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홍구 성공회대 교수한국의 대표적인 역사학자인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이번 통합진보당에 대한 해산결정이 "정당에 대한 보호책임을 진 헌법재판소가 보호해야할 대상인 정당을 교살한 것"으로 평가했다.
손우정
한홍구 : "종편방송에서 신은미씨 종북 논란을 보도하면서 각광증 환자(관심을 받기 위해 황당한 짓을 하는 사람-기자 말)라고 하더라. 오히려 지금 헌재가 딱 그거다. 헌재가 대법원에 느끼는 열등감이 있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하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하려다가 17대 국회에서 여당이 다수당이 됐다. 선출된 권력이 민주진영으로 넘어가니까 보수진영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사법만 남았는데, 누가 우위냐를 가지고 헌재와 대법원이 경쟁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 헌재와 대법원이 국가보안법과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대해 경쟁적으로 보수적 판결을 내리기 시작했다. 그 경쟁에서 헌재가 앞서간 게 <경국대전>에 관습헌법까지 동원한 행정수도 위헌 판결이다. 이번에 헌재는 민주화운동의 산물이 아니라 지배세력의 이데올로기적 탄압기구로서의 위상을 분명히 했다."
이태호 : "'실질적 위협'으로 열거한 것들도 애매하기 짝이 없다. 내란사건, 비례경선 부정, 중앙위원 폭력, 관악구 부정사건이 실질적 위협이라는 건데, 내란음모죄는 고등법원에서 무죄 취지로 판결났다. 헌재는 어떤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위협을 발견했는지 모르겠다. 비례경선 부정이 실질적 위협이면 과거 한나라당의 돈봉투 사건, 차떼기 사건은 뭔가?
국회에서도 폭력사건이 비일비재한데, 중앙위 폭력을 우리 체제에 대한 실질적 위협으로 보면 대한민국에서 살아남을 당이 어디 있나? 지역구 여론조작 사건도 그렇다. 국민경선제 도입 이후 어느 정당에서나 지역경선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정치 문제다. 이게 정말 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하는 실질적 해악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한홍구 : "정부가 이런 무리수를 두는데 보수진영 내에서 아무도 그러면 안 된다고 비판의 소리가 없었다. 합리적인 보수, 민주주의의 룰을 지키는 보수가 없는 게 정말 문제다. 공안세력이 상황을 극단으로 끌고 가고 있다. 내가 그래도 내란 전문가인데, 김기춘씨가 처음 비서실장 됐을 때 대대적인 민중탄압이 있을 거라고 예언은 했지만, 원내 제3당을 해산하는 것은 상상력 바깥에 있었다.
간첩사건 정도 생각했는데, 이석기 사건이 터졌다. 내란 사건 터졌을 때도 이렇게 확대될 줄 몰랐다. 박정희 정권 때도 내란 사건이 많았고 보도용 간첩 사건도 많았다. 언론 보도용으로 터뜨리고 흐지부지 되는 거다. 법원에서 무죄가 나오니까 기소단계에서 빼거나 소요죄 정도만 넣었다. 이석기 내란 사건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했는데 내란죄로 기소까지 하고 정당까지 해산했다.
처음부터 이들이 정말 통합진보당을 해산하려고 했는지, 아니면 서로 격려하면서 이끌어 주다 보니까 정당해산까지 갔는지 모르겠는데, 이게 정말 무서운 거다. 군국일본이 이렇게 한발씩 가다가 전쟁까지 갔다. 정당 해산까지 1년이 걸렸는데 한국 보수세력 내부에서 '이렇게 가면 너무 심한 것 아닌가?', '당을 해산까지 시키는 것은 안 되지 않냐?'는 목소리가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았다."
"'똥물 튄다'고 외면했던 시민사회도 반성할 부분 있다"- 이 문제가 통합진보당 해산으로만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이미 보수단체가 통합진보당 당원 전체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고, 검찰이 즉시 수사에 착수했다. 압수수색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데, 사건의 파장이 어디까지 갈 것으로 보나? 이재화 : "원칙적으로는 위헌 정당 해산 결정은 장래효만 있고 소급효는 없다. 그 전 활동은 문제 삼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활동은 문제 삼을 수 없고 합법적인 활동으로 간주해야 한다. 이건 독일연방헌법재판소가 1961년 독일 형법규정에 대해서 위헌결정을 하면서 선언한 내용이다. 우리나라 헌법학계의 통설이고, 이건 정부측 입장에 선 허영, 장영수, 정종섭(현 안정행정부 장관)도 같은 입장이다. 그런데 지금 검찰은 (통합진보당 당원들을) 이적단체로 처벌하겠다는 둥,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하겠다는 둥 야단법석이다. 국제적인 망신이다."
한홍구 : "정당해산의 발단이 된 사건을 역사적으로 짚어볼 필요도 있다. 이석기 의원과 일부 당원들이 2013년 5월 12일에 마리스타 수도원에 모여서 했다는 이야기는 일반 국민들이 공감하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그게 내란모의였는지의 여부와 별개로 일반 국민들과 동떨어진 이야기였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왜 그들이 그런 이야기를 나눴을까? 역사적인 경험이 있어서 그렇다. 한국전쟁 이전에 남로당이 있었다. 남로당이 해산은 안 당했는데, 남로당 당원들과 외곽단체에 소속된 사람들을 보도연맹에 가입시켰다. 전쟁 나니까 그 사람들을 끌고 가서 다 죽였다.
수도원에 모인 사람들은 그런 역사적 기억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나만 해도 인터넷에 찾아보면, '전쟁나면 가장 먼저 쏴 죽일 놈' 중 꽤 높은 순위에 있다.(웃음) 나는 웃고 넘어갈 수 있는데 실제 지역에서 이름 없이 활동하는 사람, 사회적 연결망이나 배경이 없어서 기댈 곳 없는 사람, 국정원 같은 곳에서 사찰 당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지난 7월에 통합진보당 사람들에게 강연을 한 적이 있는데, '왜 그때 일반적인 정서와 동떨어진 이야기가 나왔었는지, 이해는 된다'고 했더니 여러 명이 울기 시작했다. 나중에 사연을 들어보니 (내란 사건이 발생한 지) 거의 1년이 지났는데 '이해한다'는 말을 처음 들었다고 하더라. 그동안 민주화운동 내에서도 '미친놈들', '너네 때문에 똥물 튄다', '북으로 가라' 이런 이야기만 들었고 좋게 이야기해 준 게 '정신병자들, 그래도 정말 내란 일으키려 했던 건 아니니 억울하긴 할 거야' 정도였는데, '이해한다'는 말을 처음 들으니 눈물이 쏟아지더라는 거다.
지금은 반공 수준도 아니고 광기에 둘러싸인 분단사회인데, 권력과 매스컴이 강하게 밀어 붙이니까 점점 더 고립됐다. 그 사람들도 우리 이웃이고 형제인데, 1심 때만 해도 시민단체나 지식인 사회가 안 움직였다. 나도 그랬다. 물론 통합진보당에서 도와달라고 이야기도 안 했고, 나도 굳이 찾아가지 않았다. 2심 때야 증인으로 나와 달라고 해서 갔는데, 이 사건이 발생했을 때 우리 시민사회가 보인 모습에서 반성해야할 부분이 크다."
이태호 : "우리도 미온적인 반응에 책임이 있는 단체 중 하나다.(웃음) 찾아가서 직접 돕지는 못했지만 사건에 대한 발언은 계속 했다. 시민사회가 주춤했던 것은 사실인데, 이 사건에 집중하지 못할 만한 사정이 있기는 했다. 내란 사건이 터지기 전에 국정원만이 아니라 군과 보훈처, 교육부까지 대선에 개입한 상황이 드러나고 있었다. 국가기구 전체가 특정 이념과 정파를 위해 활동한 것이다. 그때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이 터졌다. 올해에는 세월호 사건도 터졌다. 이 사건을 다루는 것과 진보당에 대한 정부의 과잉대응에 반대하는 것을 연결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봤다."
이재화 : "나는 (2012년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30번을 받은 사람이다. 그동안 진보정당에는 한 번도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런데 정당해산청구를 했다는 뉴스를 보고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이제 시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서 무너지면 그동안 쌓아놨던 것들이 다 무너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직접 통합진보당 관계자에게 전화해서 정당해산 사건 변호를 맡겠다고 자청했다.
심리를 진행하면서 솔직히 진보언론과 시민단체가 너무 야속했다. 통합진보당만의 문제가 아닌데, 통합진보당만의 문제인 것처럼 다뤘다. 정부와 헌재가 의도한 것도 그거다. 결정문을 잘 읽어보면 헌재가 간접적인 메시지를 줬다. '당원이거나 당원 출신이라는 이유로 이념 공세하지 말라'고. 재판관들 사이에서 (파장을) 어떻게 감당할거냐는 의견이 나오니까 넣은 건데, 뒤집어 보면 다른 당은 건드리지 말되, 소위 '주도세력'인 전국연합 출신들은 문제 삼으라고 한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