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공단 누리집 화면 캡처.
국민건강보험공단
우리나라의 모든 의료기관들은 예외 없이 건강보험에 '당연 지정' 된다. 의료기관이 임의로 건강보험 환자를 거부할 수 없고, 건강보험 진료 행위는 정해진 수가를 통해 보상받는다. 대부분의 의료기관들의 주된 수입원은 건강보험 환자들이기 때문에 병의원은 진료수가를 올리거나, 진료 행위와 진료 횟수를 늘리는 방식 등으로 수입을 극대화 하려 한다.
그러나 한정된 건강보험 재정 범위 안에서 무작정 보상 수준을 높일 수는 없다. 비용이 증가하거나 보상 수준이 높아야만 진료의 질이 향상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이 병원들로 하여금 적정 진료를 유도하려면 진료 수가뿐만 아니라 진료 행위와 진료 횟수도 관리해야 한다.
현재 건강보험 진료행위항목는 2013년 기준 8222개에 이른다. 1977년 7월 의료보험 도입 당시 763개였던 것에 비하면 현재 약 11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검사행위는 무려 20배(107개→2228개) 가까이 증가하였고 처치 및 수술행위도 약 4배(590개→2299개)가량 증가하였다.
여기에 전문의, 소아, 야간 및 공휴일 진료 등에 적용되는 가산 행위(추가 할증)까지 포함하면 전체 진료행위 수는 무려 7만여개에 이른다. 진료행위 1개 당 10여개의 가산행위가 존재하는 구조인 셈이다(총 8222개의 행위에 가산을 적용하면 7만개의 행위로 증가).
이처럼 건강보험이 처음 도입된 이후 지난 37년 동안 진료행위항목이 가파르게 증가했다. 문제는 진료행위 증가의 원인이 온전히 급여 확대(비급여 항목을 건강보험에서 보장하면서)나 신의료기술 도입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데 있다.
그보다 기존 진료행위를 지나치게 세분화 하는 경향이 있고, 특히 행위 재분류(의료행위를 세부 항목으로 분리해서 다시 분류하는 것)를 통해 병원들이 환자들의 추가 유인 수요를 야기하거나 수입 확보 행태를 개편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예를 들어 수술 행위를 단순한 행위와 복잡한 행위로 세분화 하는 등 행위를 가지치기 하거나 검사 및 시술의 적용 부위를 머리, 복부, 상지, 하지 등으로 쪼개면서 수가를 차등화 하는 방식 따위 등이 그렇다.
물론 행위세분화를 통해 대상 환자의 적응증(질환별로 필요한 의료행위를 명시하는 것)을 명확히 하고 그에 따른 비용 발생이 환자들의 치료의 질에 근거했다면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실제로는 재분류 이후 높은 가격이 책정된 의료행위로 발생빈도가 급증하는 등 진료행태가 변화되기도 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건강보험 진료비 분석 및 정책방향'에 따르면, 행위세분화가 진료양태에 직접적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무엇보다 한국은 행위별 수가제(개별 행위에 수가를 책정하는 현행 수가)를 채택하고 있다. 행위를 하면 할수록 병의원이 돈을 버는 구조다. 이 때문에 재분류 방식의 행위 신설은 의학적 필요성보다 새로운 수요 창출을 위한 수단으로 악용될 수도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따라서 진료행위가 늘어나고 세분화 되는 게 결코 좋은 것이 아니다. 관리 방식이 복잡해 질 수밖에 없고 진료행위의 남용도 억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진료행위 평가는 전무하고 퇴출기전은 없다무분별하게 증가하는 진료행위는 사실 병원들의 이윤동기와 밀접하게 연계 된다. 의학적으로 새로운 행위도 아니면서 기존의 진료행위를 세분화하는 것은 수가 보상의 종류와 범위를 가급적 넓히겠다는 대표적인 꼼수다.
현 시점에서 (가산을 포함하여 세분화하면) 7만여 개에 이르는 건강보험 진료행위가 온전히 급여원리에 입각한 행위라고 보기 어려운 이유는 또 있다. 지난 37년 동안 건강보험 진료행위의 의학적 타당성이 재평가된 경우가 단 한 차례도 없기 때문이다.
즉, 병원들의 요구로 한 번 진입된 의료행위는 다른 의료행위와의 효용성이나, 평가를 받고 퇴출되어야 하는데 그런 적이 없다는 말이다. 한 번 진입된 진료행위가 급여항목에서 제외될 여지가 없다보니 진료행위 증가의 주된 요인이 의학적 필요에만 기인했다고 보기 힘들다. 오히려 병의원의 보상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진료행위 유형을 지속적으로 확장하고 개편한 결과일 공산일 가능성이 더 크다.
병의원들의 인프라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고비용을 유발하는 진료행태도 건강보험재정을 갉아먹는 주된 요인이다. OECD 헬스 데이터(health date) 자료를 보면, 의료기관 병상수와 의료장비 증가 수준도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 타의 추종이 불가했다. 우리나라 병상수는 2005년 대비 2010년 49.2% 증가하였는데 동일기간 OECD 평균 병상수는 오히려 2.8% 감소했다.
역시 같은 자료에서 2010년 기준 급성기 병상수는 인구 천명 당 5.5병상으로 OECD 평균 3.5병상을 훨씬 상회한다. 장기요양 병상수도 급격히 증가하여 OECD 평균 4.2병상에 비해 무려 20.7병상에 다다른다.
주요 의료장비인 CT와 MRI 모두 2000년 이래로 OECD 평균을 상회하는 것으로도 나타났다. OECD 헬스 데이터 자료에 따르면, 2010년 기준 CT는 인구 백만명 당 35.3대로 OECD 평균 20.0대를 훨씬 앞서며 MRI는 19.9대인 반면 OECD 평균은 11.9대에 머무른다. 이런 과도한 장비보유와 병상은 '공급자유발 수요' 원칙에 따라 검사를 남발하고, 입원을 많이 시키는 과잉진료행태를 창조했고, 이는 건강보험재정을 착실히 낭비시켰다.
이때 우리는 공공의료보다 민간의료 비중이 압도적인 한국적 상황에서 비롯되는 문제점에 주목해야 한다. 민간의료기관들이 주도하는 시설 및 규모 중심의 경쟁과 양적 성장은 전체적으로 봤을 때 건강보험 운영의 효율성을 해치고 고비용을 야기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무분별한 병상수 늘리기와 장비 확충은 그만큼의 수요 창출을 수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의사들이 검사 남용과 과잉진료의 유혹에서 벗어나기란 참 힘들다.
공급부문의 양적 확대와 자원 배분의 균형성이 부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지역 간 의료자원의 편차가 심해 서울 및 수도권 중심으로 의료자원이 편중되어 있는 등 의료기관간 양극화 문제도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자본과 규모 면에서 우위에 있는 대형병원들이 공급부문의 블랙홀이 되어 입원, 외래 할 것 없이 모두 잠식하고 있다.
병원이 엄청나게 성장하면서 일차의료나 주치의의 역할을 좀처럼 기대하기 힘들다. 의원들이 병원과 경쟁해야 하는 강도가 심화되면서 고액 검사나 성형 행위 등 돈을 쫓는 진료행태가 문제가 되고 있다. 규모 및 시설 중심, 상업성 중심의 의료제공 방식은 공급부문의 비효율을 낳는 주범이고 고비용을 유발시키는 원인이 된다.
'고비용구조'가 가지고 있는 재앙은 결국 국민들 몫