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 오가스, 사이 가담이 쓴 <포르노 보는 남자, 로멘스 읽는 여자> 겉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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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들의 성적 관심사가 어떤지 알기 위해 1만 8000명에 이르는 남녀를 면담한 결과는 놀라운 충격을 안겨 주었습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킨제이 연구는 과학계에 전무후무한 시도로 평가 받았으나, 사회적 압박에 묶여 더 이상 진척된 연구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성적 행동에 관한 연구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기 어려웠던 것은 대다수 사람의 자연스러운 성적 행동을 관찰할 방법이 마땅히 없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자들은 이런 방법적 한계를 뛰어 넘기 위해 인터넷에 주목한 것입니다.
1973년 케네스 거겐이라는 심리학자가 생면부지의 남녀 각 5명을 모은 다음 칠흑 같은 어둠의 방에 들어가게 한 후 자신이 원하는 행동은 뭐든지 할 수 있도록 하는 실험을 했다고 합니다. 완벽한 익명성 속에 만난 그들은 처음에는 대화를 주고 받았지만 곧 서로를 만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일부러 누군가의 몸에 손을 댄 사람이 피험자의 거의 90%에 달했다. 누군가를 껴안은 피험자도 절반이 넘었다. 키스까지 한 피험자도 1/3에 이르렀다. 한 남자는 다섯 여성 모두와 키스를 나누었다... 이 실험의 참가자들은 익명성 뒤에 숨어서 자신의 욕구를 마음대로 표현했다... 방 안에서 성적 흥분을 느꼈다고 밝힌 남자와 여자는 전체의 80%에 달했다." (본문 중에서)저자들은 케네스 거겐의 이 실험이 수천만 배 확대된 것이 바로 인터넷이라는 것에 착안한 것입니다. 그들은 "빛이 거의 들지 않는 깜깜한 방에서 서로를 모르는 수억 명을 집어 넣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자신의 욕망을 마구 표출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과연 무엇을 할까"하는 의문에 주목했습니다.
"월드와이드웹이 온라인으로 연결되던 1991년만 해도 미국에서 간행되는 성인 잡지는 90종이 되지 않았고, 그중 12종 이상을 갖춘 가판대를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웠다. 그런데 그로부터 불과 6년 후인 1997년 인터넷에 존재하는 포르노 사이트 숫자는 약 900개에 이르렀다. 현재 인터넷 여과 소프트웨어인 사이버시터가 차단하는 성인 웹 사이트 수는 무려 250만 개다... 인터넷은 포르노를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문 중에서)익명성이 보장 될 때 드러나는 사람들의 욕망을 살펴봤더니예컨대 10억이 넘는 인구가 자유롭게 자신의 내밀한 성적 욕구를 인터넷으로 충족할 수 있는 시대가 됐으며, 연구자들은 인터넷이라는 익명성 덕분에 자유롭게 생각하고, 클릭하고, 검색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는 연구를 진행한 것입니다. 저자들은 먼저 사람들의 성적관 심사를 살펴보는 연구부터 시작했습니다.
"2009년 7월부터 만 1년 동안 도그파일 검색 엔진에 입력된 약 4억 개의 상이한 검색 내용을 수집했다... 우리가 수집한 4억 개의 검색 내용 중 성적인 내용이 5500만 개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성적인 검색 내용에는 총 200만 명의 욕구가 반영되어 있었다." (본문 중에서)그렇다면 인간의 성적 욕구는 얼마나 다양했을까요? 저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5500만 개의 성적 내용 검색 결과를 분류해보니 겨우 20가지 관심사가 전체 검색의 80%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아울러 상위 35위까지 항목이 전체 검색의 90%를 차지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욕망을 한데 모으면 공통된 관심사는 결국 거기에서 거기라는 이야기이다. 사람들이 변태 변태 하지만, 모두들 생각보다 변태와 공통점이 많은 셈이다."(본문 중에서)아울러 저자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있는 '에로' 웹 사이트의 순위를 살펴보았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남녀의 성적인 두뇌가 가진 취향이 드러났다고 합니다. 남자들 사이에 인기있는 에로 사이트는 모두 성인 동영상 사이트였지만, 여자들에게 인기 있는 에로 사이트는 팬픽션 웹사이트, 로맨스 소설 작가 웹사이트 등이 포함돼 있더라는 것이지요.
저자들은 도그 파일 뿐 아니라 전 세계 50만 명의 남녀가 검색한 10억 건의 웹 검색 내용, 수십만 권의 에로 소설, 500만 건의 성인용 구인 광고, 수천 편의 디지털 로맨스 소설과 포르노 영상, 4만 개 이상의 성인 웹사이트를 과학적 통계적으로 분석해 이제껏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사람들의 욕망을 들여다 보았다고 합니다.
"인터넷에서 남자들은 이미지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여자들은 이야기를 선호한다. 남자들은 시각적인 섹스를 좋아하는 반면 여자들은 서로에 대한 관계와 로맨스를 좋아한다." (본문 중에서)"남자와 여자는 원하는 자극의 방식도 서로 달랐다. 남자들은 보는 것을 좋아하는 반면 여자들은 읽는 것과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한다." (본문 중에서)사실 이 두 인용문은 500쪽이 넘는 이 책의 결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500쪽이 넘는 방대한 연구 결과는 이 결론에 이르는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하는 것들이며, 이러한 결론을 뒷받침하는 과학적인 증거들을 소개하는 내용들입니다.
물론 더 흥미로운 연구로 확장되기도 합니다. 예컨대 포르노를 보는 남자의 두뇌와 여자의 두뇌가 각각 어떻게 다르게 반응하는지와 같은 연구들입니다.
"남자들은 포르노를 볼 때 오른쪽 편도체가 활발히 활동하는 반면, 여자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한편 여자들은 에로틱한 이야기를 읽을 때 왼쪽 편도체가 활발하게 움직인다." (본문 중에서)이런 과학적인 연구의 결과물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저자들은 많은 사람들이 가진 궁금한 질문들에 대하여 설득력 있는 답을 내놓고 있습니다.
남자가 포르노를 끊지 못하는 까닭? 여성용 비아그라가 실패한 까닭?예컨대 남자들은 왜 포르노를 끊지 못하는가? 여자들은 왜 로맨스 소설 속 뱀파이어에 열광하는가? 여성용 비아그라 개발에 실패한 까닭?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마성의 성적 매력은 무엇인가? 왜 남자들이 여자보다 페니스(남성 성기)에 관심이 많은가? 같은 문제들에 대한 흥미로운 답들을 알려줍니다.
저자들은 자신들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지금까지 성과학과 심리학이 밝혀내지 못했던 인간의 은밀한 욕망들에 관하여 이야기 합니다. 아울러 아내나 애인 몰래 포르노를 탐닉하는 남성이 가진 욕망 혹은 에로 소설을 탐하는 여성이 가진 야릇한 욕망의 근원이 무엇인지 알려줄뿐만 아니라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던 파트너의 욕망에 대해서도 훨씬 더 많이 이해할 수 있는 과학적 연구의 결과들을 소개합니다.
이를테면 여자의 경우 남자보다 훨씬 더 많은 신호 목록(조건)이 만족된 후에야 심리적 흥분이 시작되는 까닭이라든지, 남자들의 경우 단 하나의 성적 신호만으로도 흥분하는 까닭 같은 것들입니다. 이 책의 저자들은 남성성과 여성성은 욕망이라는 관점에서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남자의 성욕은 강렬함과 절박함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그 덕분에 남자의 성욕은 결코 얽매이거나 수그러드는 법이 없어서 남자로 하여금 행운과 모험을 찾아 머나먼 길을 방황하게 만든다. 또 남자의 성욕은 눈부신 시각적 창의성을 발휘하여 일본 아니메 같은 것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본문 중에서)"여자들은 감적적이고 심리적인 신호에 더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여자들의 그런 욕구를 만족시키려고 나온 것이 바로 에로소설이다. 여자들이 반응하는 신호의 종류는 여러 영역에 걸쳐 있으며 그 범위도 실로 방대하다." (본문 중에서)"단 하나의 신호에만 노출되어도 흥분하는 남자들과 달리 여자들은 흥분하려면 다양한 신호가 동시에 있어야 하고 그 기준도 순간순간 바뀐다. 남녀의 이러한 그림들을 보고 있으며 그 모습이 너무도 달라 마치 전혀 상관없는 두 종족의 이야기 같다." (본문 중에서)저자들이 말하는 남녀의 성욕 메카니즘 차이는 마치 전혀 상관없는 두 종족을 보는 것 만큼 다르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남녀가 성적으로 조화로운 관계를 이루려면 다른 성이 가진 욕망의 매커니즘이 자기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먼저 인정해야 하는 것이지요.
독자들은 멀쩡한(?) 두 신경 과학자의 포르노 탐색 연구를 통해 남자와 여자의 성적 행동을 일으키는 각기 다른 욕망의 '소프트웨어'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10억 명의 남녀가 인터넷에 남긴 성에 관한 행동을 분석한 자료를 통해 '사랑'을 뒤따라 다니는 동전의 양면 같은 '성욕'에 대해 제대로 공부해보시기 바랍니다.
포르노 보는 남자, 로맨스 읽는 여자 - 이성의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성적 신호의 비밀
오기 오가스 & 사이 가담 지음, 왕수민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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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YMCA 사무총장으로 일하며 대안교육, 주민자치, 시민운동, 소비자운동, 자연의학, 공동체 운동에 관심 많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2월 22일상(2007), 뉴스게릴라상(2008)수상, 시민기자 명예의 숲 으뜸상(2009. 10), 시민기자 명예의 숲 오름상(2013..2)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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