

김석환작가 카니 김석환의 작품 '화력' 
설치미술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작가답게 지구본, 투명한 원통형의 관, 전자불빛 램프 등의 소품으로 물질과 문명, 자본주의에 물든 지구를 해체하고 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해 자신이 직접 나서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김석환작가카니 김석환의 작품 '화력' 설치미술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작가답게 지구본, 투명한 원통형의 관, 전자불빛 램프 등의 소품으로 물질과 문명, 자본주의에 물든 지구를 해체하고 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해 자신이 직접 나서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권미강

한국실험예술제 감독으로 잘 알려진 김백기씨는 두 개의 초를 들고 등장해서 풍선을 묶고 길게 늘어뜨린 실에 불을 붙였다. 타들어가는 동안 자신의 몸에 촛농을 쏟아냈다. 그 뜨거운 촛농의 맛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금세 그의 고통을 십분 헤아리리라. 고통을 견디고 비로소 깨달음을 얻는 구도의 세계. 그 고통이 촛농의 뜨거움만큼만 이길 바랄 뿐.

어느새 전시관의 문 닫을 시간인 7시에 가까워졌다. 행위예술제에 참여한 작가들의 행위영상을 다 보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성능경씨를 비롯해 김광철, 성백, 조은성, 변영환, 박주영, 이혁발씨의 영상이 아직 남아 있었지만 물리적으로 다 볼 수는 없었다. 할 수 없이 이번 행위미술제를 기획하고 자신도 참여한 이혁발씨의 영상을 끝으로 마무리를 해야 했다.

이혁발씨는 '관음(觀淫)', '육감도(肉感島)' 등 인간의  가장 본능적인 욕망인 '성(姓)'을 주제로 한 작품을 주로 해왔으며 그의 회화 또한 행위예술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이번 작품의 제목도 역시 '육감도 - 찰나'였다.

이 작품을 볼 때 3번의 충격을 받았다. 처음엔 해금연주에 맞춰 흰 두루마기를 입은 그가 망건을 쓰고 나와 하얀 스타킹을 잡아당기더니 흰 천을 흔들어 댔다. 후에 그 몸짓이 임금의 죽음을 알리는 내시의 몸짓임을 알게 됐는데 다소 충격이었다. 그리고는 노란색과 분홍색 천이 걸린 낚시대를 흔들더니 "우리 인생은 이렇게 한번 흔들리는 거야"라고 말하고는 반짝이 천을 흔들면서는 "우리 인생은 이렇게 한번 반짝이는 거야"라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찰나의 인생이 흔들리고 반짝이는 거에 담겨있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그가 무대 뒤로 퇴장하자 뭔가 이상야릇한 영상이 나오는데 데칼코마니의 기법으로 처음에는 무슨 영상인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혁발 작가 이혁발작가의 '육감도 - 찰나'
그는 노란색과 분홍색 천이 걸린 낚시대를 흔들더니 “우리 인생은 이렇게 한번 흔들리는 거야”라고 말하고는 반짝이 천을 흔들면서는 “우리 인생은 이렇게 한번 반짝이는 거야”라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찰나의 인생이 흔들리고 반짝이는 거에 담겨있었던 것이다.
이혁발 작가이혁발작가의 '육감도 - 찰나' 그는 노란색과 분홍색 천이 걸린 낚시대를 흔들더니 “우리 인생은 이렇게 한번 흔들리는 거야”라고 말하고는 반짝이 천을 흔들면서는 “우리 인생은 이렇게 한번 반짝이는 거야”라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찰나의 인생이 흔들리고 반짝이는 거에 담겨있었던 것이다. 권미강

조금 후에야 그 영상이 성관계를 갖는 남녀의 영상임을 알게 됐다. 영상이 끝나자 망사스타킹을 신고 검은 가죽 코르셋을 입은 여자가 반짝이 수술이 달린 모자를 쓰고 등장하는데, 아뿔싸! 그였다. 여자로 분한 작가의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클로즈업된 그의 얼굴은 흰 수염으로 나이를 가늠하게 했지만 멀리서 바라본 몸매는 여자가 봐도 좀 섹시했다. 흰 단 위에 올라가서 목에 핏대가 설 때까지 '아'라고 소리 지른 후 그는 8명의 관객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민망한 포즈를 취하기도 하고 어떤 관객은 그의 가슴과 망사스타킹에 돈을 찔러 주기도 했다. 내가 그 현장에 있었다면 그와 사진을 찍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는 육감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존재의 불안은 숙명이고 그 바람 같은 존재들에게 욕망은 삶의 의지를 북돋워준다." 우주와 지구, 인간도 다 찰나인데 살아있는 동안 어찌 욕망하지 않으리... 알듯 말듯 한 그의 말과 행위...

인간도 다 찰나인데 살아있는 동안 어찌 욕망하지 않으리 이혁발 작가는  흰 단 위에 올라가서 목에 핏대가 설 때까지 '아'라고 소리 지른 후 8명의 관객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민망한 포즈를 취하기도 하고 어떤 관객은 그의 가슴과 망사스타킹에 돈을 찔러 주기도 했다.
인간도 다 찰나인데 살아있는 동안 어찌 욕망하지 않으리이혁발 작가는 흰 단 위에 올라가서 목에 핏대가 설 때까지 '아'라고 소리 지른 후 8명의 관객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민망한 포즈를 취하기도 하고 어떤 관객은 그의 가슴과 망사스타킹에 돈을 찔러 주기도 했다. 권미강

총 2시간 넘게 행위예술제 영상을 보면서 난 뭔가 속이 후련하다고 느꼈다. 보는 내내 불편함도 있었지만 이 절망적인 세상에서, 아름답게만 미화하고 꾸며야 하는 세상에서 날 것 그대로 속을 드러내고 온 몸으로 표현하는 행위예술가들의 용기와 그 행위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내 속에 있는 욕망들을 숨기고 고고한 척 잘난 척 살아가는 현대인들, 풍요로운 물질로 둘러싸여 있지만 결코 행복하지 못한 현대인들에게 인간 본질을 보고 솔직해지라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행위예술이야말로 시대감정을 논하는 아주 진지한 예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몸으로 전하는 우리시대 이야기가 바로 퍼포먼스아트, 행위예술인 것이다.

사진도 행위미술이다  행위작가들의 사진은 그 자체도 행위미술이다.
사진도 행위미술이다 행위작가들의 사진은 그 자체도 행위미술이다. 권미강

국제적 망신을 당한 땅콩회항 사건처럼 천박한 자본주의 속에서 인간성을 상실하고 겉만 번지르르한 요망한 인간들에게 침을 뱉는 행위 같아 속이 후련한 것이다. 쌀쌀한 겨울의 찬바람이 밤의 향기를 안고 내게로 훅 불어왔다.  
   
* 안동행위미술제는 안동문화예술의 전당에서 오는 12월 28일까지 열린다.
#안동행위미술제 #행위예술 #이혁발 #김석환 #문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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